못 먹어도 생물, 고등어조림

찬바람이 불면

by 글 쓰는 사람

태풍이 지나가고 높고 맑은 가을 하늘이 열리자 찬바람이 작년 이맘때 일을 물고 들어왔다.


생물 고등어,

두 마리 오천 원.


은행 일을 보고 집으로 가는 길이었다. 오늘 야채 시세는 어떤가, 하고 큰 길가에 있는 야채 가게 물건들을 눈으로 훑던 중이었다, 그것이 두 눈 가득 들어찬 것은.

박스를 오린 게 분명한 종이에 적힌, 생물 두 마리 오천 원. '생물'이라는 단어가 발목을 잡아 그냥 지나갈 수가 없어 가게 아주머니 앞으로 가 물었다. "이거 생물이에요?" 내 물음에 아주머니는 "고등어 생물, 두 마리 오천 원, 오천 원" 외치며 비닐봉지에 고등어 두 마리를 그대로 담아 내게 내밀었다. 나는 얼떨결에 봉지를 건네받으면서 다시 물었다. "생물 맞나요?" 아주머니는 애초에 질문 따위 중요하지 않다는 듯 다시 외쳤다. "고등어 생물, 두 마리 오천 원, 오천 원!" 그제야 나는 생물이라는 단어를 읽고서도 생물이 맞느냐고 묻는 내가 이상하고 낯설었다. 바쁜 아주머니의 손길을 보니 더욱 그런 마음이 들었다. 고등어 두 마리가 든 비닐을 어정쩡하게 들고서 "손질은 가게 안으로 들어가면 되나요?" 물었다. 아주머니는 변함없는 얼굴로 "고등어 손질 없이, 생물 두 마리, 오천 원, 오천 원!"을 외쳤다. 고등어 밑에 깔린 얼음처럼 굳은 얼굴로 서서 고개를 살짝 돌리니 내 뒤에서 대파를 만지작 거리던 노년의 부인이 날 보고 웃었다. "그냥, 집에 가서 하면 돼." 손을 허공에 휘저으며 또 웃었다. 그 옆에 선 아주머니도 내게 응원이 가득 담긴 눈빛을 보내주었다. 나는 고갯짓으로 낯선 아주머니 두 분께 감사의 인사를 전하고 고등어 두 마리 값 오천 원을 가게 아주머니에게 내밀었다.


비닐봉지를 거꾸로 잡아 고등어 두 마리를 싱크대에 쏟았다.


그냥, 하면 돼. 아니, 고등어 손질을 어떻게 그냥 해?


그날따라, 고등어의 푸른 등이 유난히 청아하게 빛났다. 동그랗고 커다란 고등어 눈알은 유독 쓸쓸해 보였다. 꽉 다문 채 아래로 곡선을 그리며 쳐진 입은 곧 제가 가진 억울함을 다 토하고 울 것만 같았다. 고등어 대가리 자체가 슬퍼 보였다. 이방 수염처럼 아가미 옆에 달린 짧은 지느러미까지 무척이나 애처로워 보였다. 그날따라, 그랬다.

싱크대에 반듯하게 놓인 고등어 두 마리를 한참 내려보다 이내 굳게 마음을 먹고 비닐장갑을 꼈다. 고등어 대가리 위로 차가운 물을 틀었다.


가을 무가 맛있어지는 찬바람이 불면 엄마도 고등어를 사러 시장에 갔다. "안녕하세요." 내 인사를 받은 가게 아주머니가 손짓을 하면 나는 가게 안으로 들어갔다. 그리곤 아주머니 손짓이 가리키는 곳으로 움직여 조금 전까지 아주머니가 앉았던 철제 의자에 앉았다. 아랫목에 앉은 것처럼 엉덩이가 뜨끈했다. 땅에 닿지 않는 발을 앞뒤로 흔들며 엄마를 봤다. 엄마는 언제나 그렇듯 고등어가 언제 들어온 거냐고 물었다. 아주머니가 오늘 아침에 들어온 거라고 하면 엄마는 한 번쯤 의심했다. "지난번에도 그래서 사갔잖아." 엄마는 말끝으로 바닥을 찍을 것처럼 말끝에 힘을 줬다. 그래도 아주머니는 끄떡없었다. "우리는 오늘 들어온 것만 팔아!" 엄마는 한 번 더 의심해보려고 눈을 흘겼지만 매번 잘 되지 않았다. 흘기던 눈꼬리가 결국엔 웃음을 그렸기 때문이다. 아주머니가 얼음에 파묻힌 고등어 두 마리를 골라 잡았다. 그러면 엄마는 큰 걸로 달라고 했고 아주머니는 들었던 걸 내려놓고 엄마를 쳐다봤다. "이게, 제일 커. 봐, 봐. 내가 다 알아서 잘 골랐지." 노란 고무장갑을 낀 아주머니 손이 쌓인 얼음들을 한쪽으로 치우며 고등어들을 엄마에게 보였다. 그 손짓은 아주 빠르고 현란했다. "아유, 못 당해, 못 당해. 사장님은 못 이긴다니까. 그걸로 주세요. 믿고 사야지." 엄마가 웃으면서 지갑을 꺼내 들었다. 아주머니는 좀 전에 잡았던 고등어 두 마리를 들고 가게 안 쪽으로 들어갔다. 가게 안쪽 구석에 있는 커다란 나무 도마 위에 고등어 두 마리를 올렸다. 중식도를 쥔 손목을 움직여 고등어 몸통을 툭, 툭 잘랐다. 고등어는 삼등분이 되어 비닐 안에 담겼다. 그 안으로 굵은소금을 촥, 촥 뿌리면 포장은 끝이 났다. 검정 비닐봉지에 한 번 더 담겨서 건네지는 고등어를 받은 엄마는 끝까지 의심을 놓지 않았다. "생물 아니면 나 다시 와요." 아주머니는 지겨운 얼굴로 엄마에게서 받은 지폐를 세며 "믿어라, 쫌! " 외쳤다. 아슬아슬한 둘이 싸우면 어쩌나 걱정한 것이 무색하게 아주머니와 엄마의 대화는 웃으면서 끝났다. 그럴 때마다 나는 어른들의 대화는 참 어렵다고 생각했다.

주방 서랍에서 중식도를 꺼낸다. 칼날을 고등어 대가리가 끝나는 아가미 위에 댄다. 손목을 움직여 위치를 잡고 확신이 들었을 때 팔꿈치와 어깨를 움직여 팔을 크게 든다. 그리고 생선가게 아주머니처럼 내리찍는다. 툭. 고등어 대가리가 연결된 뼈에 칼이 부딪히는 느낌이 들면서 대가리가 잘린다. 쉬워 보였는데 쉽지 않다. 이럴 때마다 천국은 다 간 것 같은 기분이다. 도마 째로 들어 고등어를 싱크대로 옮긴다. 핏물을 닦는다. 그다음은, 그다음은, 그렇지. 엄마의 고등어조림에서도 내장은 없었다. 토막 난 고등어 부위 중 내장이 있던 자리는 커다란 구멍이 나 있었다. 가위로 배 떼기를 갈라 내장을 꺼낸다. 검은 비닐 같은 얇은 껍질도 벗겨낸다. 고등어를 한 번 더 물로 깨끗이 씻어낸다. 도마 위에 대가리 잘린 고등어를 올리고 생선 가게 아주머니처럼 툭, 툭 두 번만에 삼등분을 하고 싶은데 잘 안 된다. 툭, 치고 내려친 뒤에도 힘을 더 주며 칼끝을 눌러야 겨우 잘린다.


엄마가 사는 생선류는 고등어가 아니면 갈치였다. 여름에는 병어를 사기도 했지만 대게는 고등어였고 더러 갈치를 샀다. 그래서 어릴 때는 먹을 수 있는 생선이 고등어와 갈치만 있는 줄 알았다.

남원 중절리, 지리산 자락이 보이는 산골마을이 고향인 엄마는 생선 보는 일이 귀했다고 한다. 마을에 보따리장수가 와야 생선을 구경했는데 생물은 없었고 염장이 된 자반류만 들고 왔다고 한다. 나는 한 번도 뵙지 못한 외할아버지가 고등어구이를 좋아하셔서 보따리장수가 오는 날이면 외할머니가 자반고등어를 사셨다고 한다. 하지만 비위가 약한 엄마는 비린내가 싫어서 생선 먹지 않는다. 아니 안 먹는다고 하는 것이 정확할 것이다. 이따금 붕장어 회는 먹지만 그 마저도 즐겨 먹는 것은 아니다. 그런 엄마가 생선을 사서 낯설디 낯선 조림을 한 이유는, 바닷가 마을에서 나고 자란 아빠 때문이다. 아빠가 나고 자란 할머니 댁 마당 끝에 서면 멀리 뻘이 있는 바다가 보였다. 그래서 명절이면 꼬막이니 피조개니 각종 조개류를 엄청 먹었다. 하지만 아빠도 비린내는 참지 못했고 먹는 생선류도 몇 되지 않았다. 그 몇 되지 않은 생선이 바로 고등어와 갈치였고 아빠의 취향은 언제나 조림이었다. 초등학교 5학년 때 앞집에 놀러 갔다가 나온 갈치구이가 충격이었을 만큼, 어릴 때 나는 고등어와 갈치조림만이 생선류의 유일한 음식인 줄 알았다.

엄마는 무를 두툼한 반원 모양으로 썰어 냄비 밑에 깔고 그 위에 고등어를 올렸다. 감자 철이 되면 감자를 썰어 넣기도 했다. 그리고 칼칼한 고춧가루로 간장 양념을 만들어 고등어와 하얀 무 위로 한 바퀴 돌렸다. 양념은 고등어 밑으로 자박하게 넣고 졸였는데 무에서 물이 나왔기 때문에 자박하던 양념이 순간 늘어났다. 불 세기를 조절해 양념이 다시 자박해질 때까지 끓였다. 양념이 다시 자박해지면 숟가락으로 냄비 밑바닥의 양념을 떠서 고등어 위로 뿌려 주었다. 고등어살이 붉은 간장 양념으로 물들 때까지 숟가락 잡은 엄마 손이 바삐 움직였다.


나도 엄마를 따라 무를 썰어 깔고 고등어를 올리고 양념을 넣고 인덕션 불 세기를 조절했다. 양념이 자박해지면 엄마처럼 숟가락으로 양념을 떠 올리려고 했는데 좀처럼 줄어들지 않았다. 시간이 꽤 걸리는 일이었다. 접시에 고등어조림을 예쁘게 담아 혼자 먹는 점심 밥상을 차렸다. 숟가락을 들다 말고 사진을 찍어 엄마에게 보냈다.


바닷가가 고향인 아빠는 입맛이 까다로운 편은 아니었지만 어머니 손맛을 많이 그리워했고 비린내를 싫어했다. 일주일에 한 번 꼴로 고등어조림을 찾을 만큼 좋아해도 비린내가 조금리라도 나면 절대 손대는 법이 없었다. '이 고등어는 생물이 아니'라고 '속아서 산 것'이라고 했다. 이게 다 '엄마가 산골짜기 촌사람이라 그런 것이라'며 엄마를 놀렸다. 비린내 나는 고등어 때문에 고향을 책 잡힌 엄마에게 비린내 나지 않는 생물 고등어인지, 비린내 나는 고등어인지, 하는 문제는 아주 중요한 것이었다.

아빠가 손대지 않는, 아마도 생물이 아니었을, 비린내 나는 고등어를 버릴 수 없었던 엄마는 그것들을 내게 주었다. 나는 정말 심한 비린내가 아닌 이상 곧잘 먹었다. 고등어는 살결대로 떼어지는 재미가 있었다. 생선살도 제법 크게 발라져서 좋았다. 그리고 무엇보다 고등어 밑에 깔려 고등어 향을 간직한 채 간장 양념으로 물든 가을 무가 너무 맛있었다.

흰쌀밥 위에 무조림을 올리고 숟가락으로 뭉개며 비벼 먹으면 달큰한 맛이 입안 가득 들어찼다. 비린내가 없는 고등어조림을 먹을 때면 아빠가 내게 꼬리 부분 토막을 주곤 했다. 가슴 부분에는 한 개씩 붙은 가시 제거가 곤란하니 큰 뼈만 없애면 먹을 수 있는 꼬리 부분을 내게 준 것이었다. 그러면서 아빠는 고등어 살에 붙은 생선 가시 바르는 기술을 내게 알려 주었다. 나는 아직도 그때 아빠에게서 배운 기술로 생선 가시를 바른다.


잘했네. 맛있게 먹어.

내가 보낸 사진 밑으로 엄마의 답장이 왔다. 기분이 우쭐해져 내가 만든 고등어조림을 먹었다. 아, 맛이 없었다. 천국을 포기하고 고등어 손질한 보람이 없었다. 엄마가 해준 고등어조림이 먹고 싶다고 짧게 생각했다. 그때 정말 맛있었는데. 내가 만든 맛없는 고등어조림을 보며 나는 마지막으로 엄마의 고등어조림을 먹었던 날을 떠올렸다.

큰 아이를 임신한 어느 날, 갑자기 엄마가 해준 고등어조림이 먹고 싶어 친정을 찾았다. 엄마는 네가 웬일로 고등어조림을 찾느냐며 웃었다. 엄마가 가까운 시장에 가서 생물 고등어를 사 왔다고 했다. 나는 친정집 소파에 누워 주방에서부터 퍼져 나오는 고등어조림의 달큼하고도 칼칼한 냄새를 맡았다.

그날 엄마가 해준 고등어조림의 무는 역시 큼직했고 투명한 간장색이 났고 맛있었다. 고등어는 비린내가 조금 났지만 그것이 고등어의 맛이 아닐까, 싶었다. 다른 반찬에는 크게 손대지 않고 엄마가 해준 고등어조림에 밥 두 공기를 먹었다. 달큼한 무조림을 밥공기에 대고 뭉개어서 비빈 다음 뼈 바른 고등어살을 두툼하게 올려 먹었다. 정말 맛있었다.

그때도 지금 같은 찬바람이 멀리서 불어오는, 계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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