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밀품 Oct 23. 2023

관계 맺음

in Jeju

23.10.22



나는 종종 사람과 관계 맺기에 대해 생각한다. 지금 제주여행을 하면서도 이 생각을 두 번째 하고 있는데. 그건 여행 둘째 날 00의 전화를 받고 2시간 통화한 후였고, 조금 전 책방 제주풀무질에 들러 나오는 길에서이다. 나는 나의 관계 맺는 방식을 오래 폄하해 왔다. 나를 하찮게 여겨서다. 능수능란하지 못하고 여유롭지 못하고 어른 같지 못하고 잘 모르고. 수없이 많은 관계를 이렇게 나를 하찮아하면서, 그것이 상대에게 드러나지 않도록 무진 애를 써가며 관계 맺는 것을 즐기기보다 나를 소모하는 게 썼다. 누구를 사귀고 어떤 사이가 되는 것에 대단한 의미를 두고 있었다. 아니, 그 관계에서 내가 상대에게 의미 있는 존재가 '되어야만' 했다는 말이 더 정확할 거 같다. 그래야 나의 하찮음이 희석되고 꽤 쓸모 있는 사람이 된 듯 스스로 만족했다. 그렇게 사귀면서 살지 않으면 안 되는 그런 이유가 있다고 생각했다. 




실버액세서리를 제작하는 00은 플리마켓에서 우연히 셀러로 만나 알고 지낸 지 10년은 되어가는데 얼굴을 대면한 지는 서너 번쯤, 통화도 아마 그쯤. 그런데 수년만에 전화를 걸어온 그녀와의 통화는 번호가 바뀌어있어 누구인지 재차 물은 것을 빼고는 억지스럽지도 힘들지도 않았고 진심으로 듣고 편안하게 말할 수 있는 그런 관계다. 개인적으로 어려운 일을 겪어내고 있는 00에게 나같이 먼저 거는 안부전화에 인색한 사람이 그 얼마나 힘이 되는 소리를 했다면 했겠는가. 그렇지만 그녀는 늘 그렇게 표현했다. 내가 힘이 되는 사람이라고. 그 말에 나는 되려 고마운 마음이 든다. 얼마 만에 또 전화통화를 하게 될지 몰라도 그래도 별문제 없는 관계. 아마도 나는 먼저 전화하지 않을 것이 뻔하지만 걸려오는 전화를 반갑게 받을 관계다. 




그리고 오늘 책방 제주풀무질에서는 책 2권을 샀다. <사랑의 기술>과 <법 짓는 마음>을 골라 계산하면서 책방지기님은 <사랑의 기술>을 가리켜 당신이 좋아하는 책이라고 하셨다. 그리고 책모임에서도 본다고. 나는 처음 몇 장을 읽고 이 책은 두고 읽어야겠더라고 요했고, 책방지기님은 또 제주의 오마이뉴스 같은 매체에 이 책과 관련해 글을 쓴 적이 있는데 전화번호 남기는 게 괜찮으면 보내고 싶다고 하셨다. 이 글이 마음에 들면 아래 목차의 글들도 읽어보라는 차분하고 선한 권유를 남기셨다. 책방을 나와 얼마 걷지 않아 문자가 왔다. 


제주풀무질 일꾼 000이에요.

'사랑의 기술'  느낌글을 보내 드려요. 

-

감사합니다~ 

'사랑하는 사람'이 되고 싶어 '사랑의 기술'을 집어든 000입니다

잘 읽겠습니다~! 

-

네. 사랑하는 사람이 사랑도 받지 싶어요.

즐거운 제주나들이 맞으세요.


제주풀무질의 책방지기님처럼 (아마도)일회용으로 끝나버릴 관계일지라도 내가 책 <사랑의 기술>을 골라 구매하는 바람에 남겨진 문자들과 물론 저장하진 않겠지만 전화번호가 한동안은 문자목록에 남아 있을 그 정도의 관계도 책을 통해 만들어진 잠깐의 관계다. 




이제는 내가 관계 맺는 방식을 아주 존중한다. 나는 내가 먼저 전화를 거는 사람이 아닌 것도 존중하고 상대에게 어떤 사람이 되어야 한다는 강박도 흐려졌다. 편안한 사이에선 충분히 즐기고, 나에겐 진을 빼며 소모적이라 느끼면 (상대가 나빠서가 아니라 성향의 차이로) 거절하거나 피하는 태도도 이제 존중한다. 그러고나니 나는 생각보다 많은 관계를 맺고 있다는 걸 알게됐다. 




나는 이런 모든 나의 관계 맺음이 생각보다 종종 괜찮다고 느껴진다. 좋다가 아니고 괜찮다. 사는데 아무 문제없다는 걸 알았다는 뜻이다. 그리고 나와 이런 다양한 관계를 맺어주어 감사한다. 이건 뭐랄까. 나를 정리정돈하는 법을 알아가는 것 같은 안도와도 같다. 다양한 관계에는 물론 유지하기 힘든 관계가 돼버린 경우들을 포함해서다. 이마저 아무렇지 않은 것이 괜찮아진 것의 절반일 거다.  




뭘 그렇게 관계의 많고 적음과, 적극과 소극을, 유연과 경직을, 달변과 그렇지 않음으로 이분하며 사는 바람에 나는 왜 둘 중 하나여야만 하는 좁은 선택지를 쥐고 있었을까. 나는 이렇게 나의 방식으로 이런저런 관계를 만들어가며 아무 문제 없이 살아갈 수 있는데 말이다. 




매거진의 이전글 잘 놀라는 기질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