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정한 콩나물

끝 날 것 같지 않아도

by 글 쓰는 사람

마트에서 산 봉지 콩나물을 큰 볼에 쏟아부으면서 조리수를 틀었다, 가 얼른 조리수를 잠그고서 물을 버렸다. 콩나물 뿌리가 너무 길었다.

지금까지 콩나물을 사면, 찬물에 담갔다가 헹구면서 대가리에 남아 있거나 어딘가에 붙어있는 껍질만 정리해 사용했다. 그런데 이번에 산 콩나물은 뿌리가 유난히 길고 지저분했다. 평소처럼 찬물에 담가 대가리에 붙은 콩껍질만 정리하려다가, 마음을 고쳐 먹었다. 마침, 시간적 여유가 있었고 마침, 그런 마음이 들었기 때문이다.


식탁에 크고 작은 쟁반 두 개를 나란히 놓았다. 큰 쟁반에 콩나물을 담고 왼손으로 콩나물을 하나씩 잡아 올렸다. 오른손으로 콩나물 뿌리를 똑똑 하나하나 끊었다. 길고 지저분한 뿌리가 잘려 단정해진 콩나물은 새 쟁반에 담았다. 큰 쟁반에는 가늘고 지저분한 콩나물 뿌리가, 뽑힌 머리카락처럼 쌓였고 작은 쟁반에는 단정한 콩나물의 하얀 몸과 노란 머리가 겹겹이 쌓여 갔다.


엄마, 콩나물을 왜 잘라요?

주방 앞을 지나던 큰 아이가 호기심 가득한 얼굴로 물었다.

콩나물 꼬리가 너무 길고 지저분해서.

아이는 여전히 이해가 잘 안 된다는 얼굴이었다.

그냥 먹어도 되잖아요?

그렇긴 한데, 깔끔하면 더 좋잖아.

아이가 '아'하는 입모양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고도 내 주변을 쉬이 떠나지 못하는 큰 아이가 말했다.

저도 한 번 해볼래요.

그 말이 몹시 반가운 나는 얼른 옆자리를 내주며 콩나물 다듬는 법을 알려주었다.

콩나물을 잡고 여기를 이렇게, 손톱으로끊어내면 돼.

고개를 끄덕인 아이는 제 성격답게 천천히 신중하게 콩나물을 다듬었다.


아이와 나란히 앉아 콩나물을 다듬고 있자니 드라마 속 평온한 저녁 풍경이 그려졌다. 엄마와 딸이, 혹은 할머니와 손녀가, 혹은 시어머니와 며느리가 식탁에 붙어 앉아 도란도란한 이야기를 나누며 콩나물을 다듬는 풍경은, 평온한 가정이라면 이래야 한다는 듯이 드라마에서 자주 나오는 풍경이었다. 엄마 옆에 앉아 드라마를 보던 어릴 때는, 다들 콩나물 반찬은 빼놓지 않고 매일 해 먹는구나, 하는 생각을 할 정도로 드라마 주방 장면에서 콩나물 다듬는 모습이 빠지는 경우는 드물었다.


큰 아이가 콩나물 다듬는 일에 너무 집중한 탓에 우리 사이에 도란도란한 이야기는 없었지만 그럼에도 좋았다. 평온한 풍경 속에 나와 내 아이가 있는 것만으로도 입꼬리가 좋다고 실룩거렸다.


야채가게에 가서 콩나물을 사 오는 일은 내 단골 심부름이었다. 엄마가 오백 원짜리 동전을 주면서 콩나물을 사 오라는 주문을 하면 신이 났다. 놀이터에서 놀다 끌려 들어와 입을 비죽이다가도 엄마가 돈을 쥐어 주며 심부름을 시키면 그렇게 신이 날 수가 없었다. 동전을 손에 쥐고 집을 벗어나는 것은 언제나 조금 흥분되는 일이었다. 동전 뒷면에 그려진, 날개를 활짝 펼친 학의 우아한 몸짓을 손끝으로 매만지며 콧노래를 흥얼거렸다. 다리도 이에 질세라 길 위에서 춤추듯 새로운 박자를 만들며 뛰듯 아니 날듯 걸어갔다.

야채가게는 아파트 상가 건물 지하에 있었다. 지하로 내려가자마자 있는 야채가게는 원래 가지 않는 곳이었는데 그 집 딸과 한 반이 되면서부터 가게 되었다. 야채 가게에 도착하면 인사를 하고 내 순서를 기다렸다. 더러 아는 아줌마를 만나면, 엄마 심부름을 잘하는 착한 아이가 되어 용돈으로 백 원을 받는 행운도 있었다. 그래서 엄마 심부름을 할 때면 주위를 더 찬찬히 살폈다. 앞선 손님들이 가격 흥정 끝에 물건을 구매해 가고 나면 드디어 내 차례가 되었다. 대게, 내가 "콩나물 오백 원어치 주세요"라고 말하기도 전에 주인아주머니가 "콩나물 사러 왔니?" 하고 물었기에 주인아주머니와 눈이 마주치면 고개를 끄덕이는 것만으로 주문이 끝날 때도 있었다. 주문이 정상적으로 처리되면 주인아주머니는 못에 걸린 검정 비닐봉지 뭉치에서 비닐봉지 한 장을 뚝 끊어냈다. 장갑 낀 손에 침을 살짝 묻혀 검정 비닐봉지를 벌렸다. 그리고는 야채 가게 가장 앞에 있는 붉은 플라스틱 통 가까이 가선 검정 천을 열어젖혔다. 천을 열어젖히면 물기를 가득 머금은 노란 콩나물 대가리가 봄꽃처럼 반짝였다. 아주머니가 쫙 펼친 손으로 한 번에 많은 콩나물을 잡아 올림과 동시에 잡은 그대로 검정 비닐봉지 안에 담았다.

오늘, 엄마가 뭐 하신대?

아주머니가 물으면 나는 엄마의 주문을 떠올리며 콩나물국이요, 무침이요, 볶음이요 하고 답했다.

답에 따라 콩나물을 조금 더 넣어주는 날도 있었는데, 그 이유는 그날그날 콩나물의 생김새가 달랐기 때문이었다. 어느 날은 굴곡이라곤 찾아볼 수 없는 길쭉하고 통통한 몸을 가진 콩나물이었고, 또 어떤 날은 내 손가락만큼 짧고 둥글게 말린 콩나물이었다가 어느 날은 지저분한 뿌리를 길게 가진 콩나물이기도 했다. 그런 날은 "엄마한테 다듬어 쓰시라 그래라" 주의사항을 콩나물과 함께 건네주셨다.


콩나물을 사서 돌아오면 거실 바닥에 신문지를 깔고 앉았다. 비닐봉지를 탈탈 털어 신문지 위에 콩나물을 펼쳤다. 엄마가 주방에서 볼 하나를 갖다 주며 콩나물 상태를 살폈다. 그리고 그날 요리에 맞는 다듬기를 주문했다. 해산물 요리를 하는 날은, 콩나물 대가리와 뿌리를 모두 다듬어야 했고 국이나 무침을 하는 날은 뿌리만 다듬었다. 하지만 국이나 무침을 하는 날이 더 많았기 때문에 콩나물을 한 손에 다발처럼 쥐고서 다른 한 손으로 한 번에 대가리를 뜯어내는(재미있는) 일은 일 년에 한 번 있을까 말까 했다. 반면에 가장 많이 하는 콩나물 뿌리만 다듬는 일은 콩나물을 하나씩 들고 다듬어야 해서 재미도 없고 꽤 지루했다.


엄마, 저 그만할래요.

큰 아이가 콩나물을 제 손으로 한 움큼이나 될까 싶은 양을 다듬고서 말했다. 엄마와 딸이 함께 콩나물을 다듬는 장면은 꽤 그럴싸했지만, 드라마처럼 짧았다. 아쉬웠지만 지친 아이의 얼굴을 보니 더 하라고 말할 수도 없었다.

왜, 생각처럼 재미가 없어?

큰 아이가 고개를 끄덕였다.

좀 전에 작은 아이가 콩나물을 다듬는 우리 곁에 왔을 때, 우리는 작은 아이도 콩나물 다듬기에 관심이 있다고 생각했다. 이에 큰 아이는 제법 으스대며 작은 아이에게 콩나물 다듬는 법을 알려주었다. 그러자 작은 아이가 말했다. "난 이거 안 하고 놀 건데?" 큰 아이가 조금 당황하는 사이 작은 아이는 정말 거실로 가서 레고놀이를 시작했다.

알았어, 나머진 엄마가 할게.

근데, 이거, 계속, 안 끝날 것 같아요.

큰 아이가 콩나물 더미를 보며 말했다.


수북하게 쌓인 콩나물을 보면 그런 생각이 들 때도 있어. 그래도 하나씩 해 나가면 언젠가는 끝 나. 그 시간이 길고 짧은 건 나 하기에 달려 있지만, 이라고 큰 아이에게 말해주고 싶었지만 그러지 않았다.

거실에서 작은 아이와 함께 노는 큰 아이에게 이런 말이 들릴 리 없기 때문이다. 그러다 문득 어린 시절의 나는 왜 그런 생각을 안 해봤을까 생각했다.


그때 나는 얼른 콩나물을 다듬어서 콩나물 요리를 하는 엄마 옆으로 갈 생각만 했던 것 같다. 그러니 콩나물 다듬는 게 지겨울 리 없었다. 공부하는 두 언니들처럼 책상에 앉을 자신도 없었기 때문에, 어쩌면 더디게 끝날 듯 끝나지 않는 콩나물 다듬기는 즐거운 방패였는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콩나물 껍질과 뿌리가 수북하게 쌓인 신문지를 잘 오므려 돌돌돌 말아 뒷정리까지 끝마치면 들었던 엄마의 칭찬이 좋어서 그랬는지도 모르겠다.


끝나지 않을 것만 같았던 콩나물 다듬기가 끝나 식탁 자리에서 일어섰다. 새 학기라고 이발한 학생들처럼 단정한 콩나물이 담긴 쟁반을 들고 움직이자 큰 아이가 쫓아왔다.


정말, 끝났네!

큰 아이가 놀란 얼굴로 말했다.

생각보다 빨리 끝났지?

아이가 고개를 끄덕인다.

계속하다 보면 이렇게 끝이 나. 세상 모든 일이 그래,라고 말하고 싶었지만 참았다. 내 말은 주책맞게 길어질 거고 아이는 또 지겨운 얼굴이 될 테니까.

그래, 정말 끝났어.

단정한 콩나물을 깨끗한 물로 헹구고 체에 올려 물기를 뺐다. 웍에 기름을 달궈 다진 마늘을 볶다가 콩나물을 넣고 볶아낼까 하다가 단정한 콩나물을 보곤 편수냄비를 꺼냈다. 슬쩍 삶아 양념에 무치는 편이 더 어울려 보였다.


편수 냄비에 물을 담아 소금을 넣고 끓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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