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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가로등 Nov 21. 2021

성실함의 재발견

요즘은 뭔가 목표를 세우고 해보려고 해도 작심 하루도 안 가곤 했다. 대체 이유가 뭘까? 왜 이러는 거야!

남들한테 자극을 좀 받아볼까 해서 '습관', '매일', '기록' 같은 키워드로 도서관을 기웃거렸다.


첫 번째로 집어 든 BJ포그의 <습관의 디테일>은 정말 습관에 대한 학문적이고도 디테일한 내용을 다루고, 제시하고 있지만, 내게는 하나도 와닿지 않았다. 고작 해 본 것이라고는 이 책에 나와있는 대로, 아침에 일어나서 발을 처음으로 땅에 디딜 때 '오늘은 좋은 날이야!'라고 며칠 외쳐본 것뿐이다.

전혀 와닿지 않았다. 대체 왜!

이어서 좀 더 현실적인 내용은 와닿을까 해서 빌려본 무라카미 료이치의 <하루 10분 엄마 습관>. 처음 몇 장은 솔깃했으나, 습관화할 수 있는 메커니즘은 없었다. 다만 좋으니깐 해봐. BJ 포그식으로 말하자면 '자극'으로 동기부여를 하고자 하는 듯했다. 하지만 나는 그것 가지고는 안 되는 상태였다.  

하루 10분 습관으로 아이를 잘 키우려면 그 저변에 엄청난 엄마의 역량이 있어야 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럼 집을 좀 정리하면 나으려나? 싶어서 고마츠 야스시의 <정리정돈의 습관>을 펼쳐보니, 이미 다 아는 이야기다. 어떻게 정리해야 하는지, 어떤 모습이 되어야 하는지는 알고 있다. 다만, 어떻게 해야 그 '정리'를 시작할 수 있는지가 내게는 필요한데..

어떻게 그 정리라는 것을 시작해야 하는지가 궁금하다고요!

이 책들을 반납하고 그냥 또 도서관을 둘러보다가 발견한 와타나베 쇼이치의 <지적 생활의 발견>. 

아, 원래 표지는 이렇게 생겼나 보네요. 내가 빌린 책은 표지가 없는 채로 하드커버 장정만 있는 상태였다. 

몇 년도에 나온 책인지 정확히는 모르겠는데, 한 10년은 넘은 듯하다. 좀 요즘 세상하고 안 맞는 얘기를 하고 있다고나 할까? 하지만, 영문과 교수였던 이 분의 영어공부에 대한 내용들을 읽어보면서, 세상이 변해도 변하지 않는 게 있다는 느낌이 슬며시 들었다. 내가 읽은 원서에 대해서 내용은 이해하면서도 사실은 잘 알고 있지 못하다는 생각이 계속 뒤를 잡아끄는 그런 느낌이 무엇을 말하는지.. 저자도 알고 있었다. 이분은 그 지점에서 자신만의 방식으로 공부를 해나갔고, 그중 하나는 한 권의 책을 여러 번 반복해서 읽는 것이었다. 물론 남들이 재밌다는 책이 자신에게는 그렇지 않음은 경험으로 충분히 알게 되었다고도 하고. 

세부적으로는 동의할 수 없는 내용들 - 책을 모두 사서 소장해야 한다는 둥, 자신만의 서가를 꾸며야 한다는 둥, 서재 공사의 주의사항은 어떠하다는 둥 - 이 많았지만, 사실은 부러움이라는 것을 알고 있다. 이 책을 덮을 때쯤 나는 뭔가가 드디어 내 안에서 움찔하려 한다는 느낌이 들었다. 그게 뭘까?


그리고 드디어 이 책!

김지수의 인터뷰집 <자존 가들>을 만나게 됐다. 신문기사든 어디서든 본 것 같다. 그래서 근방의 도서관들을 뒤져서 빌려 읽었다. 쇼이치 교수님 식이라면 마땅히 구입해서 줄 치며 읽어야 하겠으나, 일단은 빌려봤다. 

인터뷰라는 것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았는데, 한 명 한 명의 이야기를 읽다 보니 겹쳐지는 단어들이 마음에 남기 시작했다. 

'매일매일', '힘든 것 먼저 하기', '포기하지 말기', '순간순간 최선을 다하기', '자기 인생은 한 권의 책' 

새롭지도 않은 말들이다. 말만 놓고 보면, 피우~하는 씁쓸함만 나올 것 같기도 하고. 그런데, 이번에는 아니었다. 매일매일, 힘든 것을 먼저 하면서도 포기하지 않고 최선을 다해 써가는 내 인생은 한 권의 책인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그것이 바로 '성실함'의 다른 표현이라는 것도 말이다. 


내가 뭔가를 하려고 마음을 먹었다가도 그걸 하루도 못 해내는 것은 내 인생이 한 권의 책인 줄 몰라서였던 것이 아닐까 싶다. 내가 죽을 때 내 인생의 그 문장들이 '가로등은 ~~ 하다가 말았다. 그녀는 세상의 이치를 깨닫기를 원했고, 자기 삶에서 실천해보기를 원했지만, 그다지 간절하지는 않았나 보다. 결국 90년을 살았어도 20년을 산 인생과 별다를 게 없는 삶이었다.'로 써질 것만 같았다. 

내 인생을 책으로 쓴다면 지금 어떤 스토리가 펼쳐지고 있는 것일까? 나는 내 인생의 배우이자, 작가일 텐데 왜 이리 부초처럼 이리저리 흔들리며 퇴화하고 있는 것일까? 

내가 정말로 쓰고 싶은 것은 그런 이야기일까? 한 때 반짝 빛나는 듯하다가 조용히 시들어 흔적 없이 사라지는 것. 사나 마나 한 인생이었던 것. 특히 배우이자 작가인 가로등에게 조차 연기를 하거나 문장을 써 내려가는 의미가 없었던 그런 인생을 살려고 선택한 것인가? 


내가 의지로 정한 것만이 '선택'했다고 말할 수 있는 것은 아닌 것 같다. 나의 지금 행동이 바로 내 삶이 선택한 그것인 듯하다. 


지금 나는 오랜만에 브런치에 들어와 글을 쓰고 있다. 글을 쓰기 위해서 책을 읽는 것과 읽은 책으로 글을 써 내려가는 것은 아주 다른 이야기라는 생각이 든다. 후자는 의지를 부려야 하는 행위가 아니라 내 안의 긍정을 발견하는 기회가 된다는 생각이다.   


이제 나는 다시 내가 하고 싶은 일들을 다이어리에 써 내려간다. 그것을 체크리스트 형식으로 만들어 놓지만, 동그라미와 가위표를 치는 것에 의미를 두는 것이 아니라, 내가 얼마나 많은 것을 하고 싶어 했고, 어떻게 살고 있는지를 살펴볼 수 있을 것 같다. 


하루를 마무리하며 체크리스트를 들여다보는 게 조금은 아플지도 모르지만, 어디선가 가벼운 즐거움이 샘솟는 느낌이 차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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