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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가로등 Sep 26. 2020

매일 하는 것을 좋아합니다.

새로운 방식의 일기 쓰기로부터 배우는 것 

나는 언젠가부터 무엇인가를 매일 하는 것을 좋아하게 되었다. 


아마도 <아주 작은 습관의 힘>이라든지 <습관의 힘>과 같은 책들을 읽고 나서였는지도 모르겠다. 습관과 시간관리 그리고 자기만족과 성취라는 단어들이 생명력을 갖고 내 생활 속으로 들어오면서 자연스레 그리 된 건가 하고 기억을 조작해본다. 


삶은 어떤 면에서는 이어져있는 것 같기도 하지만, 잘 생각해보면 모두 따로따로의 순간들이 내 기억 속에서 마치 하나의 유기체 - 나 자신-인양 통합되어 인식된다는 생각이 든다. 아마 이런 식으로 얘기했던 수많은 저자들이 있었을 것이다. 어쨌든 나는 그 하나하나의 행위들을 하면서 내 삶이 무엇으로 이뤄져 가는지 들여다보고 싶은 마음이 아주 크다. 


그래서 여러 가지 방법으로 내 삶을 살펴보곤 했다. 기본은 기록이다. 그렇다고 메모광은 아니다. 다만,  '기억의 분실'을 만들어 기억하는 행위에서 오는 피곤함을 줄이고 싶은 것이다.


항상 시간을 아껴야 하고, 무엇을 했는지를 알고자 하다 보니 써 놔야 했다.  좀 더 편하게 나에게 할 일이나 약속을 알려봐야겠다 싶어서 앱이나 컴퓨터 프로그램도 써 봤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그런 '기억의 분실'을 스마트폰이나 컴퓨터에 만들어두면 내가 그것들로부터 지시를 받는다는 느낌이 들었다. 누가 시켜서 하는 일들이지 내가 하고 싶어서 하는 일이라는 느낌이 없어지는 것이었다. 분명히 내가 하고 싶어서 입력해둔 것들인데도 말이다. 


그래서 이제는 번거롭기도 하지만 종이로 된 플래너만 쓴다. 바인더 형태로 되어 있어 속지를 끼울 수 있는 형태라서 여러 양식을 마련해서 기록하기 쉽게 할 수도 있지만, 이 역시 뭔가 나 아닌 것을 따라가는 느낌이 들었다. 그러다가 찾은 것은 5mm 모눈 노트이다. 


이것만 있으면 나의 기록은 정말 즐거워진다. 별도의 플래너 양식이 필요 없을 정도이다. 내가 생각하는 대로 이렇게 저렇게 선만 그으면 된다. 


요즘 새로 매일 하게 된 것은 영어 필사와 일기를 함께 쓰는 것이다. 


아무래도 에너지가 충전되어 있는 아침이 이런 일 하기에는 좋다. 새벽의 숨 막힐듯한 고요함이 정말 좋다. 그런 적막함 속에서 5mm 모눈 노트에 영어 몇 문장을 베껴 쓴다. 몇 번 읽어본 다음 되뇌어보고 되도록이면 외워서 쓴다. 영어 공부라기엔 양이 너무 적지만, 그래도 이렇게 하는 중에 여전히 내 문법이나 영작에는 맹점이 있음을 깨닫고 고쳐보게 되므로 나름 생활 속에서 영어와의 접점을 만들어 보려는 노력이 되긴 한다.


그 문장이라는 것은 오석태의 <하루 10분 영어 필사 긍정의 한 줄>이라는 책을 이용한다.  40일 분량으로 되어 있는데, 한 번 쓱 훑을 수도 있고, 어디선가 다 들어본 얘기라서 새로울 것이 없기도 하다. 하지만, 뭐든지 보는 눈에 따라서 행동이 달라질 수 있지 않은가? 


문장을 쓰면서 마음을 비우다 보면 - 물론 그 짧은 시간에 잡념은 꼬리에 꼬리를 물고 나타나기도 한다. 하지만 생각이 일어나고 있음을 알아차리다 보면 조금씩 마음은 고요해진다 - 뭔가 떠오른다. 그 말과 관련되어 써 내려놓고 싶은 생각들이 나타난다. 그것을 붙잡아 글로 쓴다. 글을 쓰다 보면 마음에서 감정이 떠오를 때도 있다. 그것을 느껴본다. 불편하고, 짜증 나고, 무시하고 싶더라도 그냥 거기서 멈춰본다. 나 자신에게 왜 그러느냐고 묻기도 하지만, 그냥 그 상태에서 머무르려고 한다. 그렇구나. 이 지점에서 그런 마음이 드는구나 하고 알아차리려고 해 본다. 조금 더 도구가 필요할 때에는 거울을 꺼내어 바라본다. 대화를 하기도 하다가 다시 글로 돌아간다. 


이렇게 하면서  나에게 중요한 것은 내 생각이나 논리가 아니라 감정이라는 것이 점점 명확해지는 것 같다. 무엇이든 시시비비를 가리고, 논리를 따져서 가장 옳고 정확한 편에 서야 한다고 생각해왔었는데, 옳고 그름의 경계는 모호하고, 한 편에 선다는 것 자체가 편협함을 몸소 실천하는 것임을 알아가는 중이다. 그런 사고와 행동이 있기 전에 나만의 유일한 것이 있었으니 그것이 바로 감정인 듯하다. 누군가는 그 감정을 알아차리고 보내주기 위한 도구로서의 삶을 말하기도 했던 것 같다. 


글을 쓰면서 항상 시작이 있으면 결론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고, 심지어 일기에서도 다음 행동의 개선을 다짐하는 것으로 마무리했었다. 그런데 어쩐지 일기를 쓴 것 같지도 않고 마음이 후련해지지도 않는 것은 왜 일까 궁금했었다. 이제야 그게 아니었음을 깨닫게 되었다. 


나에게 솔직하다는 것이 속 마음을 털어놓는 것 뒤에 있는 감정을 알아차리는 것이라는 나에게는 새로운 정의를 만들어본다. 남들은 이미 많은 책과 강의에서 말해온 것이다. 그런데 이제야 내 삶에 들어와 나를 알게 한다. 그동안에는 남들의 삶을 구경만 하고 있었다고 할 수 있다. 


그래서 새로 뭔가를 '알게'되고 그로부터 좀 더 넓은 마음으로 삶을 이해하게 됨에 감사할 수밖에 없다. 이런 경험들을 정말로 사랑한다. 이게 나의 일상을 있게 하는 힘이다. 


오늘로서 8일째 영어 필사와 일기 쓰기를 하루의 첫 일과로 삼고 있다. 매일 하는 것을 다시금 나에게 알려주기 위해서 모눈 노트에 체크리스트를 만들어두고 표시하고 있음은 물론이다. 빈칸 없이 그려져 가는 동그라미를 보면서 즐거움을 느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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