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르는 것을 아는 수준을 넘어, 생각도 유기체처럼 성장하는 경험
생각도 생물이다.
나비가 번데기를 탈피하듯 생각도 탈피한다.
내가 경험한 첫 번째 생각 탈피는
목숨처럼 중요한 사건이 일어나고 답을 찾아 헤맬 때 아무도 답을 알려주지 않아 던 것이 결정적인 요인이 되었다. 처음으로 스스로 질문을 던지고 답을 구하던 중 생각이 잠을 자도 꿈으로 이어지고 꿈으로 이어져있던 생각이 잠에서 깨어나도 생각이 이어지는 경험을 했다. 그리고 이 경험 끝에는 반드시 그렇게 찾아 헤매던 원하는 답을 찾아낸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답을 찾아내는 그 순간은 아주 강렬한 경험을 하게 되는데 그 경험은 바로
고민하고 질문하던 수많은 생각들이 마치 하나처럼 연결되는 경험을 실제로 겪게 된다는 것이다.
그 후 내 생각이 통합되었다는 것을 경험적으로 알게 하는 경험이 첫 번째 경험이었다.
내가 경험한 두 번째 생각 탈피는
순수한 탐구영역에서 일어난 사건이다. 심리가 사람을 넘어 사회 전반에 큰 영향을 주고 있다는 것을 알고 심리의 정체가 궁금했을 때였다. 역시 원하는 답은 찾을 수 없었고 스스로 찾아내겠다고 마음먹고 끊임없이 질문에 질문을 더했다. 그러던 중 새벽 깊은 잠을 자고 있던 나에게 예고 없이 번쩍이듯이 답이 등장했다.
그렇게 궁금하던 심리의 실체를 알게 되는 순간 그 답은 아주 또렷하고 내 생각의 중심에 별이 떠 있듯 또랑또랑하게 느껴졌다.
그리고 답을 찾아내는 순간의 경험은 다음과 같다.
답을 찾아내면 그 답을 중심으로 내가 알고 있던 정보들은 검열 받 듯 다시 재정의, 재조립된다.
재정의, 재조립된 정보는 공통의 분모를 따라 함축적으로 줄어들고 그렇게 부피는 줄어들고 밀도가 높아진다. 이 과정의 끝으로 가면 결국 찾아낸 답 하나만 남고 나머지 정보는 하나의 답에 함축적 의미로 담긴다.
그래서 생각이 텅 빈 느낌과 함께 그 중심에는 마치 별이 떠 있듯 딱 하나의 답만 존재하는 경험을 목격하게 된다. 스스로의 의지는 전혀 개입되지 않고 그저 관찰자로서 그 상황을 목격하게 되는 것이 특징이다.
내가 경험한 세 번째 생각 탈피는
나와 똑같다고 느껴지면서 동시에 반대되는 대상을 만나게 되면서 일어난 사건이다.
그 대상이 겪고 있는 문제를 고민하던 중에 세 번째 생각 탈피가 일어났다.
과정은 다음과 같다. 대상의 문제를 고민하던 중 알게 된 답을 대상과 공유하면 그 답이 일부는 맞지만 일부는 맞지 않았다. 그래서 다시 고민하게 되고 그 고민을 통해 다시 더 적합한 답을 찾아서 공유하면 역시나 일부만 맞고 일부는 맞지 않았다. 확률은 올라가도 완벽한 답은 아니었다. 완벽한 답을 찾아야만 그 대상이 겪고 있는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고 마음을 먹는 순간, 세 번째 생각 탈피가 일어났다.
세 번째 생각탈피가 일어난 순간은 다음과 같다.
이전 생각은 질문을 던지고 생각이 나는 수준이었다면 세 번째는 새로운 현실이라 느낄 만큼의 내가 상상한 장면이 마치 시뮬레이션 창을 열어 놓은 것처럼 펼쳐진다. 그리고 그 안에서 나는 수많은 시뮬레이션을 하는 나를 발견하게 된다. 시뮬레이션은 실험과 같아서 원하는 답을 얻을 때까지 경우의 수를 다 돌려볼 수 있다.
이 과정에서 답을 얻으면 그 순간 내 안에서 얻은 답은 실제 눈앞에 펼쳐진 듯 현상으로 나타난다. 소용돌이가 답이었구나 하고 결론을 내리면 하늘에 실제로 소용돌이치는 구름이 떠 있다. 소용돌이를 직접 목격해서 관찰하기로 마음먹으면 뉴스에서 태풍이 처음으로 서울권 중심으로 들어온다는 소식을 들려준다. 상대적인 것이 하나로 묶여있었구나 하면 그 의미를 품은 노래가 갑자기 터져 나오듯 노래가 흘러나온다.
이런 경험은 시뮬레이션을 통해 얻은 답이 실제 현실에서도 절묘한 타이밍으로 나타나 준다. 그래서 생각을 통해 답을 얻은 수준을 넘어 확정적이고 결정적이며 물리적인 결과를 만든다.
네 번째 생각탈피가 일어나는 순간은 다음과 같다.
세 번째 생각탈피 때 알게 된 답을 다시 한번 더 정교한 답을 얻기 위해 고민하던 때였다. 빛은 입자이자 파동이라는 중첩현상이 어떻게 가능한지를 고민하던 중 스스로 그 현상이 일어날 수 있는 구조를 스스로 생각이라는 시뮬레이션을 통해 끊임없이 경우의 수를 줄여가고 있을 때였다.
역시나 이 질문에 스스로 답을 찾아냈다. 그러자 다음과 같은 현상이 일어났다.
세 번째 생각탈피 때 연결되었던 인연들, 지금 내 곁에 있는 인연들, 중요한 지점의 시간과 날짜, 태어날 날짜들이 마치 퍼즐이 맞춰지듯 절묘하고 완벽하게 맞아떨어졌다. 모든 순간이 결정되어 있었던 것처럼 완벽한 퍼즐의 완성이었다. 버릴 것 하나 없이 일련의 모든 일들은 완벽하게 제 역할을 하고 있었다는 것을 이해하게 되는 순간이었다.
올해로 45살이 된 내가 경험한 내 생각은 어떻게 성장하는지를 관찰해 본 결과 총 4번의 대나무의 마디처럼 명확한 4번의 마디가 존재했다. 마디를 겪을 때마다 생각하는 방법이 완전히 바뀌었다. 같은 정보여도 브런치에 글을 쓰던 방식에서 유튜브 영상을 촬영방식으로 바뀌는 것만큼 달라졌다. 모르는 것을 아는 수준이 아닌 생각하는 방식의 명확한 변화였다.
챗 GPT가 아무리 생활 깊숙이 들어온다고 해도. 챗 GPT는 기존의 자료를 기반한다. 새로운 영역의 정보는 인간이 입력하지 않으면 출력하지 못한다. 그 점이 인공지능의 한계이자 인간의 할 수 있는 유일한 영역이라고 생각한다. 기존방법대로 지식을 배우는 것을 넘어 이제는 생각을 성장키는 방법이 중요하지 않을까 생각해 보며 내 경험을 공유해 봤다.
아이는 지식을 채우며 자란다.
어른은 지식을 깨치며 자란다.
지식은 채우면 채울수록 늘어난다.
지식을 깨치면 깨칠수록 함축적으로 줄어든다.
지식은 아는 것이고
지혜는 깨닫는 것이다.
아는 것은 심리가 없고
깨닫는 것은 심리가 있다.
심리가 없다는 것은 가치가 없다는 것이고
심리가 있다는 것은 가치가 있다는 것이다.
가치가 없다는 것은 소중하지 않은 것이고
가치가 있다는 것은 소중하다는 것이다.
소중하지 않다는 것은 사랑하지 않는다는 것이고
소중하다는 것은 사랑한다는 것이다.
지식과 지혜의 차이는
사랑하지 않는 것과 사랑하는 것의 차이이고
사랑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과 사랑을 이해하는 것의 차이이다.
생각 탈피를 통해 알게 된 사랑이라는 단어는
가치이고, 천재성이며, 심리이고, 의식과 무의식이며, 남녀이고, 아이와 어른이다, 또한 보호와 성장이고, 상대성이며, 양자역학이고, 별이며, 소용돌이이고, 원운동이며, 상대적인 두 개의 존재가 하나처럼 운동하는 상태이다.
그렇게 다 다르지만 다 같은 의미이고 의미가 같아도 다 다른 현상으로 나타난다.
과정이 쌓여 결과를 만들고 그 결과가 쌓여 다시 과정을 만드는 것과 같은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