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태도에 관하여

/ 조금만 더 무해하게 살아보기 /

by 밀품


22.02.04


오늘 택배 상자 하나가 도착했다. 딱새우라고 적혀있어 남편이 생물 새우를 시켰나 싶어 열어보았다. 다름 아닌 딱새우 분말이 첨가된 봉지라면과 컵라면이다. 아하… 가급적 지양하려고는 하지만 국민 먹거리, 라면이 아닌가. 나도 남편도 라면맛을 좋아하고 종종 먹는다. 하지만 택배를 시켜먹을 정도로, 게다가 구지 컵라면으로 그 맛을 확인할 정도로 덕후들은 아닌데 싶은 것이 박스를 열면서 드는 솔직한 나의 심정이었다. 왜냐면 버려질 쓰레기 때문이었다.



소비는 어쩔 수 없이 비닐, 플라스틱 쓰레기를 만들어 낼 수밖에 없다. 소비하지 않고 사는 것은 불가능하지만 필요에 대한 고민과 소비 후에 남을 쓰레기에 대한 경각심은 가져볼 만하지 않을까 생각이 들었다. 우리 집에 한해서는 보완재 정도의 라면을 구지 쌓아 두고 먹어야 할까부터 택배 상자에서 나오는 포장재와 테이프, 종이상자까지 모두 쓰레기인데, 그리고 재활용도 되지 않을 컵라면 용기들을 어쩌나 하는 미안함까지. 택배 상자를 여는 기분은 유쾌하지 않았다.



그런데 순간 내가 참 편협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에게 필요하지 않다고 해서 남편에게도 필요하지 않은가? 내가 우려하는 것들을 남편도 늘 같이 우려해야 하는가? 우린 다른데? 그리고 나만 옳은가?

결국 다시 태도에 관한 생각에 닿았다. 소비가 미덕이고 소비 수준이 삶의 질과 같다고 여기며 자라고 살았다. 그렇게 늘 더 갖기 위해, 소비를 쫓아 살아왔다. 그건 나도 남편도 마찬가지다. 하지만 상황은 늘 변하고 태도도 가치도 각자의 속도에 맞춰 변한다. 그건 남편과 나의 변화 속도도 마찬가지다. 지금과 다른 별개의 존재로 살아간다면 속도 차이야 별 문제가 되지 않았겠지만 우리는 한 집에 사는 공동운명체다. 서로에게 영향을 주고받는다. 다름과 각자의 속도를 존중해야 함은 너무나 당연하다. 나에게 중요하다고 상대에게 반드시 중요하지 않을 수 있고, 나에게 가치가 없다고 상대에게 무용하다고 할 수 없지 않은가. 당연한 이야기가 당연해지지 않을 때를 보면 존중하지 않을 때가 그렇다. 그동안 조금만 더 무해하려던 나의 변화는 남편에게 영향을 주었고, 남편을 통해 나 또한 존중의 필요를 배우며 영향을 받았다. 다만 서로에겐 변화의 속도 차이는 있었다. 그 차이를 인정할 때 가족이라는 공동체 안에서 우리 모두에게 유익한 가치를 오랫동안 지켜갈 수 있다는 걸 알았다.



환경과의 조화로운 삶을 그리면서 그 환경 안에 함께하는 가까운 사람들과의 조화로운 삶을 우선하지 않는다면 참 자가당착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필요한 가치와 변화도 일방이 아니라 함께 누리고 해 나갈 때 지켜질 테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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