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모차와 도쿄 버스

불편하지 않은 마음

by 글 쓰는 사람

아이를 데리러 나선 길이었다. 버스 정류장에 적힌 버스 시간표대로 버스는 도착했고 정류장에 도착할 때마다 버스 기사의 음성이 마이크를 타고 나왔다. “000에 도착했습니다.”, “버스가 정차합니다.”, “안쪽으로 이동해 주십시오.”,“버스가 출발합니다.” 정류장에 예정된 시간보다 빨리 도착할 경우, 버스는 제 시간까지 정차해 있다가 출발했다.


정류장에 버스가 정차했을 때였다. 차장 밖으로 디럭스 유모차와 함께 선 여자가 보였다. 그 모습이 너무 낯설었다. 나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생각했다. 간이 유모차도 아니고 디럭스 유모차를 가지고 버스는 어떻게 타려고? 그때였다. 버스 차체가 인도 쪽으로 기울었다. 곧이어 버스 기사가 운전석에서 일어났고 하차를 했다. 유모차와 함께 선 여성과 이야기를 주고받더니 버스 기사는 뒷문을 열었고 뒷문으로 디럭스 유모차를 안전하게 탑승시켰다. 버스 중간 자리 손잡이 부분에 유모차 손잡이 부분을 찍찍이 끈으로 고정시켰다. 그 사이 여성은 앞문으로 탑승해 버스 카드를 찍었다. 버스 기사는 유모차의 안전은 한 번 더 확인하고는 자리로 돌아가 자리에 앉았다.

“버스가 출발합니다.”


조금 전까지 무미건조하게 들리던 버스 기사의 음성이 새삼스럽게 다정한 목소리로 들렸다. 맨 끝자리에 앉아 있던 나는, 흘러내리는 눈물을 손가락으로 찍어냈다. 우리 신랑이 그러고 있는 나를 봤으면, 미친 거 아니냐고 물었을 테지만. 큰 유모차를 아무렇지 않게 끌고 나와 버스를 아무 문제 없이, 안전하게 탑승하는 모습을 보면서 감동하지 않을 수 없었다.


유모차를 타고 버스를 탄다는 것은 한국에서는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지금은 많이 변했을 수도 있지만, 내가 아이들을 유모차에 태우던 10여 년 전 시절엔, 감히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었다. 큰 아이가 200일 정도가 지났을 무렵, 프리랜서로서의 일을 재개했다. 프리랜서였기 때문에 재택근무를 하는 날도 많았지만 그날 회의는 꼭 참석을 해야 했다. 아이를 맡길 곳이 없었고 같이 일하는 분들이 아이와의 동석을 허락해 주셔서 아이를 데리고 길을 나섰다. 초보엄마여서 짐이 많았고 아이가 아직 많이 어려서 간이 유모차에 태울 수가 없었다. 그리고 사실 그 시절엔 디럭스 유모차 하나뿐이었다. 하여 디럭스 유모차를 끌고 나올 수밖에 없었다. 가장 큰 문제는, 내가 운전을 하지 못하는 장롱운전면허자였다는 것이다. 그날의 이동 경로는 4호선에 탑승해서 삼각지역에서 6호선으로 갈아타는 것이었다. 오전 11시쯤 4호선은 다행히 크게 붐비지 않았다. 유모차를 밀고 전철에 올라타자 사람들이 쳐다봤다. 다행히 아이는 유모차에서 잘 자고 있었다. 그렇게 몇 정거장을 지나고 여학생 셋이 탑승해 내 옆에 섰다. 그들의 대화 주제는 금세 결혼과 출산이 되었는데, 그 내용을 정리해 보자면 이런 거였다. 차를 몰 능력도 안 되면서 아이를 낳아 키운다는 게 한심하다는 것. 전철 안에 선 디럭스 유모차가 내 눈에도 너무 크게 보였다. 전철 탑승자들에게 민폐를 끼치고 있다는 생각을 짊어져야 했다. 어깨는 점점 축 쳐졌고 타고 내리는 사람들의 눈치를 봐야 했다. 하지만 이미 출발한 이상 어쩔 도리가 없었다. 삼각지역에 내려 긴 환승 구간을 유모차를 밀며 이동했다. 나와 유모차를 향한 뜨거운 시선을 뚫고 걸었다. 근데 생각을 못한 게 있었다. 지금은 엘리베이터가 생긴 걸로 알고 있지만, 그때는 환승 구간에 엘리베이터가 없었다. 나는 6호선 삼각지역으로 내려가는 계단 앞에 멈춰 섰다. 아이와 유모차와 짐가방과 계단을 번갈아 쳐다봤다. 빨리 생각을 정리하고 빠른 결정을 해야 했다. 나는 짐가방을 내려놓고 곤히 잠든 아이를 채우고 있는 유모차 안전벨트를 풀었다. 아이를 아기띠로 안아 올리고 유모차를 계단 아래까지 들고 갈 참이었다. 가능할지는 모르겠지만 달리 방법이 없었다. 그런데 그때 아기띠를 챙겨 오지 않은 것을 알았다.


"도와드릴까요?"

어찌해야 하는데 어찌할 줄 모르고 서 있는 내게 젊은 청년이 말을 걸어왔다. 나는 그 청년을 올려다보다 고개를 끄덕였다. 코끝이 뜨거워졌다. 나는 청년과 함께 유모차 앞 뒤를 잡아 들어 올렸다. 우리는 한발 한발 내디뎌 천천히 계단을 내려왔다. 청년은 6호선 탑승장에 유모차를 내려놓고 아이의 얼굴을 살폈다. 아이가 깨지 않고 자고 있는 것을 확인하더니 내게 인사할 틈도 주지 않고, 나와 함께 내려온 계단을 다시 올라갔다.

"감사해요, 정말 감사합니다!"

메이는 목소리로 뛰어 올라가는 청년의 등을 향해 외쳤다. 청년은 계단 끝에서 한 번 인사를 하곤 사라졌다.

또 한 번은 이런 적도 있다. 그날도 아이를 맡길 곳이 없어 아이를 데리고 회의 장소로 갈 수밖에 없었다. 그때는 아이가 간이 유모차에 앉을 정도로 큰 때여서 간이 유모차를 끌고 나갔다. 4호선을 타고 가서 사당역에서 2호선으로 갈아타야 하는 경로였다. 다행히 4호선과 2호선 환승 구간에는 엘리베이터가 있었다. 하지만 나는 그 엘리베이터를 탈 수가 없었다. 유모차와 내가 탑승하면 세 명 정도의 어른이 타지 못하니까 다음 것을 타라는 성난듯한 어르신들의 말씀 때문에, 제일 앞에 서 있어도 제일 맨 끝으로 밀려나기를 반복했다. 한 번 양보하면 될 줄 알았는데 거짓말처럼 두 번째 만난 어른들 중에 한 분이 똑같은 말씀을 했고 세 번째도 마찬가지였다. 나는 계속 엘리베이터 앞에 줄만 서고 탈 수는 없었다. 그런 나를 보고 계셨는지 역 내 가판대 짐을 나르던 아저씨가 화를 냈다.

“ 지금 이 새댁이 엘리베이터를 얼마나 기다린 줄 알아요? 아기가 있으면 먼저 태워줘야지. 새댁 얼른 타, 얼른!”


그 아저씨가 내 등을 밀어주신 덕에 나는 다음번 엘리베이터를 탈 수 있었다. 나는 나와 유모차를 불편해하는 사람들과 함께 엘리베이터를 타고 전철을 갈아탔다. 그 뒤로는 아이와 함께 이동해야 할 때는 아기띠를 사용하거나, 주말에 신랑이 있을 때 위주로 회의를 잡았다.


그때의 나는, 세상이 유모차 이용자를 불편하게 여긴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말할만한 경험이 많고 많았다. 유모차에 애를 태워 나갈 때는, 우리를 불편해하는 사람들을 조심하고 또 조심해야 했다. 결국 아이와 대중교통을 이용하는 것은 점점 하지 않게 되었다. 아무것도 모르는 아이와 함께 세상의 민폐가 되고 싶지는 않았기 때문이다.


그날 유모차 탑승 장면을 오래도록 잊지 못할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것은 이제 익숙한 장면이 되어 버렸다. 도쿄 시내에서 유모차와 시내버스를 타는 것은 흔한 일이다. 사람이 많은 주말에도 유모차와 함께 버스를 타는 탑승자를 보는 일은, 더 이상 낯선 일도 감동을 크게 받는 일이 아니다. 흔한 일이다.

요즘 한국의 대중교통은 어떤지 모르겠다. 하지만 내가 한국에 머물던 2년 전까지만 해도 아이를 낳으면, 차를 몰아야 하는 것이 당연한 일이었다. 주변의 지인들도 아기를 낳으면 운전을 시작했다. 나처럼 어린아이를 데리고 대중교통을 이용하는 일은 흔한 일이 아니었다.

물론 우리나라와 일본이, 차를 소유하는 문제라든가 시내 교통 상황이라든가 하는 것들이 서로 달라서 오는 결과일 수도 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유모차를 사회의 일원으로 받아들이는 데 있어서의 차이는 느껴진다.

유모차에서 잠든 아이가 보이는 버스 뒷좌석에 앉은 오후, 생각이 많아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