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쿄에서의 첫날밤

이것은 무엇일까?

by 글 쓰는 사람

- 어머, 지금 우는 거야?


신랑이 주문한 생맥주 두 잔이 나오고 둘째가 간절히 원하던 콜라와 큰 아이의 오렌지 주스가 나온 때였다. 다 같이 잔을 들고 짠, 을 하려는 찰나 신랑이 큰 아이를 향해 말했다. 생맥주를 향해 있던 고개를 돌려 내 옆에 앉은 큰 아이를 봤다. 마스크를 한 얼굴을 푹 숙이고 있었다. 아이 얼굴을 보려고 하니 아이가 잔을 잡지 않은 손으로 두 눈을 가렸다. 아이 손과 마스크 사이로 눈물이 찔끔 흘러나왔다. 보고 싶었던 아빠를 보니 좋아서인가 보다,라고 내가 애써 아는 현실을 무마해 보려고 웃으며 말하자 큰 아이가 고개를 가로저었다.


일본에 가는 것이 결정되었을 때, 큰 아이는 싫다고 했다. 이불속에서 숨죽여 우는 날도 많았다. 때로는 다 같이 식사하는 자리에서 일본에 안 가면 안 되느냐고 울며 애원하기도 했다. 그럴 때마다 나는 해외 생활이 가져다 줄 즐거움에 대해 말하며 아이를 달랬다. 나조차 해외 생활은 해 본 적도 없으면서, 뭐가 그렇게 자신 있었는지 모르겠다. 지금 돌아보면, 그때 내가 아이에게 들려준 말들은 환상이었다. 그때의 나는 해외 생활에 대한 꿈만 가졌을 뿐 현실은 모르는 사람이었으니까. 즐거움의 연속일 거라는, 환상을 그리는 나의 말에 반응하는 것은 둘째였다. 둘째는 나와 함께 해외 생활에 대한 꿈을 키웠다. 호기심 많고 즐거운 걸 좋아하는 둘째는 내 말에 현혹되어, 빨리 일본에 가길 바랐다. 어느 순간부터는 일본 이야기가 나오면 둘째까지, 한 번도 경험해보지 못한 해외 생활의 환상에 젖어 큰 아이를 설득했다.


- 누나, 일본에 가면 지금보다 재미있을 거야. 그러니까 울지 마.

생각보다 짐이 많았다. 우리를 배웅하는 양가 부모님의 얼굴도 생각보다 무거웠다. 두 아이와 이 많은 짐을 들고 잘 들어갈 수 있을까, 여전히 머릿속이 복잡했다. 일본 이사를 준비하면서 내내 그러했던 것 같다. 다음 일에 대한 걱정과 불안으로 다른 것들을 신경 쓸 여유가 없었다. 그런데 공항에서 마주한 양가 부모님의 얼굴을 보자 이상한 감정이 몰려왔다. 자꾸 내 눈을 피하며 돈 봉투만 내 손에 억지로 쥐어주는 친정엄마와 아이들과 시간을 조금이라도 더 보내고 싶어 하는 시부모님의 모습을 보면서 새삼스레 실감했다. 지금까지 내가 다른 데 신경 쓰지 않고 준비해 온 일이 떠나는 준비였다는 것을.


여전히 들뜬 둘째와 침울한 큰 아이, 그리고 여전히 정신없고 불안한 내가 도쿄 하네다행 비행기에 올라탔다. 큰 아이는 마스크를 벗지 않은 채 비행기 안에서 아무것도 먹지 않았다. 둘째는 큰 아이가 먹지 않은 음식까지 제가 먹어가면서 비행을 즐겼다. 나는 드디어 큰일이 정리되었다며 홀로 안도감에 젖어 있었다. 그동안 내가 준비한 일들이 큰 문제없이 진행되었다는 것이 꽤 만족스러웠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어느 틈인가를 비집고 들어온 마음이, 양가 부모님을 생각하라고 했다. 그러자 갑자기 그동안의 피로가 몰려왔다. 자고 싶었지만 잠은 계속 나를 비켜갔다.


하네다 공항에 마중 나와 있던 신랑을 따라 택시를 탔다. 둘째 아이는 택시 안에 작은 모니터로 나오는 광고 방송에서 눈을 떼지 않았다. 큰 아이는 여전히 말이 없었다. 보조석에 앉은 신랑은 우리를 살피며 금방 도착할 거라고 말해주었다. 하지만 기사님이 고속도로 출구를 놓치는 바람에 택시는 한참을 돌아갔다. 신랑은 어쩔 수 없는 일이라고 우리를 안심시켰다. 나는 아침 이후 아무것도 먹지 않은 큰 아이가 걱정되었다. 9시가 조금 넘어서 드디어 집 앞에 도착했다. 예상 시간보다 30분 정도 늦은 시간이었다. 기사님은 집 앞에 도착하자 계산을 하기도 전에 차문을 열고 내리더니 우리 짐을 빠르게 내리기 시작했다. 따라 내린 나와 신랑도 남은 트렁크를 같이 내렸다. 짐을 다 내리자 기사님은 미안하다는 인사와 함께 택시비를 받지 않겠다고 했다. 신랑은 택시비를 안 낼 수는 없다며 돈을 내밀었다. 기사님과 신랑이 한참을 실랑이를 하자 큰 아이가 겁먹은 얼굴이 되었다. 괜찮다고 했지만 긴장한 얼굴은 쉽게 풀리지 않았다. 둘째는 빨리 집에 들어가고 싶다며 거리에 주저앉아버렸다. 한참 실랑이 끝에, 실수로 돌아간 거리는 빼고 정산을 했다. 기사님은 미안하다는 인사를 수없이 반복한 뒤 차에 올라탔다.


10시가 가까워진 밤, 집 근처 갈 수 있는 식당이 없었다. 할 수 없이 아이 동반이 가능한 이자카야에 들어갔다. 비좁은 자리에 우리 네 가족이 옹기종기 붙어 앉았다. 두 달 넘는 시간 혼자 생활했던 신랑은 우리가 반가운지 얼굴에 웃음이 묻어났다. 평소 못 먹는 콜라를 손에 쥔 둘째도 싱글벙글이었다. 그런 둘을 마주 보고 앉은 나는 따라 웃다가 얼른 집에 들어가서 눕고 싶다고 생각했다.


각자 마실 음료잔을 들고 건배를 마친 뒤, 신랑은 큰 아이가 힘겹게 말하는 의견을 수렴하여 안주를 시켰다. 큰 아이는 제가 먹고 싶었던 음식들이 하나 둘 나오자 천천히 음식을 입에 넣었고 그러면서 조금 진정이 되었다. 하지만 마스크는 계속 쓰고 있었다. 음식을 먹을 때만 한 손으로 마스크를 잡아 내릴 뿐, 벗지 않았다. 신랑은 아이들이 음식을 먹어치우기가 무섭게 계속 음식을 주문했다. 때마다 점원이 왔고 뭐라 말하며 빈 그릇을 치웠고 음식을 내주었다. 점원이 말을 할 때마다 우리는 꿀 먹은 벙어리가 되어 신랑을 바라보았다. 손 글씨로 적힌 일본어가 가득한 메뉴판에서 우리가 먹고 싶은 음식을 찾는 것도 신랑의 힘을 빌리지 않으면 할 수 없었다. 이런 것이구나, 싶었다. 여행이라면 분명 즐겁기만 할 일이 생활이라고 생각하자 가볍게 웃어넘길 수 없었다. 일본행 비행기에 올라타면서 이제 다 된 거라고 생각했던 마음이 이제 시작이야,라고 말하는 것 같았다.

집은 텅 비어 있었다. 신랑이 일본에서 구입한 가전제품들만 있을 뿐이었다. 신랑 지인이 준 침구 세트 하나가 거실 바닥에 놓여 있었다. 거실은 전면 창으로 되어 있었는데 커튼이 없었다. 주변 오피스 건물에서 우리가 훤히 들여다 보였을 것이다. 호기심이 넘치는 사람이라면, 빈집에 들어온 우리 네 사람을 궁금해할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그런 생각을 하자 거실 불을 켜는 게 조심스러웠다. 아이들은 전면 창이 신기한 지 한참을 서서 주변을 바라보았다.

창에 서서 보이는 모든 길을 우리가 같이 걷는 날이 올까, 상상하며 집 주변으로 난 길들을 한참 바라본 기억이 난다.


오랜만에 네 가족이 한 자리에 누웠다. 주변 건물들의 불빛이 스며들어 거실은 한밤 중이면서도 한밤 중이 아니었다. 아침부터 계속된 이동으로 너무 피곤했는데 잠이 쉽게 들지 않았다. 내 안에서 요동치는 감정들이 도대체 어떤 것인지 알아내고 싶었지만 끝내 알 수가 없었다. 속이 시원하면서도 아쉬웠고 피곤하면서도 긴장을 놓을 수가 없었다. 많은 이들의 얼굴이 스쳐갔고 성급히 정리한 짐들이 생각났고 지난 준비 과정이 떠올랐다. 예정대로 이 집에 이렇게 누워있으니 모든 일들이 계획대로 된 것 같으면서도 그중에 잘못된 것이 있으면 어쩌지 하는 불안감은 쉽게 떨어지지 않았다. 동시에 새집이 주는 기대감을 겁도 없이 받아 들었다.


누군가 작은 침구 세트에 옹기종기 모여 누운 우릴 지켜보고 있다면, 아무것 없는 우리를 응원해 주면 좋겠다는 상상을 했다. 아이들은 걱정과 달리 금방 곯아떨어졌다. 주변 건물들의 불빛이 아이들의 얼굴을 따뜻하게 보듬어 주었다. 그래, 이 불빛들에 익숙해져야지. 여기가 우리 집이지. 생각하자 조금 긴장이 풀렸다. 하지만 여전히 내가 만지작 거리는 이 마음이, 이 느낌이, 이 감정이 뭐라고 말할 수는 없었다.


- 고생했어.

신랑이 내 손을 잡으며 말했다. 말없이 고개를 끄덕이다 잠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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