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근길 산책자

공원을 가로질러 출근하기

by 가로등

7시 30분이 되기 전 집을 나선다. 아파트 현관을 나서면 바로 30년 넘게 자란 마로니에 나무들이 하늘을 향해 무성하게 뻗어 있다. 그 푸른 잎사귀들 사이로 오늘의 날씨를 담은 하늘이 보인다. 아침의 밝은 햇빛이 나뭇잎들을 비추면 그 장엄함에 바르셀로나의 사그라다 파밀리아 성당의 내부를 떠올리곤 한다. 가우디도 이런 광경을 마음에 담았던 것일까?


단지를 빠져나와 횡단보도를 건너면 바로 공원이 시작된다. 같이 길을 건넌 사람들은 대부분 바로 앞에 있는 지하철역으로 쓸려 들어간다. 나는 동선의 이질감을 살짝 느끼며 역 입구를 지나쳐 공원으로 들어선다.


이 시간에는 아침 운동을 하는 몇몇 사람들이 있기 마련이다. 다들 무슨 생각에 잠겨 있는 것일까? 지금 이곳에 있는 우리 모두에게 각자가 염원하는 만큼의 '건강'이 함께 하길 바라본다.


나지막한 언덕길에는 느티나무와 마로니에가 울창하게 자리 잡고 있다. 역시나 그들의 푸른 잎 사이로 보이는 하늘이 내 안의 뭔가를 자꾸만 흔드는 느낌이다. 그 하늘에 무엇인가 있다. 단지 푸른 하늘이어서가 아니라, 나뭇잎들 뒤로 보이는 하늘이라서 그렇다.


언덕을 넘어 내리막으로 들어서면 오른쪽으로 넓은 잔디밭에 플라타너스 나무들이 서 있다. 그들이 이루고 있는 윤곽선은 살아있는 계절을 보여준다. 어느 은행나무 옆에 새로운 줄기가 자라는 모습을 본다. 저 큰 나무도 시작은 작았다는 것을 새로운 마음으로 바라보게 된다.


모여있는 새들은 무엇인가를 연신 쪼아 먹는다. 내 눈에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데, 저토록 소박한 식사로 한 생명이 부지될 수 있다는 점에 내가 부끄러워진다. 나는 무얼 그토록 입에 집어넣으려 애쓰는 걸까.


봄이 될 때 나무들은 하루가 다르게 온몸에서 잎을 키워내고, 여름에 들어서자 벌써 열매를 떨구는 것도 있다. 그들이 무슨 목적이나 이유가 있어 보이지 않는다. 단지 빛, 바람, 온도, 수분 또는 소리, 우리가 알지 못하는 어떤 감각들에 의해서 그저 살아가는 것으로 보인다.


한편으로는 그들만의 규칙과 삶의 방식이 분명히 존재함을 느낀다. 인간이 그것을 언젠가는 과연 다 알아낼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을 해 본다. 느티나무, 마로니에 나무, 플라타너스, 메타세쿼이아, 잔디풀, 까치... 모두 각자의 세상에서 살아간다. 그 세상은 인간이 감히 이해할 수 조차 없는 차원일지도 모르고, 어쩌면 이미 공명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런 면에서 그들이 주는 아침의 공원 풍경은 무척이나 비현실적인 아름다움을 보여준다.


켄 리우의 <은랑전, The hidden girl>에는 이런 문장들이 있다.

"The world is full of illusions cast by the unseen Truth..... What can be seen is not all... I still have a scar on the back of my back..... You have lived your life as an ant on a sheet of paper, and the truth is far more wondrous."


당나라가 배경인 '은랑'이라는 무협소녀의 이야기라고도 할 수 있는 소설인데, 종이 위를 기어가는 개미가 아무리 자기를 보호하기 위해 벽을 둘러쳐도 공중에서 날아오는 적은 막을 수 없다는 얘기다. 차원이 다르다는 것은 이런 것이다. 내가 인식하는 차원을 넘어서는 것은 존재하지 않는 게 아니라 단지 나만 모를 뿐이다. 다양한 차원을 인식하는 존재에게는 한낱 우스움으로 보일 것이다.


하인리히 침머의 <인도의 신화와 예술 >에도 이런 구절들이 있다.

"오, 인드라여, 나는 긴 행렬의 줄을 이은 개미들을 보았습니다. 그것들 하나하나는 한때 인드라였습니다. 당신과 같이 경건한 행위를 한 자들은 한때 제신의 왕이라는 서열에 올라섰습니다. 하지만 수없이 많은 환생을 하는 동안 각자는 다시 개미가 되었습니다. 이 무리들은 예전에 인드라였던 무리들입니다." P18


자신의 끝없는 욕망에 이끌려 화려한 궁전을 짓고자 하는 인드라에게 소년의 모습을 한 비쉬누가 하는 얘기다. 그러므로 결국 현자는 전혀 어느 것에도 집착하지 않는다며 이야기를 마친다.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과 다른 차원이 얇은 종잇장 같은 차이로 우리를 둘러싸고 있으며 그로부터 근원적인 신의 섭리가 빛처럼 우리를 안에서도 밖에서도 감싸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이 종잇장에 은랑이 단도로 그어 틈을 낸 후 한 사람을 다른 차원으로 말을 태워 보내듯, 공원을 걷는 출근길이 또 다른 세상의 빛이 되어 내 마음을 비추인다. 그 빛은 직장까지 따라와 내 책상에 세워놓은 작은 십자고상에 머무르고, 하루를 함께 한다. 같이 일하는 동료들에게도 그러한 무엇이 함께 하고 있기를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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