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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밀품 Oct 17. 2023

잘 놀라는 기질

23.10.17



제주 가는 공항수속을 마치고 앉아 영화를 보고 있었다. 4명이 앉을 수 있는 탑승구 앞의 즐비한 의자들은 꽤 널찍하고 앉아있기 불편하지 않다. 그런데 누군가 내 옆에 털썩 앉는다. 뭘 대단히 큰 움직임으로 앉은 것은 아닌데, 그냥 몸의 무게를 얹어 한 할머니가 앉으셨다. 네 자리가 붙어있는 의자 전체가 순간 진동했다. 나는 무척 놀랐다. 그리고 짜증이 났고, 영화를 껐다. 아주 짧은 그 순간을, 나는 이런 놀라는 순간을 아주 싫어한다. 나는 잘 놀라는 편이다. 정말 심장이 쿵 내려앉는데 아플 정도다. 




그래서 일부러 장난을 치는 사람이 있다면 그게 누군지를 알아채기 전 나의 본능적 표정은 그야말로 입에 쌍두마차를 끌기 일보직전이다. 장난도 뭣도 아니지만 그저 공항의자가 4개 붙어있는 관계로 할머니는 앉았을 뿐인데 나를 놀라게 했다. 아니, 내가 놀랐다. 영화에 몰입돼 있어서 주변의 변수가 더 세게 예민스럽게 다가온 것이다. 예전엔 건널목 앞에서 신호등이 바뀌기를 기다리는 나를 동료가 반갑다며 등을 힘껏 내리쳤을 때도, 나는 혼자였고 아무 생각이 없었기에 주변을 의식할 이유가 없었다. 너무 놀랐는데 아프기까지 해 도저히 웃는 낯으로 반가운 인사를 하기 어려웠다. 그게 숫해전인데 아직도 그때 놀란 가슴이 얼마나 아프고 짜증스러웠는지 기억나는 걸 보면 나도 어쩔 수는 없지만 동료에게 미안하기도 하다. 




어쨌든 남편을 포함해 가까운 누구든 나를 놀라게 할 요량으로 일부러 등뒤에서 일을 벌인다면 글쎄, 한 번은 나의 참을 인을 있는 대로 끌어모아 웃고 넘어갈 만은 하지만, 두 번째부터는 좋은 얼굴을 보기가 어렵게 된다. 어쩌랴. 나는 놀래는 것을 넘어 가슴팍이 아픈 것을. 보이지 않는 등뒤만이 문제가 아니다. 뻔히 앞에서 오는 걸 보면서도 어떤 포인트에서 놀라고, 트라우마가 있는 걸 보면 소스라쳐 뜀박질을 하고, 없는 것을 보고(봤다는 착각에) 놀라기도 한다. 심신의 허약을 나를 자주 겪은 사람들은 이유로 들기도 한다. 모르겠지만 나도 아주 아니라고는 못하겠다. 그런데 나는 어느 나이부터인가 이렇게 잘 놀라는 사람이 돼있었다. 제발 나를 놀라게 할 생각은 하지 마요,라고 하는 건 무슨 무례한 김칫국인가 싶지만 이 순간 '생각'은 할 수 있으니까. 제발. 방금 너무 놀랐어요 ㅜ. ( 쓰는 동안 놀랜 가슴 쓸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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