<군사학 논고>
저자: 플라비우스 베게티우스 레나투스 / 정토웅 역
출판사: 지식을만드는지식
'평화를 원하거든 전쟁을 대비하라'는 격언은 워낙 유명해서 대부분 한 번 쯤은 들어봤을 것이다. 이 격언의 라틴어 문장은 'Si vis pacem para bellum'인데, 9mm 권총탄 '파라벨룸'과 키아누 리브스 주연 영화 '존 윅3 파라벨룸'의 부제가 되었다.
해당 격언은 <군사학 논고 De Re Militari>에 수록된 문장이다. <군사학 논고>는 4세기 로마 제국의 정치가 베게티우스가 저술했다. 당시 로마 제국은 고트족과 일전을 벌인 하드리아노폴리스 전투의 패배로 위기감이 고조된 상황이었다. 베게티우스는 고대 로마의 군사적 영광과 전통을 되찾으면 난국을 타개할 수 있으리라 보았다.
이러한 목적에서 저술된 <군사학 논고>는 고대 로마 시기 군대 운용에 관한 다양한 내용이 담겨 있다. 병사의 훈련법부터 부대 편제, 세부적인 지침까지 여러 상황을 다뤘는데, 배경 지식 없이 무작정 <군사학 논고>를 읽는다면 몰락한 고대 로마군을 구구절절 소개한 따분한 책으로 비친다. 실제 그런 내용이 일부 담겨있으니 말이다.
<군사학 논고>가 여전히 고전으로 읽히는 이유를 알려면 시대적 맥락을 고려해야 한다. 르네상스 시기 인문주의가 발전하며 고대 그리스, 로마의 전통으로 회귀가 유행처럼 번졌다. <군사학 논고>는 이러한 복고주의의 수혜를 입어 재평가되었다. 특히 르네상스는 화기의 발전으로 기병의 시대가 저물고 보병이 점차 대두되는 시기였다. 유럽 각국은 강력한 보병을 필요로 했으며, 보병 중심의 강력한 군대로 유명한 로마의 군대를 연구해 그 해답을 찾고자 했다.
이에 <군사학 논고>는 이탈리아의 마키아벨리, 네덜란드의 마우리츠 판 나사우, 스웨덴의 구스타브 아돌프 등 각국의 사상가와 왕에게 매우 중요한 저작으로 취급되었다. 마키아벨리는 대표작 <군주론>, <로마사 논고>, <전술론>에서 로마군의 강력함과 로마의 위대한 전통을 한결같이 언급하고 있으며, 마우리츠와 구스타브는 고대 로마군의 연구와 성찰을 기반으로 네덜란드와 스웨덴의 군제 개혁을 이끌었다. 이들이 추구한 혁신은 나폴레옹 전쟁 당시까지 기본으로 중시됐으며 현대에도 그 유산이 일부 남아 있으니 서양 군사학을 논할 때 매우 중요한 저작이 아닐 수 없다.
이런 시대적 흐름은 차치하고 <군사학 논고>는 현대 군에도 통용될만한 군의 특성이 제법 실려 있어 공감하며 읽은 부분이 많다. 간단하게 추려보자면, 고대 로마군도 기본적으로 체격 좋은 병사를 선호했다. 하지만 실전에서 잘 싸우는 병사는 체격보단 체력이 좋은 병사였음을 강조했다. 내 현역 시절에도 체격보다 체력을 키우라는 말을 종종 들었다. 총을 들고 싸우니 그런가보다 하고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그러나 냉병기를 들고 근접전을 펼치던 고대에도 피지컬보다 체력을 더 중요했다고 언급한 점이 좀 놀라웠다.
전투가 단시간에 결판나지 않기에 지구력이 중요하기 때문일 것이다. 이는 군인의 용기가 직업에 대한 전문 지식에 의해 고양된다는 언급에서도 드러난다. 군인의 전투력과 용맹함은 선천적이기보단 후천적인 요소이며 훈련을 통해 완성된다는 점이다. 체력적 요소는 물론이고 전투를 수행하기 위한 전술적 소양과 제반 전투력, 혼란한 전시 상황에 멘탈을 부여잡는 정신력은 타고난 게 아니고 훈련으로 만들어진다는 점이다. 즉 징병한 병사보다 전문적으로 훈련받은 모병 직업군인들이 더 잘싸운다는 말이기도 하다. 꽤 공감하는 지점인데 강철부대를 보아도 알 수 있다. 병사가 주축이 되는 SDT나 해병대보다 직업군인 체제로 편성된 타 특수부대가 미션 수행에서 월등한 모습을 보였다. 병 출신이라 능력이 부족해서가 절대 아니다. 전문적으로 훈련받았냐 그렇지 않았냐의 차이일 뿐이다.
또한 장기적인 평화와 긴장 완화가 군 기술과 군사지식, 안보의식을 결여하는 이유가 된다는 점도 공감한다. 길게 말할 필요 없이 2백년의 평화기를 거친 조선이 임진왜란 때 보여준 추태를 보면 알 수 있다. 전쟁 없이 살아가는 현대 대한민국 국민인 우리도 망각하기 쉬운 요소다.
군필 현대인 입장에서 공감하는 부분이 많았다. 개인적인 감상으로 고전이란 느낌은 덜했다만, 엄밀히 이 책은 서양의 병법서 중 하나다. <손자병법>, <육도삼략> 등은 이름만으로도 일반인들에겐 매우 어렵고 따분해보인다. 군사학 논고도 그런 성향의 책임을 부정하진 않겠다. 분량 자체는 183페이지로 매우 얇다. 국내 출판본은 미 육군 필립스 준장이 1944년 발췌 요약한 판본을 옮겼다. 오늘날의 상황과는 거리가 먼 내용은 생략하고 현대와 적합한 내용만을 수록했으며 그마저도 중복되는 부분은 생략했다고.
고대 로마군의 전반과 전쟁사에 관심 있는 분들께 일독을 권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