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친절함

낯섦이 느슨해질 때

by 글 쓰는 사람

어느 날의 오후였다. 땅을 보고 걷다가 고개를 들었을 때였다.


키가 작은 가로수 가지에 마치 가로수 일부분인양 하얀 비닐봉지가 걸려 있었다. 비닐봉지에는 대파 한 줄기가 들어 있었다. 아마도 그랬을 것이다. 장을 본 어떤 이는 자전거 앞에 달린 바구니에 대파가 담긴 비닐봉지를 담았을 것이다. 바구니에는 너무 많은 짐이 있었고 빠른 속도를 내다 그만 대파가 담긴 비닐봉지가 툭 떨어졌을 것이다. 어떤 이는 마침 이어폰으로 음악을 듣고 있었기 때문에 대파가 땅에 떨어지는 소리 따위는 듣지 못했을 것이다. 집에 도착해서 대파가 없다는 사실을 눈치챈다면 다행이겠지만 어떤 이는 몰랐을 것이다. 너무 많은 짐을 정리하느라 지쳐 버렸을 테니 말이다. 아니면 이랬을 수도 있다. 장을 본 어떤 이는 양손 가득 장본 짐을 들고 가로수 앞에 있는 초등학교에 왔을 것이다. 하교하는 아이를 데리러. 하교하는 아이와 만났을 때 어떤 이가 기대했던 것과는 달리 아이가 짜증을 냈다. 학교에서 친구 때문에 속상한 일이 있었다면서 어떤 이에게 마구 짜증을 내며 투덜거렸다. 어떤 이는 처음엔 아이를 달래주었지만 그칠 줄 모르고 계속되는 아이의 짜증에 지쳤을 것이고 결국 화를 냈을 것이다. 화난 몸은 큰 행동으로 이어졌을 것이고 짜증 내는 아이로부터 멀어지는 순간, 대파가 담긴 봉지를 놓치고 말았을 것이다. 그런 어떤 이에게 서운했던 아이는 대파가 떨어진 것에 대해서 말하기도 싫었을 것이다. 어떤 이와 아이 사이의 팽팽한 긴장감 때문에 어떤 이는 집에 도착해서야 대파가 없어졌음을 알았을 것이다. 하지만 학교 앞으로 찾으러 가고 싶지는 않았을 것이다. 혹여나 아는 이를 만나게 되면, 그 모든 것들을 설명하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혹은 이럴 수도 있다. 어떤 이는 키가 작은 아이였을지도 모른다. 엄마 심부름으로 대파를 사러 간 아이 말이다. 아이는 대파를 사러 간 슈퍼에서 많은 유혹을 느꼈을 것이고 그러다 많은 시간을 슈퍼에서 지체했을 것이다. 걸려온 엄마 전화에 놀랐을 테고 전화를 끊고 나선 급히 대파를 사서 집으로 달려갔을 것이다. 그날은 5월이라고 하기엔 너무 더운 날이었다. 아이는 화난 엄마 목소리가 자꾸 생각나서 집에 빨리 가야 한다는 생각만 했을 것이다. 열심히 뛰다가 대파 봉지를 떨어뜨린 줄도 모르고, 집에 빨리 가려고 열심히 뛰었을 것이다. 어쩌면 어떤 평범한 이가 어떤 사연도 사정도 없이 그냥 떨어뜨리고 갔을지도 모른다. 여하튼 길가에 대파 한 줄기가 담긴 비닐봉지가 땅에 떨어져 있었을 것이다. 그리고 누군가 길가에 떨어진 대파 비닐봉지를 주웠을 것이다. 누군가는 대파 비닐봉지를 보고 고민했을지도 모른다. 길가에 두고 간 대파를 어디에 두어야 가장 잘 보일까. 잃어버린 어떤 이가 돌아왔을 때 쉽게 안도할 수 있을만한 위치는 어디일까. 그 누군가는 분명, 바닥에 그대로 두면 안 된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대파를 잃어버린 어떤 이가 되돌아왔을 때 보다 빠르게 확인하고 안도하길 바랐을 것이다. 그렇지 않았다면 대파 비닐봉지가 가로수 가지에 걸려 있지 않았을 것이다. 그곳에는 어떤 메시지도 붙어있지 않았지만 마치 이런 메시지가 있는 것만 같았다.


안심하세요, 당신이 잃어버린 대파는 여기 있습니다.

오늘 저녁, 당신의 요리를 망치지 마세요.


친절로 읽고 싶은 행동이었다. 낯선 공간에서 알지도 못하는 사람들 사이에서 벌어진 소소한 친절을 목격할 때면, 낯선 감각들이 순간 (잠시 동안이라 할지라도) 사라졌다. 그럴 때면 익숙한 감각들이 온몸에서 느껴졌다. 말과 생활은 조금 달라도 여기도 사람이 사는 곳이야. 그러니 긴장하지 마. 낯선 이를 위한 친절이 있는 것처럼 나에게도 그런 친절이 일어날 거야. 그러니 너무 낯설게만 느끼지 마, 하고 말이다.


친절을 목격하는 것은, 언제나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