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심하면 낯선 곳에
'어? 여기는 어디야?'
한 정거장을 이동해 전철 문이 열렸을 때 낯설게 느껴졌다. 분명 지난주에 봤던 풍경과 달랐다. 얼른 아이 손을 잡고 전철에서 내렸다. 출발지에서 열차를 확인하고 탔어야 했는데, 아차 싶었다. 아이와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다 플랫폼에 들어온 열차를 아무 의심 없이 타버렸다. 그렇게 우리는 행선지가 아닌 낯선 곳에 있었다.
내 손에 이끌려 낯선 역에 내린 아이가 멀뚱멀뚱한 눈으로 나를 올려 봤다.
- 엄마, 왜 내려요?
- 전철을 잘못 탔어. 잠깐만.
내린 곳에서 다음에 오는 열차를 타면 될까 싶었으나, 아니었다. 전혀 다른 플랫폼이었다. 다급하게 스마트폰을 꺼내 길 찾기를 했다. 우리 행선지에 가려면 다른 노선으로 갈아타야 했다. 한 정거장 차이로 이렇게 큰 변화가 일어난다는 것이 이상했지만 별 수 없는 현실이었다. 걸어야 한다는 말에 무거운 가방을 멘 아이 얼굴이 일그러졌다. 나는 부러 힘찬 동작으로 아이 손을 꽉 쥐고 걸음을 옮겼다.
- 엄마가 학원 가는 길은 아직 익숙하지가 않아서 실수했어, 미안.
거짓말이었다. 생활에 익숙해져도 전철 타는 실수는 계속하고 있기 때문이다.
일본에 막 도착했을 때의 일이다. 그날의 목적지는 신주쿠였다. 집 가까운 전철역에서 나는 전에 타본 적이 있는 플랫폼에 섰다. 그리고 들어오는 전철을 아무 의심 없이 탔다. 전에 탔던 기억대로라면 세 정거장만 지나면 신주쿠였기에 정거장 수를 세었다. 정거장 하나를 지나고 두 번째 정거장을 향해 열차가 달렸다. 그때 창밖 풍경이 너무 낯설었다. 워낙 일본 생활에 익숙하지 않았을 때라서 내가 몰랐던 것들이 보이나 보다,라고 생각했다. 그렇게 두 번째 정거장에 도착했을 때 아무래도 이상해서 역명을 확인했다. 처음 보는 역명이었다. 놀라 전철에서 내렸다. 귀신에 홀렸나 싶었다. 전에 탔던 플랫폼에서 탄 게 분명한데 무엇이 문제인가 싶었다. 얼떨떨한 상태로 출발지로 돌아가는 열차를 찾아 탔다. 출발지에 도착해 다시 같은 플랫폼으로 돌아갔다. 그제야 같은 플랫폼에 반대로 이동하는 열차도 들어오는 것을 알았다. 그 뒤로 동네에서 전철을 탈 때면 플랫폼 안내표를 확인하고 들어온 열차 안에 표시된 행선지를 확인한다. 아니 확인하려고 노력한다. 하지만 일상이 늘 여유롭기만 한 것이 아니라서 쫓기는 마음으로 이동하는 날은 여지없이 실수를 저지르곤 만다.
이런 일도 있었다. 신주쿠에서 집으로 가는 길이었다. 플랫폼에서 우리 동네 역명이 쓰여 있는 열차를 확인하고 탔다. 거기까지는 좋았는데 전철 안에서 음악을 들은 것이 문제였다. 음악에 취한 나머지 내려야 할 역을 놓치고 말았다. 한 정거장 정도야 걸어도 그만이라고, 닫힌 문 앞에 서서 생각했다. 그런데 열차는 계속 달렸다. 10분 가까이를 멈추지 않고 빠른 속도로 달렸다. 햇살이 눈부신 날이었지만 애가 타들어갔다. 나는 또 무슨 열차를 탄 것인가 싶었다. 내가 아는 열차는, 우리 동네에서 한 정거장 차이 정거장은 걸어서 20분이면 가는 거리였기 때문이었다. 외곽을 향해 무심하게도 빨리 달리는 전철 안에서 무서움을 가득 쥐었다. 한참만에, 드디어 열차가 멈춰 섰다. 한 번도 가본 적 없는, 멀고도 낯선 역이었다. 우리 동네로 돌아가는 길을 확인하고 플랫폼을 찾아 섰다. 이번엔 실수하지 말자고 플랫폼 안내표에 표시되는 열차들을 확인했다. 역시나 다양한 행선지로 가는 열차가 안내되어 있었다. 들어오는 아무 열차나 타면 안 되는 걸, 새삼 확인했다. 그때 갑자기 누군가 내 등을 탁 쳤다. 순간 몸이 앞으로 조금 밀리면서 그대로 눈물이 왈칵 쏟아졌다. 뒤돌아보니 내 얼굴을 보고 놀란 노년의 부인이, 제 손을 내보이며 “무시(벌레), 무시(벌레)!”라고 외쳤다. 어쩐지 서러운 마음을 어찌하지 못하고 있는데 노년의 부인이 손끝으로 가리키는 곳에 손톱만 한 벌레가 떨어져 있었다. 나는 눈물을 닦으며 고맙다고 인사했다. 노년의 부인이 머쓱한 얼굴로 웃었다. 우리는 같은 플랫폼에 서 있었지만 서로 다른 열차를 타고 헤어졌다.
또 한 번은 이런 일도 있었다. 지인을 데리고 맛있는 브런치집을 가기 위해 나선 길이었다. 내가 찾은 가게였으므로 내가 길을 이끌었다. 그런데 지인과 이야기를 나누다 그만, 열차를 확인하고 타는 것을 또 깜박하고 말았다. 그날 나는 30분이면 갈 브런치집을, 1시간 30분 뒤에 도착했다. 미안한 마음에 지인의 빵값은 내가 계산했다.
한국에서 지인들이 놀러 올 때면, 나는 강조해서 말한다. 열차를 타기 전에 꼭 확인하고 타야 한다고. 플랫폼만 확인하고 탔다가는 나처럼 되고 만다고. 플랫폼 안내도 보고 열차 안에 표시된 행선지도 보고, 열차 문 위에 표시된 다음 역 안내를 반드시 보고 타라고 한다. 나의 당부를 귀담아들은 탓인지, 지인들 중에는 나처럼 전철을 잘못 타서 고생한 이는 아직 없었다. 그래서 가끔 생각해 본다. 이건 그냥 부주의한 내 문제인가? 하고.
매주 금요일은 아이들이 학원에 가는 날이다. 하교한 아이들과 플랫폼에 들어선다. 열차가 들어온다는 안내 방송에 귀 기울이고 플랫폼 전광판에 표시된 안내를 확인한다. 열차가 우리가 선 플랫폼 앞에 멈춰 선다. 아이가 열차에 타려고 발걸음을 움직이기에 아이 손을 잡았다.
- 우리는 다음 열차 타야 해. 뒤로 와.
아이를 뒤쪽으로 이끌었다. 아이도 뒷걸음치며 플랫폼 전광판 안내를 읽는다.
오늘은 실수 없이 전철을 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