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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가로등 Dec 01. 2021

상평형

phase equilibrium

오늘은 특별한 강의를 듣는 중이다.


이름하여 비즈니스 포럼이라는 것인데, 가끔 신문에 전면광고로 본 적도 있지만 큰 관심은 없던 행사다. 그런데 지난 두 달간 직장에서 무료로 수강하게 된 의료경영과정의 수료식에서 상품으로 이 포럼의 초대권을 받게 되었다.


그때만 해도 평일 하루를 교육목적으로 휴가를 받을 수 있을까?라는 걱정이 앞섰던 것이 사실이다. 


대체 20년 차가 되어도 휴가를 '받아'서 쓴다는 것이 맞는 말인지는 잘 모르겠다. 업무적으로 긴밀하게 얽혀있는 동료들이 있는 한 계속 '받아'서 써야 할 것 같기는 한데 말이다. 


다행히 우수 수강생의 부상이고, 이 포럼의 등록비가 100만 원에 육박한다는 얘기에 어렵지 않게 하루 교육 참여의 기회를 얻게 되었다. 


여기서 들은 강의 중에 <Loonshots>의 저자인 Safi Bahcall의 것이 있었다. 전체적으로는 기업 경영에서 중요한 것들에 대한 의견들이었고, 그중에 '상평형'이라는 개념이 와닿았다.


그가 말한 것은 기업 내에서 창조적인 그룹과 기존의 틀을 유지해야 하는 그룹들 간의 균형을 맞추는 것이 중요하다는 관점에서 이 개념을 이용한 것이다. 


두 그룹을 각각 얼음과 액체 상태의 물이라고 한다면, 본질이 H2O이고 물의 구조와 성격은 변화하지 않지만, 온도라는 조건에 의해서 각자의 상(phase)이 변하는 것이다. 여기서 온도가 얼마여야 두 상이 공존하게 되느냐 하는 의문이 생기는데, 바로 0도라고 한다. 물론 과학적으로 1도이거나 영하 1 도일 수도 있다. 개념적으로 그렇다는 얘기다. 


기업은 0도에 준하는 환경을 조성하려 노력해야 한다. 그래서 두 그룹 간의 균형을 유지하는 것이 지속적인 성장에 필요하다는 내용이었다. 


나는 경영할 기업도 없고, 관리할 조직도 없으므로 이 개념을 적용해볼 대상은 나 자신밖에 없다. 


나를 두고 볼 때 얼음은 무엇이고, 물은 무엇일까? 내 안의 소위 moonshot은 무엇이고, soldier는 무엇일까? 


요즘 내가 관심을 갖고 있는 의문이 하나 떠올랐다. 


"내가 하고 싶어 하는 것은 진정으로 하고 싶어 하는 것인가?"


나는 글을 쓰고 싶다. 매일 쓰고 싶다. 왜냐하면 남들이 그게 글을 잘 쓰는 유일한 방법이라고 하니까. 또 글 쓰는 것 자체는 재미있으니깐. 그래서 매일 글을 쓰고, 뼛속까지 내려가서 써야 하고,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떠오르는 대로 몇 페이지를 써야 한다고 생각을 했다. 아마 이게 내게 문샷이 아닐까 생각했다. 


그런데, 나는 실제로 아침에 글을 쓸 만큼 일찍 일어나지 않는다. 시간이 있는 경우에도 글을 쓰지 않는다. 이것은 내 안의 군인이겠다. 현상을 유지하고 싶어 하는 것이다. 


나는 진심으로 나의 다른 모습을 원하는 것일까? 내가 글을 왜 쓰려고 할까? 왜 쓰고 싶어 하는 것일까? 글을 쓴다면 3년 후 나는 어떤 글을 쓰고 있는 것일까? 아니면 내가 완전히 글을 쓰지 않게 되었을 때 그 이유는 무엇이 될까? 


내가 하고 싶다고 생각하는 것이 실현되는 미래의 한 지점을 가정해보니 흐릿하다. 뭘 원하는 지를 모르겠다. 소설을 쓰겠다는 건지, 시를 쓰겠다는 건지, 에세이 책을 내겠다는 건지. 파워 블로거라도 되겠다는 건지. 아니면 여전히 지금처럼 아주 가끔 끄적이며 대상 없는 푸념만 반복하겠다는 것인지 말이다. 


이대로 있으면 어떻게 될지는 뻔하다. 


내 안의 문샷을 터트리기 위해 일종의 상평형이 필요하다. 지금은 군인들에 의해 점령당한 내 존재의 표현형이 이 모습으로만 유지되기를 바라지 않는다. 그래서 장치를 마련하려고 한다. 소위 시스템이라는 것이고, 그것은 습관을 만들어내는 자극과 동기 모두를 포함하는 형태일 것이다. 


그래서 내가 하고 싶은 것과 일치하는 제목의 글쓰기 강좌를 찾아 돈을 내고 등록을 했다. 내 습관을 만들기 위해서 돈을 내고 하다니 참 한심하다는 생각은 일단 접어두기로 했다. 어차피 의지만으로 안되지 않았나. 오히려 적어도 매일 글을 쓸 수 있게 되지 않을까 싶다. 


아직 강좌가 시작하지 않았으므로 며칠 더 내가 미래의 어떤 모습을 원하는지 구체적으로 그려보는 작업을 해보는 게 좋을 것 같다. 


하고 싶은 것과 그것을 가로막는 것들 사이의 상평형을 구축하는 장치와 요소들을 적극적으로 도입하는 것이 새로운 나의 모습을 발견하는 방법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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