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위 바위 보

안내면 진다.

by garim

아이들의 세계에서 가위바위보는 때때로 희비를 가를 수 있는 가장 공평한 수단이 되곤 한다.
활동을 하다 보면 교사의 레이더에 여러 친구들이 함께 노는 과정을 한꺼번에 모두 포착하기는 어렵다. 한 명 또는 두 명의 교사가 많은 아이들을 살피다 보니, 아차 하는 순간 교사의 시야에서 벗어난 곳에서 사건이 벌어지기도 한다.

“우리 바깥놀이 가볼까요? 가고 싶은 친구는 한 줄로 서 주세요.”

선생님의 말이 끝나자 아이들은 놀던 것을 정리하고 하나둘 화장실로 향한다. 화장실을 이용할 때에도 각 반에는 정해진 규칙이 있다.


신발이 네 켤레 놓여 있으니 네 명씩 차례로 들어가기.
소변을 보고 나면 꼭 손을 씻기.
다음 친구를 위해 신발을 벗을 때는 뒤로 돌아서 벗고 나오기.
친구가 나오면 순서를 지켜 들어가기.


아이들은 수없이 연습하며 이 규칙을 배워 간다. 하지만 아무리 많이 익힌다 해도 늘 완벽하게 지켜지지는 않는다. 줄을 서다 보면 어느새 마음이 앞서 규칙 밖으로 한 발짝 벗어나는 순간이 생기기도 한다.

어느 날, 화장실 앞에서 두 친구의 목소리가 조금 높아졌다.
서로 자신이 먼저라며 팽팽하게 맞서고 있었다.

교사가 다가가 무슨 일인지 묻자 한 친구가 말했다.

“지윤이가요, 제가 먼저 왔는데 신발을 먼저 신으려고 해요.”

그러자 다른 친구가 곧바로 말했다.

“아니에요. 제가 먼저 왔어요.”

교사가 그 장면을 보았다면 누가 먼저 왔는지 금방 말해 줄 수도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 순간은 교사의 시야에서 살짝 벗어난 일이었다.

잠시 두 아이를 바라보던 교사가 말했다.

“그럼 둘이 가위바위보 해볼까?”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아이들은 손을 내밀며 외친다.

“안 내면 진다, 가위바위보!”

가끔은 같은 모양이 나오기도 하지만, 대부분은 금세 승부가 갈린다. 아이들은 서로의 손을 확인하며 누가 이겼는지 스스로 알아챈다.

상대 친구가 이겼을 때도 아이들은 억울함을 길게 붙잡지 않는다.

“지윤이가 이겼네. 양보해 줄래?”

교사가 이렇게 말하면, 조금 전까지 신발을 먼저 신으려고 밀치던 마음은 어느새 사라진다. 아이는 자신이 졌다는 사실을 받아들이고 조용히 뒤로 돌아 줄 끝에 선다.

그리고 교사는 이긴 친구에게 말해 준다.

“먼저 양보해 준 친구에게 고맙다고 말해 볼까?”

그러면 이긴 아이도 처음 자신이 먼저 왔다고 주장하던 마음은 잊은 듯, 가위바위보에서 진 친구를 바라보며 말한다.

“고마워.”

아이들의 세계에서는 그렇게 작은 승부 하나로 다툼이 끝난다.
잠깐의 갈등도, 억울함도 손바닥 위에서 펼쳐진 가위바위보 한 번에 조용히 자리를 바꾼다.

교사가 아이들의 갈등을 풀기 위해 건넨 말은 어쩌면 아주 단순한 제안이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아이들이 그 제안을 받아들이고, 결과에 따라 패배를 인정하는 모습은 생각해 보면 참 놀랍다. 이런 모습은 아이들이기에 가능한 일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만약 어른들에게 같은 방법을 제안한다면 어떤 결과가 나올까.

“그럼 가위바위보로 정할까요?”라는 말에 선뜻 승부를 받아들이는 어른이 과연 몇이나 될까. 생각해 보면 조금은 웃음이 나기도 한다.

단순한 놀이처럼 보이지만, 가위바위보에는 서로의 결과를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작은 약속이 담겨 있다. 그래서인지 때로는 조상들이 만들어 놓은 이 단순한 놀이가 아이들 사이에서 갈등을 풀어 주는 가장 공평한 방법이 되기도 한다.

생각해 보면 우리 어른들에게도 그런 가위바위보 하나쯤은 필요하지 않을까.
서로 조금씩 양보하고, 결과를 인정하며, 다시 웃으며 돌아설 수 있는 그런 방법 말이다.

월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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