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말연초의 도쿄전철
“피해 비용을 모두 유족이 물어야 해요.”
일본어학원을 다닐 때의 일이다. 곧 12월이 되는 11월의 끝자락이었다. 같은 반 친구들이 절반 이상 학원에 오지 못하고 있었다. 같은 반 친구들이 모여있는 라인(LINE) 메시지 창이 수업 시작 후에도 계속 울려댔다.
“30분 넘게 전철이 안 오고 있어요.”
“저는 지금 전철 안에서만 한 시간 째에요.”
“선생님께 좀 전해주세요.”
교실에 도착한 우리는 선생님께 친구들의 메시지를 전했다. 선생님은 이미 알고 있다고 고개를 끄덕였다. 친구들이 언제 올진 알 수 없지만, 본인들의 의지와 달리 학원에 오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라 진도를 나가기도 애매한 상황이었다. 선생님은 시계를 보고 고민을 하다 조금만 더 친구들을 기다려보자고 했다. 우리가 좋다고 하자 선생님은 자연스럽게 도쿄의 지하철 이야기를 시작했다.
선생님은 에히메현 출신 사람이다. 대학교 진학을 위해 도쿄에 상경했다. 선생님이 도쿄에 왔을 때 충격받을 정도로 놀란 것은, 두 가지였다. 하나는 도쿄의 우동 색이 갈색인 것이었고(에히메현은 우동이 유명한 지역인데 우동 국물이 투명하다고 한다) 다른 하나는 도쿄 전철역명의 한자였다. 우리가 의아한 표정으로 선생님을 바라보자 선생님이 조금 흥분하며 말했다.
“지방에서 올라온 사람이라면 절대로! 도쿄 지하철 역이름 읽지 못합니다!”
이어 代々木(요요기역)이 왜 '다이다이기'로 안 읽히고 '요요기'라고 읽히는 거냐며 소리를 높였다. 역 이름의 발음에 따라 한자를 붙인 경우가 많아서 그런 거라는 설명을 덧붙이시면서도 정말 이상하다고 했다. 우리가 웃자 도쿄 지하철 이름을 읽는 게 어려운 건 외국인이나 지방 사람이나 똑같다며 우리를 위로해 주기도 했다. 본인도 처음에 올라왔을 때는 한자 표기 밑에 쓰인 영어를 보고 읽었다며. 그렇게 모두가 선생님의 말에 큰 공감을 할 때였다.
“도쿄 전철은 특히 연말연초엔 조심해야 해요. 이제 곧 연말이니까 조심해요.”
선생님의 말에 우리는 아마도 영문을 모르겠다는 얼굴로 쳐다봤을 것이다. 이어진 선생님의 말은 우리가 기대하는 연말연초의 아름다운 풍경과는 사뭇 달랐다. 연말연초가 되면 전철에 뛰어드는 사고가 빈번하게 발생한다고 했다. 연말의 들뜬 분위기 속에서 누군가는 괴로운 선택을 하고 연초의 희망찬 기운 속에서도 누군가는 참혹한 선택을 한다는 것이었다. 우리는 아마도 인상을 찌푸리며 선생님의 말을 믿고 싶어 하지 않다는 듯 고개를 가로저었을 것이다. 선생님은 정말 그렇다며 두 눈을 크게 뜨며 목소리도 높였다.
“하지만 여러분, 죽고 싶다고 해도 가족을 생각한다면 전철에 뛰어드는 선택을 하면 안 됩니다!”
농담이라기엔 섬뜩한 선생님의 웃음 섞인 소리에 우리가 모두 놀란 소리를 내뱉었을 때, 선생님이 웃음을 멈추고 어깨를 들썩이며 말을 이었다.
“사고가 나면, 그로 인해 발생하는 모든 피해 비용을 유족이 물어야 하거든요. 그러니까 전철에 뛰어드는 선택은 하지 마세요.”
우리는 야유를 보냈고 선생님은 어깨를 들썩이며 농담, 농담이라고 소리를 높였다. 그렇게 1교시가 끝나갈 무렵, 전철에 갇혔거나 타지 못해 애를 태우던 같은 반 친구들이 하나 둘 도착했다.
연말연초가 되면 도쿄 전철에는 사고가 많이 발생한다. 일본어어학원을 다니던 첫 해도 그랬고 그다음 해에도 그랬다. 제시간에 도착해야 할 열차가 오지 않아 플랫폼 안내판을 확인하면 많이 늦어진다는 표시와 함께 인신사고人身事故 한자가 뜬다. 사람과 관련된 사고라는 뜻이다. 어떤 이가 또 그런 선택을 했을까 싶다가 아니 정말 사고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다 제발 누구도 크게 다치지 않은 경미한 사고이길 바라게 된다. 그러다 문득 감각해 보면 바람은 차가워져 있고 입은 옷도 꽤 두꺼워진 계절이다. 이 차가운 바람이, 두꺼워진 겉옷이 어떤 이의 마음을 더 차갑게 하고 차마 따뜻하게 하진 못했나 보다, 생각한다. 그러다 사고를 마주했을 기관사의 안녕도 빌어본다.
한 번은 이런 적이 있었다. 선로에 뛰어든 사람 때문에 전철이 선로에 멈춰 섰다. 처음 안내 방송이 인신사고라고 했을 때 나는 또 습관적으로 왼손을 들어 성호를 그었다. 그런 안내 방송을 들으면 약속 시간에 늦건 말건 불쾌할 수가 없다. 나를 기다리고 있을, 약속 당사자 역시 그렇게 생각해 준다. 그날도 그랬다. 나는 약속한 사람에게 인신사고라고 문자를 보냈고 그는 괜찮으니 천천히 오라고 했다. 그렇게 수분 후, 안내 방송을 듣고 픽- 웃음이 새어 나왔다. 선로에 뛰어든 사람이 달리고 있다는 것이었다. 선로를 계속해서 달리고 있어서 열차가 출발하기 어렵다고 했다. 나는 그가 어떤 모습으로 달리고 있을까를 상상하다 내가 스무 살 때 보았던 영화 <고!(<Go!>, 쿠보즈카 요스케 주연)가 생각났다. 이름도 얼굴도 모르는, 선로를 뛰고 있을 그를 혹은 그녀를 응원했다. 원하는 곳까지 잡히지 말고 무사히 뛰시길. 무사히 도망에 성공하시길 하고 말이다. 나쁜 생각으로 선로에 뛰어든 것이 아니라는 것이 괜히 감사하기까지 한 날이었다.
연말연초 도쿄에서 전철 탈 일이 있을 때는, 약속 시간보다 한 시간 정도 서둘러 나가시길 추천한다. 무언가 예정된 일정이 있을 땐 더욱. 일찍 나섰는데도 아무 일 없이 목적지에 도착했다면 낯선 곳을 탐색하면 그만이지 않은가. 어떤 불행한 사고 소식에 안타까워할 여유도 없이 예정된 일정을 맞추느라고 발을 동동 거리는 것보다 좋은 선택이라고 본다. 아니면 도쿄 전철 안내 앱을 자주 확인하시길 바란다.
연말연초를 지나 봄으로 넘어가면서 사고 안내는 보지 못했다. 오늘도 제시간에 도착하는 전철에 감사한 마음으로 발을 딛는다. 곧 다가올 봄기운과 함께 모두의 안녕을 빌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