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름은 그저 그 자리에 있었다.

삶의 방향에 대한 망상

by 가로등

지난달에 나온 검진 결과가 새로운 말들이어서 그랬는지, 남편도 다시 함께 걷기 시작했다. 나 혼자라면 런데이 앱을 켜놓고 달리겠지만, 남편과 아이까지 있으니 걷다가 달리다가 하면서 서로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면서 올림픽 공원을 한 바퀴 돈다.


해가 진 저녁은 아직도 밝고, 공기는 후텁지근했다. 하늘에는 작은 연회색 구름들이 깔려 있었고, 짙은 회색 구름들은 더 큰 덩어리로 뭉쳐져 펼쳐있었다. 마치 짙은 구름들은 산이나 섬처럼, 옅은 구름들은 바다로 보였다. 그렇게 여기자, 하늘에는 파도가 이는 거대한 바다가 펼쳐지고 나는 그 산과 물아래에서 온 세상을 한눈에 바라보고 있는 것 같았다. 무척 압도되는 광경이었다.


함께 걷는 그들을 보니 적어도 나처럼 압도된 표정은 아니었다. 나만이 새로운 세상을 발견하고 그 안에 발을 디딘 느낌이었다.


어느 날인지 문득 이런 망상이 시작되었다.


'삶은 이미 다 펼쳐져 있다.'


아무 맥락 없이 이런 문장이 말 그대로 의식에 떠 오른 것이다. 뭐지? 뭘까? 왜?.. 잠시 곰곰이 생각을 붙잡아 본다. 삶이 이미 다 펼쳐져 있다면 지금 나는 뭐 하고 있는 거지?


'주름' 속에 있는 것이다. 살아간다는 것은 주름 속에 던져지는 것이고 그것을 펴 나가는 과정이 삶이다.

태어날 때 사건이 시작되는 것이 아니라 이미 사건은 수정란이 되기 전에 시작되었다. 그로 인해 우리가 알고 있는 유전자나 후성유전을 포함하는 모든 것들을 지닌 채 '인간'으로 만들어져 간다. 태어난다는 것이 주름 속으로 들어오는 것이다.


원래 주름 없이 좍 펼쳐진 것이 본질이라고 한다면 그 방향으로 가는 것이 생명 그 자체다. 펼쳐지기 위해 오늘, 지금 존재하는 것이다. 아니, 존재하므로 펼쳐져야 하는 것이다.


뭔가 관점이 달라지는 느낌이다. 내가 선택해서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살아가므로 선택해야만 하는 것인데, 어디까지나 그것은 삶의 주름을 펼치기 위한 것이다. 즉, 경계에 도달하고 그것을 허무는 것이다. 무경계에 이르기 위해서다.


일상의 루틴을 만들고 싶어 안달을 하고, 잘 되지 않는 일에 매달리고 자책하다가 다시 시도하며 성취하고 나면 그 결과물이 무엇이든지 간에, 성취 전의 자신과는 다른 자신을 경험하게 된다. 하나의 경계가 허물어진 것이다. 그러나 그 과정에서 또 다른 주름을 잡아가게 되므로 우리의 삶은 주름의 역동으로 가득 차게 되는 것이다.


삶이 이미 펼쳐져 있다면, 내가 할 일은 모든 순간에 '오케이, 좋아! 네!'라고 반응하며 나아가면 되는 것 아닌가. 이리저리 재고 고민하는 것도 내 선택 안에 나를 맞추기 위해서가 아닌가. 그러므로 모든 순간은 사실 내가 믿고 의지하는 일종의 경계선들을 풀어헤치기 위한 기회인 것이다.


이 글을 쓰면서 의자에 앉아있는 이 순간도, 건강한 몸을 위해서 허리를 세우고 어깨에 힘을 빼려 의식하는 것이 나중에 비뚤어진 자세로부터 받게 될 고통의 주름을 펴는 것이다. 왜냐하면 몸에 부하를 주는 자세로 있는 것 자체가 지금은 체감할 수 없다 해도 이미 주름을 만든 것이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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