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흔일곱에 문상을 다녀오면

by 밀품

26.2.8


며칠 전 대학동아리 선배의 부친상으로 문상을 다녀왔다. 활동하던 동아리는 농구동아리였다. 스포츠는 즐기지도 않고 재미도 몰라 룰이고 뭐고 잘 알지도 못하던 나는 어쩌다가 농구동아리를 가입하게 되었는데 결국 이제껏 대학생활이 남긴 거라곤 동아리 동기와 선후배들이다.


어쩜 인생은 이럴까. 존경하는 법륜스님은 늘 좋고 나쁨이 따로 있지 않다고 하셨는데 이런 앎에서 그 말씀을 내가 흡수했구나 할때가 있다. 그리고 이렇게 나이가 먹음에 나는 행복하다. 마흔일곱쯤 살아와보니 그렇다, 이건 살아봐야 아는 게 아닌가 싶은 거다. 지금 당장 이 무엇이 즐거움이기도, 아픔이기도, 귀찮음이기도, 하등에 쓸모없기도, 밉기도, 원망스럽기도, 사랑하기도 하지만 시간이 지난 후엔 좋은 추억이기는 해도 마음은 그렇지 않기도, 되려 이제야 귀찮은 인연이 되기도, 이제야 좋은 인연으로 여겨지기도 한다. 알 수가 없다. 그래서 일히일비 할 게 없는 것도 인생사 시행착오가 주는 값진 깨달음인 것 같다. 이걸 알아져서 좋다는 건 감사할 줄 알아진다는 것이다. 지금 감사하다는 마음으로 살아갈 수 있다는 것은 누가 뭐래도 지금 나를 사랑하고 있다는 반증이라고 나는 확신한다.


어쨌든 나는 남자동기애들과 선후배들이 드글거리는 농구동아리 활동을 했다. 문상 이 날도 부고에 하나둘 서로 연락을 해가며 언제 오는지 확인을 했다. 시간을 대략 맞춘 후 출발을 기다리는데 동기 녀석이 전화를 했다. 동기 같은 한 살 선배와 동행해 장례식장을 오는 길이며 차가 강남 쪽에서 밀려 그냥저냥 전화를 한 모양이다. 대화랄게 내용이 없다.

"나 눈이 안 보여, 노화래"

"눈만 안 보여?"

"미친 거야!!?"

뭐 대충 이런 별거 아닌데 웃어 죽는 딱 이십 때 그때 같다. 이제 둘이나 되는 자녀들이 중고등학교를 다니는 가장들이 말하는 투며 구사 수준이 스무 살 딱 그 때다. 목소리는 제일 늦게 늙는다고 하더니 어쩜 핸드폰을 통해 들리는 웃음소리와 목소리만 들으면 나도 스무 살로 돌아간 것 같았다.



상주인 선배는 나보다 12살이 많은 대선배다. 하물며 캠퍼스는 같이 밟지도 않았다. 어느 날 홈커밍데이에서 말도 못 붙이게 나이 많은 선배들이 우르르 오던 날, 그렇게 만났고, 나는 살면서 또 선배들 이름을 까먹고 어쩌다 만나면 동기에게 슬쩍 물어 이름을 물어보곤 하며 기억과 상실을 반복했다. 그런데 이 선배들의 이름이 잊지 않은 때가 된 것은 학교졸업을 한 후 초반에 이삼 년 연말 오비모임에 나갔다. 그때도 나는 선배들이 너무 어려웠다. 어떻게 대화에 끼어야 할지 모르겠었고, 좋으면서도 불편했다. 그렇게 바쁘게 살아가며 잊고 살다가 밥집을 오픈하면서 생각지도 않은 선배들의 축하방문이 몇 번 있었다. 난감하고 당황스러울 지경이었다. 선배들이 내 이름을 기억하고 있는게 이상했다. 오랜만이라는 말로는 도저히 걸맞지 않을 만큼 오랜만에 만난 선배들의 얼굴은 늙어있었다. 그렇게 시간이 지나 만났지만 어색한 나보다 선배들을 뭔가 능숙했다. 마치 나는 사회초년생 같았고 선배들은 누가 뭐래도 프로 사회인이었다. 일하며 바쁜 중에 얼굴을 잊었을 법한 후배의 가게오픈을 축하해 주러 오다니. 당황스러웠지만 어떻게 고맙지 않을 수가 있겠나. 황송했다. 이후 그 선배들의 부모님들이 두 분 돌아가시고 문상을 가고 동기들과 선후배를 만났다. 그러고 나면 또 각자 바쁘게 살며 딱히 만날 날없이 그렇게 살아갔다.



며칠 전 문상을 가는 밤길에 그런 생각이 들었다. 이제 나는 까마득한 후배가 아니고 선배들은 범접하기 힘든 선배가 아니고 누구 나이가 많다 적다 할 거 없이 이젠 서로의 경조사를 챙기는 게 기꺼운 그런 사이가 되었구나. 앞으론 아마도 어느 선배아들의 결혼식에, 부모님의 장례식에, 동기딸의 결혼식과 부모님의 장례식에서 그렇게 우린 만나 자리를 채우고 위로하고 시간을 추억하게 될 사이가 되었구나. 감사했다.


장례식장에는 이미 선후배 동기들이 도착해 있고 나는 고인에게 인사를 드리고 자리에 합석했다. 그러자 서로 장난기가 발동했다. 한껏 목소리가 높아지고 서로 갈구기 대결을 한다. 너나 할 것이 없다.

그러다가 "얘네 옛날이랑 똑같아"라고 말하자, 선배가 말했다.

"너도 아까 들어올 때 얼굴하고 지금 달라 ㅎㅎㅎ"

그제야 알았다. 나도 까불던 20년 전으로 돌아갔구나.



그리고 모두 헤어져 차로 돌아와 적막 안으로 들어온 순간 아직 남은 나의 웃음기를 느끼며 '즐거웠구나'알았다. 혼자 차분해지자 차분하지 않았던 심장이 더 크게 느껴졌다. 이 순간에도 잠깐 짠하게 감사했다. 즐거운 것은 내가 컨트롤할 수 없는 자율신경의 작용이지 않나. 알아서 절로 즐거워하던 내가 아주 정확히 나에게 인지되었다. 지금의 머릿속에 이십 대를 잠식하는 우울 같은 것이 옅어지는 기분도 들었다. 그 시간을 통해 나는 이 사람들을 내 옆에 남겼구나. 감사했다. 시간에 감사했을까, 사람들에 감사했을까, 감사한 정체가 잡히지는 않지만 내 자율신경은 즐거웠고 감사하다고 나를 짠하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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