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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가로등 Dec 14. 2021

먹기의 재발견

식욕에 대한 독서로부터..

<식욕 버리기 연습>, 마리아 산체스 저, 송경은 옮김/한국경제신문 P9-130 

"당신 몸에서 일어나는 모든 것, 당신이 느끼는 모든 것을 정확하게 메모하라. 그리고 그 반응에 생각을 집중해보라. 몸 안에 어떤 느낌이 일어나는 지를 "


<식욕 내려놓기>, 유재숙/지식공간 P10 -105

"먹지 말아야지 라는 말은 먹어야지라는 말과 같다. 왜냐하면 억압의 대상은 강력한 탐욕의 대상이 되기 때문이다.... 당신의 몸에 계영배 시스템이 있다면 그것은 순간순간 깨어있는 당신의 의식이다"


둘째가 돌이 지난 지 일 년이 채 안되었고, 첫째는 그 보다 세 살 더 많았던 시절 아는 언니가 내게 말했다.

'살 참 안 빠지지?'

그 순간 내 머릿속에는 사람들은 내가 뚱뚱하다고 생각하는구나, 살이 정말 그리 빼기 어려운 건가? 하는 생각이 동시에 떠올랐다. 다음날부터 나는 먹지 않기 시작했다. 첫날은 배가 고팠지만, 신기하게도 먹지 않을수록 배고픔은 가끔씩만 찾아왔다. 퇴근 후에 둘째를 업은 채 첫째를 위한 저녁을 준비해 주고 난 후 둘째의 이유식을 해서 먹이면 이미 시간은 열 시가 넘어있기 일쑤였고 내 저녁식사는 이미 중요도에서 제일 낮은 순위를 차지하고 있던 시절이었다.


그렇게 자의 반 타의 반으로 먹지 않음으로써 넉 달이 안 되는 시간 동안 12킬로그램이 줄었다.


자주 만나는 사람들은 어디 아픈지, 건강검진을 받아봤는지 물었고, 가끔 마주친 사람들, 특히 남자분들로부터는 예전에 느낄 수 없었던 정체모를 호의를 느낄 수 있었다.


몸으로써 관심을 받는다는 게 이런 느낌이구나.


그 뒤로도 그럭저럭 표준체중 안에 머물면서 지내온지 어언 7년쯤 된다. 그리고도 언제든 원하는 체중으로 돌아갈 수 있다고 생각해왔다. 그런데, 체중감량을 위해서 뭔가를 하려고 하기만 하면  섭식장애에 걸리는 것 아닌가 싶을 정도로 음식에 대해 어렵게 생각하는 면이 있다는 느낌이 들기 시작했다.


인도에서 지낼 때의 일이다.

2021년 3월쯤 되었던 것 같은데, 갑자기 전국 폐쇄 명령이 내려졌다. 일명 락다운(lockdown)이었다. 필수적인 활동을 위한 경우만 집 밖으로 나갈 수 있었고, 장을 봐야 하는 시간은 정해져 있었다. 집을 나가서 경찰을 마주치게 되면 통행증이 필요했고, 결국 우리는 먹고사는 일이 당장 어려운 처지가 되고 말았다.

풀풀 날리고 2센티미터는 족히 되는 그들의 쌀로 밥을 해 먹고 싶지 않아 한국에서 출국할 때 가져간 벌레 먹은 한국 쌀을 인도의 대도시에서 구입한 일본 쌀과 섞어서 먹고 있었는데, 각 도시 간의 비행편도 끊어지다 보니 한국 식재료를 구입해 올 수가 없었다. 다행히 수입 식재료를 파는 가게 사장님이 배달을 해준다고 하여 파스타와 소스 그리고 밀가루를 구할 수 있었고, 아이들은 2-3일에 한 번은 파스타를 해 먹이고, 따라 할 만한 유튜버를 찾아내 매일 빵을 반죽하고 구워서 먹였다.  


쌀밥은 하루 한번 정도만 먹는 특별식이 되어갔고, 이런 상황에서 내가 먹는 음식이라도 줄여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다행히 채소와 달걀을 파는 리어카가 우리 아파트 앞에 매일 왔고, 거기서 구한  재료들로 나는 샐러드를 해서 주로 식사를 대신했다. 처음에는 식량난 아닌 식량난으로 음식을 줄여서 먹기 시작했는데, 점점 안 먹는 횟수가 늘어나며 두 달 후에 귀국할 때는 5킬로그램 정도가 감량된 상태가 되었다.


문제는 음식을 먹으려 하면 금지하는 마음이 먼저 떠오르고, 그다음은 죄책감 그리고 불안감 등이 여러 가지 모습을 하고 내 안에서 떠올랐던 것이다. 그래서 한 동안 제대로 먹을 수가 없었다. 


한편으로는  어찌 된 일인지 퇴근만 하고 저녁에 집에 오면 보이는 음식을 모두 입에 집어넣다시피 하며 먹는 것이었다. 먹는 게 즐겁거나 좋아서는 아니었다. 있으니깐 입에 넣고, 남기면 안 된다는 강박에 또 입에 넣고, 아이들이 남긴 음식도 아까우니깐 입에 넣고. 이런저런 이유들.


이제는 아무리 음식을 멀리하며 예전의 체중감량 방식을 적용해 보려 해도 시작조차 할 수 없기를 반복할 뿐이었다.


최고의 다이어트 방법을 찾아 도서관을 훑기 시작했다. 빌릴 수 있는 전자책들은 다 본듯하고, 이미 사놓은 책들 뿐 아니라 빌릴 만한 책들은 빌려서 읽기 시작했다.


결론은 하나다. 골고루 적게 먹고 규칙적으로 운동하라. 좋다. 방법은 그거다. 그러면 어떻게 내 행동을 그 방법에 연결할 것인가?


처음에는 습관에 대한 책들을 훑어보다가, 자극-행동-보상의 메커니즘에 나를 넣으려 했는데 역시나 잘 작동하지 않았다.  그러던 차에 우연히 보게 된 책이 <식욕 내려놓기>였다.  매일 식습관과 관련한 여러 질문에 답해보면서 감정을 살피는 워크북과 이론서가 합쳐진 형태였다. 이 책은 절판되었는데 중고로 구해서 하루하루 내용을 채워갔다. 관련해서 식욕을 알아차리는 내용의 책들을 두 어 권 더 만날 수 있었고, 지금은 매 번 먹고 싶어 질 때 바로 음식을 찾기보다는 내 마음을 알아차려보는 경험을 반복하는 중이다.


생각해보면, 먹는다는 것은 마치 대상이 있어서 시작되는 것으로 여기곤 하는데, 맛있어 보이는 음식, 맛있다는 음식이 원인으로 여기듯 말이다. 사실은 먹고 싶다는 마음이 있으므로 그 대상이 눈에 들어오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즉, 음식이 있어서 먹는 게 아니라 먹고 싶은 마음이 있어서 음식을 찾는 것은 아닐까?


배가 고픈 시점에 일단 멈춰서 배가 고프다고 느끼는구나 라고만 생각해도 둘에 한 번은 고픈 느낌이 없어지는 것을 경험했다. 이런 식으로 반복하며 알아차리다 보니  정말로 배가 고파서 먹는 순간은 내 일상에는 없었다. 고프지 않아도 먹고, 먹을 시간이 되었으니 먹고, 눈앞에 보이니 먹고를 반복했던 나를 알아차리게 되었다.


체중을 줄여야겠다는 외적인 목표가 아니라 내 안에 집중을 해 보면 뭔가 다르다는 것을 알게 된다. 또 의외로 적은 양의 음식으로도 허기를 느끼지 않는다는 점에 놀라게 된다.

어쩌면 내가 내 안의 역동을 알아차림으로써 정서적 허기가 어느 정도 해소되었는지도 모른다. 또, 요즘 자주 일기를 쓰고, 필사를 하며 이렇게 블로그에 글을 쓰는 것이 알 수 없는 허기를 채웠는지도 모르겠다.


지금도 두려움이 몰려오기도 한다. 이렇게 먹지 않아서야 몸이 망가지는 것 아닐까? 그럴 수도 있다. 망가질 수도 있겠고, 두려움이 몰려올 수도 있다. 결국 이 몸을 지니고 살아가는 한 느껴줘야 하는 감정 들일 것이다.


무엇을 먹을지가 아닌, 내가 먹음으로써 뭘 채우고 싶어 하는지를 먼저 살펴보는 것. 그것이 음식을 더욱 소중하고 맛있게 누리는 방법이 아닐까 생각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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