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 졸인, 우엉조림

아련한 아릿한 맛

by 글 쓰는 사람

김치냉장고에 넣어둔 우엉을 일주일 만에 꺼냈다.

며칠 동안 끙끙대며 쉬이 해결하지 못한 일을 끝낸 오후였다. 마침내, 라는 단어가 주는 기쁨을 만지작 거리며 쉬고 싶었지만 밀린 집안일들이 눈에 들어왔다. 세탁기를 돌리고 청소기를 돌리고 누레진 베개 커버를 갈고 나니 일주일 전에 장 본 것이 생각났다. 그중 하나가 김치냉장고에 넣어둔 우엉 1kg였다. 혹시나 상해 못 쓰게 되어버렸으면 어쩌나 마음 졸이며 김치냉장고 문을 열었다.

우엉이 담긴 비닐 안쪽이 흙과 습기로 엉망이다. 싱크대에 우엉을 쏟아붓고 감자칼로 흙 묻은 껍질을 벗겨낸다. 뽀얀 속살을 드러낸 우엉을 물로 깨끗이 씻어 도마 위에 올린다. 세라믹 칼을 꺼내 잡는다. 얇게 채를 썰어야 할 때는 세라믹 칼이 좋다. 우엉을 삼등분 해 자른다. 잘린 우엉 한 토막이 내 검지 손가락만 하다. 큰 유리볼에 찬물과 식초를 섞고 토막 낸 우엉들을 담근다. 다시 한 토막 씩 꺼내 얇게 저민 다음, 가지런히 모아 채를 썬다. 열 맞춰 가늘게 잘린 우엉은 다시 식초 물에 담근다.


가지런하게 잘 잘린 우엉들을 보며 잠시 만족감에 휩싸인다. 내가 만든 우엉조림을 엄마에게 싸주었을 때, 엄마가 물었던 말도 떠올려 본다. "이렇게 잘린 우엉은 어디서 샀어?" 콧바람 섞인 웃음이 새어 나온다. "샀냐니, 이거 다 내가 썬 거야!" 그때의 나는 참으로 의기양양했다. 내 말 끝에 엄마의 입이 반쯤 열리며 원을 그렸다. "엄마보다 낫네." 과한 칭찬에 쑥스러워 어쩔 줄 몰라할 때, 엄마가 진지한 얼굴로 말했다. "아니, 진짜야. 잘했어." 엄마의 눈이 내가 만든 우엉조림에 한동안 머물렀다.


아직 썰어야 할 우엉이 많이 남아 있지만, 괜찮다. 그때의 엄마를 떠올리면 더 잘 썰고 싶다. "이것 봐, 엄마. 그때보다 더 잘 썰었지?" 나이도 잊고 자랑하고 싶은 마음에 불이 붙어 내 손은 더 정교하고 침착하게 움직인다. 차가운 식초 물을 오가는 손은 좀 더디어도 칼질하는 손이 즐거운 이유다. 한 시간 여 만에 우엉 1kg 채 썰기를 끝내자 하얀 세라믹 칼이 옅은 갈색으로 물들었다.


기억 속에 남은 그날의 빛깔도 그렇다. 꼭 우엉 물이 든 것처럼 흐릿하고 옅은 갈색빛.


붉은 기운을 가진 커다란 나무 앞으로 너른 평상이 있다. 그곳에 어린 내가 앉아 있다. 회색의 승복 바지를 입은 아주머니들이 내 주변으로 삼삼오오 앉아 있다. 평상 앞으로는 비탈이 심하고 아래에는 물이 흐르고 있다. 나무 뒤 멀리 높은 산이 보인다. 산 꼭대기가 하늘에 닿을 것처럼 뾰족하고 높다. 어린 나는 비탈 아래 물 구경을 하다 산을 올려다보다 말갛게 파란 하늘을 본다. 한적하고 조용한 동네다. 아름답지만 낡은 마을이다. 아마도 탄광촌이 아니었을까, 어린 나는 생각한다. 승복 바지를 입은 아주머니가 쿠킹포일로 포장한 김밥 한 줄을 내게 준다. 나는 김밥을 받고 멀리 엄마를 본다. 우리가 타고 온 관광버스 앞에 서 있는 엄마는 지쳐 보인다. 멀미를 한 것 같다. 누군가 내게 김밥을 먹으라고 한다. 나는 엄마에게서 시선을 거두고 쿠킹포일을 살살 돌려 뜯는다. 모습을 드러낸 김밥 꼬다리를, 입으로 문다. 엄마가 싸준 김밥만 먹어봤던 나는 두 눈이 휘둥그레진다. 입안에 든 김밥을 씹으면서 손에 쥔 김밥을 본다. 오이와 진한 갈색의 무언가를 본다. 강렬하고 아릿한 맛이 입 안에 맴돈다. 입안에 김밥이 사라질 때쯤 다시 김밥을 입에 넣고 씹는다. 강한 향이 입안 가득 퍼진다. "이게 뭐예요?" 옆에 앉은 아주머니에게 묻는다. 내 손은 김밥 안에 자리한 진한 갈색을 가리킨다. 아주머니가 김밥을 씹으면서 답한다. "으응, 우엉을 보고 그러는구나. 우엉. 우, 엉." 나는 고개를 끄덕인다. 이게 우엉이구나, 우, 엉. 짭조름하면서도 아릿한 맛이 나는 우엉.


그때 먹은 우엉조림은 우엉의 향이 강하고 단맛이 없었다. 씹으면 씹을수록 그 맛과 향에 중독되어 김밥을 다 먹어가는 것이 꽤 아쉬웠던 기억이 난다. 그때까지 엄마 김밥만 먹어본 나는 김밥에는 맛살, 당근, 단무지, 계란, 시금치만 들어가는 줄 알았다. 그러니 소금기 없이 아작아작 씹히는 오이에 간장에 절여진 우엉이 든 김밥은 충격에 가까운 맛이었다. 그날에 대한 다른 기억은 없음에도 오직 김밥에 든 우엉만은 분명하게 기억하는 것만 봐도 그 김밥 맛이 내게 얼마나 충격적이었는지, 되짚어볼 수 있다. 우엉이 든 김밥의 맛과 김밥을 먹었던 그 순간의 풍경들만이 남은 기억.


그때, 기억 나? 무슨 절에서 강원도 태백 같은 데 갔던 거.

언젠가 우엉조림을 하다 엄마에게 전화를 걸어 물었다.

절? 무슨 절?

오래된 기억이라 엄마는 시간을 되짚는데 시간이 걸리는 것 같았다.

엄마, 옛날에 절 다녔잖아. 여자 스님 있는 절.

내가 힌트 같은 한 마디를 더 내뱉으니 엄마 기억도 되살아났다.

아, 그때도 누구 엄마가 같이 가자고 해서 갔어. 근데, 그걸 네가 어떻게 아니? 너는 참 별 걸 다 기억한다.

나는 다시 기억 속으로 엄마를 붙잡고 들어갔다.

그래, 그때 그 절에서 강원도 갔잖아. 그때 먹은 김밥에 우엉이 들어 있었어.

몰라, 나는.

엄마는 헤집어진 과거가 너무 깊고 많아서인지 찾지를 못했다.

강원도 어디 간 거는 알아도, 김밥을 먹고 그런 기억은 없어. 아유, 그때 나도 거기 가서 세상에 이런 데가 다 있나 했던 기억만 나.

근데, 거긴 우리 왜 간 거야?

몰라, 그런 기억은 없어. 그냥, 그때도 힘들었어. 맨날...

엄마는 되짚어지는 과거의 시간이 싫었는지 떠오르는 많은 말을 한숨으로 흘렸다.

근데, 거길 너도 같이 갔냐?

엄마 말씨가 갑자기 고향 남원의 말씨가 되어 끝을 둥글고 길게 굴렸다.

같이 갔어.

내 대답에 엄마는 고향 남원의 말씨를 가지고 와 혼잣말처럼 말했다.

내가 너를 데리고 거기를 갔어? 기억도 안 나. 근데, 네가 거길 같이 갔다고?

나는 , 대답했다.

엄마의 기억이 어디까지 가닿았는지 말이 줄었다. 조금 후에 엄마가 터지는 웃음과 함께 말을 내뱉었다.

이젠 다 기억도 안 나. 힘들었던 것만 기억나지.


그때 엄마는 절을 다녔다. 동네 아주머니들을 따라 이 절에 갔다가 저 절에도 가던 때였다. 그만큼 마음이 힘들고 마음 둘 데가 없는 때였던 것 같다. 머리가 많이 아프다고 했다. 더러는 하교해 오면 안방에서 옷걸이에 링거를 걸고 주사를 맞고 있는 엄마를 왕왕 보던 때다. 엄마가 아프다고 하면 아빠는 또 아프냐는 말과 함께 병원에 가보라고 했다. 엄마는 그 말에 더 아파했다. 그때 내가 초등학교 3, 4학년쯤이었으니 그때 엄마는 지금의 나와 비슷한 나이다.


잘린 우엉 1kg을 28cm 웍에 넣으니 한가득이다. 간장 양념은 우엉의 절반 정도만 넣는다. 뚜껑을 닫고 끓이다 보면 우엉에서도 수분이 나와 흥건해지기 때문이다. 물이 흥건해지도록 끓으면 뚜껑을 열고 본격적으로 졸이기 시작한다. 거품이 나도록 끓고 나면 우엉이 조금씩 갈색으로 물들기 시작한다. 간장 양념이 줄어들면서 우엉 색은 점점 진해진다. 흥건하던 간장 양념이 바닥을 보일 때까지 끓이고 뒤적이고 뒤적이며 끓인다.

한참만에 우엉조림이 완성되었다.


시간과 함께 점점 진해지는 우엉조림과 달리 그날의 기억은 점점 더 흐릿해져만 간다. 사실, 그날 내 입안을 가득 채웠던 우엉 맛도 흐릿해졌다. 아릿한 맛이 아련하게 남았을 뿐이다. 부디, 엄마의 기억에서는 아릿한 매운맛은 빠졌으면 좋겠다. 떠올리면 그저 아련하고 뭉근한, 그런 따뜻함만 남았으면 좋겠다. 끝 맛이 달짝지근한 내 우엉조림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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