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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밀품 Jul 13. 2022

이제 그만 후벼 파기로 했다

22.07.12



요즘 자주 입는 바지 주머니 한 구석에 아주 작은 구멍이 난 걸 알았습니다. 그걸 어떻게 알았냐면 어쩌다 왼손이 주머니 속을 배회하다 새끼손가락이 그만 그 구멍을 감지하고 만 것입니다. 처음엔 구멍인가 아닌가 헷갈렸고 그러길래 이 바지를 입을 때면 자꾸 새끼손가락이 후벼 파며 구멍인지를 확인한 것입니다. 그러다가 결국 주머니의 기능을 상실하진 않을 정도이지만 명백한 구멍이 나고 말았습니다.




아무 생각 없이 무심히 반복하다 보면 습관이 됩니다. 문제는 ‘아무 생각 없이’입니다. 더 정확히 말하면 ‘그러다 어떤 결과를 초래할 줄 모르고 아무 생각 없이’입니다.

주머니의 작은 구멍을 후벼 파기 시작할 때는 별일이 없습니다. 그렇게 반복하다 보면 결국 구멍이 커질 겁니다. 동전 같은 것이 빠지거나 외출할    몸처럼 붙어다니는 에어팟이 사라질지 모릅니다. 자명합니다. 그런데  멈추지 못할까.

구멍 나면 꿰매면 되니까, 구멍이 날 줄 지금은 모르니까.

후자라면 뾰족한 수가 없습니다. 그냥 구멍이 난 후 대책을 강구하면 될 일입니다. 전자라면 이제 그만 후벼 파기를 멈출 수 있습니다. 뭔가를 잃기 전에. 손해를 보기전에.




오늘 신호등 앞에 멈춰서 있는데 나도 모르게 새끼손가락을 주머니 구멍에 쑤셔 넣고 구멍을 확인하고 있습니다. 아무 생각없이. 그러다 문득 내가 멈추지 않고 얼마나 숫하게 후벼 파고 살았나 하는 순간 멈췄습니다. 새끼손가락이 아니라 검지 손가락이 통과할 만큼 구멍이 커지면 , 기어코 에어팟이 구멍을 통해 자취를 감추고서야 .


‘나는 얼마나 후벼 파고 있었을까’



이미 오래되어 굳어버린 나의 생각과 말과 행동에는 노력은 하지만 후비는 줄 모르고 여전히 반복하는 게 많을 겁니다. 오늘을 계기로 조금 일찍 알아보려고 합니다. 바지 주머니 속 구멍처럼 아직 구태 습관은 아니지만 굳이 시간을 두어 구태에 뭔가를 더하려고 할 때 조금 일찍 알아보려고 합니다. 오늘은 그렇게 후비기를 멈췄고 주머니의 구멍은 더 이상은 커지지 않을 겁니다. 구멍만의 일은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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