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가 준 참깨
어머님이 주신 검정 비닐봉지를 꺼냈다.
한 김 식혀 반찬 그릇에 담은 우엉조림 위에 깨를 뿌리려고 할 때였다. 양념통에 참깨가 얼마 없었다. 저녁 설거지까지 모두 끝낸 밤이었다. 얼른 반찬 뚜껑을 닫아 냉장고에 넣으라고, 깨는 내일 오전에 볶아서 뿌리면 된다고, 안에서는 분명 그렇게 말했다. 그런데 두 손이 문제였다.
얼마 전에 깨를 다 먹어간다고 하자 어머님이 "사 먹지 말라"며 주신 검정 비닐봉지를 꺼낸 것이다. 그만 씻고 자자고 외치는 내 안의 목소리를 무시한 두 손이 기어코 꽉 묶인 검정 비닐봉지를 풀어헤친다. 양옆으로 늘어지는 검정 비닐봉지를 따라 생 참깨들이 봉지 안에서 넓게 늘어진다. 마음은 다시 한번 싱싱한 국내산 참깨가 맞으니 볶는 건 내일 아침에 하자는데, 이번에도 두 손이 문제다. 검정 비닐봉지를 들고 싱크대로 간다. 쌀 씻는 볼에 생 참깨를 적당히 붓는다. 그 위로 조리수를 틀며 동시에, 후회한다. 내일 아침에 할 걸. 그러나 이미 물에 젖은 깨는, 볶는 것 말고 달리 방법이 없다. 작은 체망을 오른손에 쥔다. 물과의 만남이 어색해 물속으로 들어가지 못하고 수면 위에서 어쩔 줄 몰라하며 서성이는 깨들을 휘휘 저어 물 안으로 담갔다.
깨를 처음 볶은 건, 2년 전이었다. 그날도 저녁이었다. 저녁 식사를 끝내고 설거지까지 마친 저녁, 텅 빈 참깨 통이 눈에 들어왔다. 엄마가 플라스틱 통에 담아준 생 참깨를 선반에서 꺼냈다. 꽤 오래전에 이모가 농사지은 거라고 받은 것 같은데 그게 언제인지 기억나지 않았다. 그만큼 오래된 참깨였다. 플라스틱 뚜껑 위를 살포시 덮고 있는 먼지를 쓱 닦고 뚜껑을 열었다. 잘 마른 참깨는 오래된 것처럼 보이지 않았다.
28cm 웍을 꺼내 참깨를 쏟아붓고 인덕션 전원 버튼을 눌렀다. 나무 주걱으로 웍 안을 천천히 저었다.
어?
참깨들 사이로 얇고 가벼운 나뭇잎 부스러기가 올라왔다. 손가락으로 얼른 집어 빼냈다. 나무 주걱으로 참깨를 다시 뒤적였다.
어머, 이건 뭐야?
잘린 손톱 크기만 한 쇠 조각이 나왔다. 나무주걱으로 튕겨내듯 골라내 마지막엔 손가락으로 집어냈다. 나무 주걱으로 크게 원을 그리며 뒤적였다.
이건 또 뭐지?
모래 알갱이보다 조금 큰 돌이었다. 빨리 잡아 뺐다. 뒤적뒤적 크게 저으니 좀 전에 나온 쇠 조각이 또 보였다. 손가락으로 쇠를 집어 꺼내려는데 손끝에 닿는 참깨가 좀 전과 달리 뜨근했다. 인덕션 전원 버튼을 눌렀다. 허리를 푹 꺾어 얼굴을 웍 가까이 댔다. 참깨를 하나하나 셀 기세로 두 눈에 힘을 주었다. 나무 주걱을 휘저으며 참깨가 아닌 것들을 골라냈다. 몇 개만 골라내면 끝날 줄 알았는데 휘저을 때마다 이물질이 나왔다. 시간이 얼마나 지났을까 슬슬 허리가 불편해지기 시작했다. 주방 수납장을 열어 큰 볼을 꺼냈다. 큰 볼에 웍에서 볶던 참깨를 쏟아부었다. 그대로 주방 바닥에 앉았다. 두 다리 사이에 큰 볼을 끼고 앉아 손으로 참깨를 뒤적였다. 뜨뜻한 온도가 느껴지는 손가락 사이로 참깨들이 쏟아지고 흩어졌다. 참깨들 사이로 발견되는 이물질들. 휘저어 돌을 골라내고, 또 휘저어 쇠 조각을 골라내고, 나무주걱을 뒤적여 참깨들 사이로 얼굴이 비죽이 내민 부서진 나뭇잎들을 집어냈다. 영원히 끝나지 않는 일처럼 느껴졌다.
엄마, 목말라서 나왔어요.
큰 아이가 나와 참깨가 든 볼을 번갈아가며 쳐다보며 정수기 버튼을 눌렀다. 아이가 물을 마시며 내 눈치를 살피더니 물 먹던 컵을 내려놓았다.
엄마, 화났어요?
아니.
한숨이 말끝에 길게 따라붙었다. 아이가 다시 내게 물었다.
근데, 엄마 지금 뭐해요?
아이가 참깨 속에 파묻힌 내 손을 호기심 가득한 눈으로 바라봤다.
깨를 볶다가 돌도 나오고 쇠도 나와서 골라내는 중이야,라고 말하면 되는 것이었다. 하지만 참깨 사이를 비집고 얼굴을 내미는 이물질들 때문에 짜증에 흠뻑 젖었던 나는, 애초에 공격하기 위해 태어난 입을 가진 사람처럼 뾰족한 말로 아이를 찔렀다.
너, 안 자니?
아이는 대답 대신 걸음을 재촉해 제 방으로 들어갔다.
한숨과 함께 내 몸보다 크게 자라난 짜증이 입술을 비집고 나왔다. 싱크대에 등을 기댔다. 시계를 보니 1시간이 훌쩍 지나 있었다. 참깨 속에서 손을 빼내자 또 새로운 이물질이 고개를 내밀었다. 급기야, 내 감정은 이 참깨를 준 엄마를 미워하는데 이르렀다. 엄마에게서 받을 땐 큰 이모가 직접 농사지은 참깨라 귀한 거라 했는데, 그런 것은 생각나지 않았다. 당장 엄마에게 전화를 걸어 왜 이렇게 이물질 많은 참깨를 내게 준 거냐고 따지고 싶었다. 엄마가 미웠다. 그리고 참깨 하나 때문에 엄마를 미워하고 있는 내가 싫었다.
안 자?
이번엔 신랑이었다. 신랑은 나와 볼에 담긴 참깨와 그 옆에 나뒹구는 이물질들을 보더니 말했다.
그걸 손으로 언제 다 골라내?
나도 몰라, 하지만 입 밖으론 아무 말도 나오지 않았다. 눈으로 강렬하게 신랑을 쫓고 있을 뿐이었다. 눈치 빠른 신랑은 얼른 발길을 돌려 안방으로 향했다.
무슨 방법이 있겠지. 나 먼저 잔다.
한참을 씩씩대며 참깨를 쳐다봤다. 그러다 생각의 방향은 엄마에게서 나에게로 향했다. 아마도 피곤해서 짜증이 쉽게 났을 거라고. 아마도 내일 아침에 했으면 이렇게까지 화가 나지는 않았을 거라고. 하지만 그걸 알면서 무리한 내게 모든 잘못이 있다고. 자책의 화살이 나에게 정확하게 꽂혔을 때, 참깨가 눈에 들어왔다.
참깨의 고향은, 장수군 번암면 논곡리 큰 이모 집 앞마당일 테다. 큰 이모 집 앞마당은 시골집 같지 않았다. 잘 정돈된 잔디가 깔린 단아하고 정갈한 곳이었다. 그래서 나는 큰 이모 집이 좋았다. 큰 이모 집 마루에 앉아 초록의 말끔한 마당을 보고 있노라면 텔레비전에서 본 부잣집에 있는 것 같았다. 마당 옆으로 부지런한 큰 이모가 가꾸는 텃밭이 있었는데, 내가 씨름하는 참깨도 그곳에서 길러진 것이었다. 나를 괴롭히는 이물질들이 이모집에서 만들어졌을 리는 없다. 아마도 참깨를 탈곡하는 과정에서 들어갔겠지. 생각은 이제, 이모가 곧게 펴지지 않는 허리에 한 손을 얹고 힘들게 텃밭을 오갔을 모습을 상상해내고 있었다. 부지런한 큰 이모가 근심 걱정을 달고 키운 귀한 참깨다. 큰 이모의 참깨는 마트에서 파는 중국산이나 인도산 참깨보단 작았지만 반들반들 뽀얀 빛을 머금고 있었다. 외국산과는 비교가 안 되게 야무져 보였다.
큰 이모가 정말 애써서 키운 참깨구나. 엄마가 정말 귀하고 좋은 참깨를 내게 준 거구나.
피곤에 이끌려 나온 짜증이 갈 데를 잃고 사라지니 비로소 마음의 여유가 찾아졌다. 엄마에게 따질 마음으로 손에 쥔 핸드폰으로 검색할 생각이 든 것도 그때다. 검색창에 참깨 볶는 법을 쳤다.
참깨도 쌀처럼 물로 씻어야 했다. 물로 씻으며 돌과 같은 이물질을 골라내고 물기를 제거한 후에 센 불로 볶는 것이었다. 그제야 복조리 체를 쥔, 살결이 뽀얗던 엄마 손이 생각났다.
세월의 떼를 머금은 복조리 체는 체부분은 노란색이었지만 체를 감싸며 손잡이까지 이어진 테두리는 파란색인 플라스틱이었다. 엄마는 손목 움직여 수면 위에 가볍게 원을 그려 물살을 찰찰 건드렸다. 제법 절도 있는 동작이었다. 그러면 거짓말처럼 물속에 잠긴 참깨들이 떠올라 엄마가 쥔 노란 체 위로 착착 올라와 담겼다. 엄마는 물속에 참깨가 다 사라질 때까지 손목을 돌려 찰찰 물소리와 함께 작은 원을 그렸다. 싱크대에 붙어서 그걸 바라보는 어린 나는 '우와' 감탄을 했다.
나는 얼른 자리에서 일어나 참깨가 든 볼에 조리수를 틀었다. 복조리 체 대신 작은 국자 크기만 한 스테인리스 체망을 손에 쥐었다. 참깨가 물에 온전히 잠겼을 때 손을 넣어 휘저었다. 참깨들이 물 위로 떠올랐다가 시간과 함께 가라앉았다. 바스러진 나뭇잎 같은 가벼운 이물질들이 수면 위로 떴다. 체망을 슬쩍슬쩍 움직여 나뭇잎 부스러기들을 담았다. 다시 손을 손을 넣어 휘저으며 깨를 씻었다. 투명하던 물이 참깨 색으로 물들었다. 쌀을 씻듯 두 어번 씻고 나니 참깨가 막 세수를 마친 아이 얼굴처럼 뽀얗게 빛났다. 다시 물을 받았다. 손목을 움직여 작은 원을 그리던 엄마 손을 생각하며 오른손에 작은 체망을 쥐었다. 엄마처럼 체로 수면을 깔짝깔짝 건드리며 작은 원을 그렸다. 물살 따라 물 위로 떠오르는 참깨들이 체 위로 속속 담겼다.
하지만 참깨는 많고 체망은 너무 작았다. 한숨이 비집고 나오려는 걸, 다시 엄마의 손목을 상상하는데 집중하기로 했다. 엄마를 따라 손목을 움직였다. 일평생 나와는 어울리지 않았던, '몰두'라는 단어가 나를 지배했다. 손목 움직임에 따라 체가 움직이면 물이 움직이고 물속에 있는 참깨들이 춤추듯 떠올랐다. 움직임 하나하나에 집중하다 보니 어느덧, 물속에는 모래알만 한 돌만 남았다.
시간이 얼마나 걸렸는지는 중요하지 않았다. 작은 체망 하나로 해냈다는 과한 뿌듯함이 밀려왔다. 마음속에 붙어있던 근심 걱정들까지 그 뿌듯함에 밀려 자리를 잃고 떨어져 나갈 정도로, 과한 뿌듯함이었다. 웃음이 실실 새어 나왔다.
건져낸 참깨는 커다란 체망 위에 올려 물기를 뺐다. 인덕션 위에 잠시 쉬고 있던 웍을 올려 뜨끈하게 달궜다. 웍 위로 손을 대봤다. 뜨거운 열기가 느껴졌다. 참깨를 탈탈 털어 넣었다. 다시 나무 주걱을 쥐고 참깨를 뒤적였다. 뒤적일 때마다 하얀 수증기가 피어올랐다. 하얀 수증기가 얼굴에 닿으면 참깨의 고소한 냄새가 느껴졌다. 점점 진해지는 참깨 냄새를 맡으며 참깨를 볶았다. 어느새 나는 휘젓고 냄새 맡는 것을 즐기고 있었다. 거무튀튀하고 날씬하던 참깨들이 말간 빛을 내며 통통해졌을 때, 인덕션 전원 버튼을 눌렀다.
자정이 지나 있었다.
그러니까 그날을 기억하는 두 손이, 망설임 없이 다시 작은 체망을 잡아 든 것이다. 그때처럼 손목으로 작은 원 그리기를 무한 반복하며 찰찰 거리는 물소리에 귀 기울이고 물살을 따라 떠오르는 참깨들의 춤사위에 집중해 지금 머릿속을 헤집어 놓은 여러 복잡한 생각들을 떨쳐내라고 말이다.
나무 주걱으로 축축한 참깨들을 뒤적이자 하얀 수증기를 타고 고소함이 퍼진다. 시간과 함께 참깨는 통통하게 부풀어 오른다. 말갛고 뽀얀 빛을 가지고서. 나무 주걱을 따라 이리로 저리로 올라갔다 내려갔다 우르르 쏟아지고 쌓아 올려지는 참깨들을 본다. 근심과 고민 속에 끌어안고 있는 일들이 부스러기처럼 떠오른다. 뒤적이는 나무 주걱 밑으로 작은 부스러기가 보여 골라낸다. 나무 주걱으로 참깨를 뒤적인다. 마음속 근심들도 뒤적인다. 나무 부스러기 같은 작은 티끌들이 우르르 솟아오를 것만 같다. 혹은 모래알만 한 돌처럼 무겁게 가라앉아 끝끝내 골라질 수도 있다. 나무 주걱을 따라 부스러기 하나가 모습을 드러낸다. 손가락으로 잡으려다 놓치고 놓친다. 그 위로 참깨가 덮인다. 어떡하지, 짜증이 이번에는 제대로 나오겠다고 채비를 할 때, 나무 주걱으로 참깨를 뒤집어 후루룩 덮는다. 괜찮아, 부스러기 하나쯤은. 짜증도 참깨 더미에 후루룩 덮인다. 이 정도 티끌은 무해하지 않을 거야. 나무 주걱을 다시 뒤적인다.
그리고 얼마 뒤에 나는, 엄마에게 깨 볶은 이야기들을 털어놓았다. 엄마를 미워했던 짧은 순간까지 고백하면서. 엄마는 아이고를 내뱉으며 잘했다고 칭찬의 말을 던졌다. 그 말에 의기양양해진 나는 참깨 볶는 일은 마음 수련하는 과정 같았다고, 이젠 마음이 힘들면 참깨를 꺼내 볶을 것 같다고, 깨 볶는 두 시간 동안 정말 많은 생각을 했노라고 말했다. 그러자 엄마가 고개를 뒤로 살짝 젖히며 깔깔 웃었다.
깨를 한 시간 볶았다고? 어머, 얘는! 참깨는, 그렇게 오래 볶을 필요 없어. 센 불에 고작 20분 정도 볶으면 돼. 20분이 뭐야, 10분만 볶아도 되는 걸.
아, 깔깔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