캠핑을 시작한 지 어느덧 10년이 훌쩍 넘었다. 10년의 시간에서도 K사에서 만든 몇몇 제품들은 아직까지도 단단하게 내 곁을 지키고 있다.
10년 전 산 버너는 아직도 씩씩하게 불꽃을 내뿜는다. 고장이 나도 걱정이 없다. 서비스 센터에 맡기면 금방 새것처럼 돌아오니까. 가끔은 해외 유명 브랜드의 버너가 실은 K사에서 만든 것이라는 소식을 들을 때마다, 이름 모를 자부심이 가슴 한구석에서 몽글몽글 피어오르기도 한다.
하지만 이런 애정과는 별개로, 가끔 매장에 들를 때면 아쉬움이 밀려오곤 한다.
문득 스티브 잡스가 애플로 복귀했을 때의 일화가 떠오른다. 당시 애플은 수많은 제품군 속에서 길을 잃고 있었다. 잡스는 화이트보드에 단순한 사각형 하나를 그렸다. 가로세로를 가로지르는 선을 긋고는 '소비자용', '전문가용', '데스크톱', '휴대용'이라고 적었다.
"우리가 할 일은 이 사분면에 해당하는 네 가지 뛰어난 제품에 집중하는 것입니다."
그는 전략에 맞지 않는 나머지 모든 제품을 과감히 정리했다. 그리고 그 선택과 집중은 우리가 아는 지금의 애플을 만들었다.
지금의 K사를 보면 가끔 그 화이트보드가 생각난다. 한 종류의 장비 안에서도 모델이 너무 많다. 선택지가 넓은 건 좋지만, 때로는 '이게 최선일까?' 하는 의구심이 든다. 디자인 역시 기술력을 따라가지 못하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OEM으로 찍어내는 수많은 제품들 속에 정작 브랜드의 '철학'이 담긴 단 하나의 물건을 찾기가 점점 어려워진다.
나는 K사가 잡스의 그 사각형 전략을 한 번쯤 고민해 보길 바란다. 든든한 캐시카우인 가스 제품군은 지키되, 다른 라인업은 조금 더 단호하게 덜어내면 어떨까.
사각형 위쪽엔 '입문자용'과 '전문가용'을, 왼쪽엔 '백패킹용'과 '오토캠핑용'을 적어보는 거다. 이 범주에 들지 않는 중복된 모델들은 과감히 정리하고, 카테고리 별로 사분면을 대표할 수 있는 '상징적인 제품' 하나씩만 남기는 것이다.
매년 새로운 모델을 쏟아내기보다, 그 하나뿐인 제품의 디자인을 다듬고 사용성을 개선하며 해마다 조금씩 업그레이드해 나가는 방식. 그렇게 쌓인 시간은 곧 그 브랜드만의 고유한 스타일이 된다. 한국 사람들의 미적 감각은 이미 세계적이지 않은가. K사만의 기술력에 한국적인 세련된 디자인이 입혀진다면, 우리는 굳이 해외 브랜드의 로고에 열광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마케팅도 비즈니스도 잘 모르는 한 캠퍼의 설익은 참견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오랜 시간 K사의 제품을 써온 팬으로서, 이 훌륭한 회사가 리소스를 집중해 '꼭 필요한 단 하나'를 만들어내는 장인이 되길 바란다.
한국에서 가장 오래된 캠핑 기업이라는 멋진 스토리에 '아름다움'과 '간결함'이라는 옷이 입혀진다면 얼마나 근사할까. 언젠가 내 캠핑 가방 속이 온통 K사의 멋진 장비들로 채워지고, 동료 캠퍼들에게 "이게 바로 한국의 K사 제품이야"라고 자랑스럽게 말할 수 있는 날이 오기를 꿈꿔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