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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밀품 Jul 26. 2022

전염

22.07.22



집 앞산에 등산을 갔다 하산길에 키도 옷도 머리 모양도 같은 여덟 살쯤 되어 보이는 두 남자아이를 만났습니다. 무더위에 얼굴은 불그레 끓어오르고 머리가 땀에 젖어 있지만 두 아이의 관심은 핸드폰 게임이었습니다. 가다 멈추고 가다 멈추고를 반복하면서 아이들은 오로지 게임에 몰두했습니다. 하산길인데 저러다 넘어지지나 않을까 염려되어 어른은 없나 살펴보니 떨어져 앞질러 아빠가 있었습니다. 중간중간 아빠는 "가자!" 라며 좀체 하산길에 진도가 나가지 않는 두 아이를 부추기고 있었습니다. 내가 보기엔 아이들을 세심히 챙기거나 눈에 넣어도 안 아픈 자식이라는 시그널을 특별히 쏘아 보네는 아들바보는 아닌 듯 적당히 거리를 두고 간섭하지 않는 아빠로 보였습니다. 계단길도 뛰어내려 가는 체력의 어린아이들이었지만 게임을 하는 통에 산을 내려가는 속도가 얼추 나와 비슷했습니다. 그래서 중간중간 아이들 뒤통수를 확인하며 내려갔습니다.




등산로 초입에는 신발과 몸에 묻은 산 먼지와 흙을 털어 내는 바람 호수가 설치되어있습니다. 나보다 열 걸음쯤 일찍 도착한 아이들이 바람 호수로 바람을 털어 내고 있었습니다. 도와주는 사람은 아빠가 아닌 중년의 등산객 아주머니. 이미 자식 키우는데 도 텄다는 듯 아이들 머리부터 발끝까지 돌려가면 탈탈탈 털어내고 있었습니다. 그 손길이 터프하면서도 다정해서 내심 흐뭇해하는데 멀찍이 떨어져 지켜보던 아빠의 얼굴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글쎄, 아빠가 소리만 내지 않았지 찢어지게 웃고 있는 게 아닌가. 올라간 입꼬리와 광대, 따라 구불구불 지어진 눈주름이 소리 내 웃고 있었습니다. 아빠의 무음의 웃음소리를 나는 들을 수 있었습니다.

'아빠가 웃는다'




배꼽을 잡고 웃으면 웃는 줄 알고 웃습니다. 자주는 아니지만 웃는 걸 보고 웃을 때가 있습니다. 그것도 소리 없이. 그땐 내가 웃는지 모르고 웃습니다. 이건 좀 여운이 깁니다. 전자는 머리가 웃는 것 같아서 웃음을 멈추면 마치 전원이 오프 되는 것 같습니다. 그런데 후자는 이게 뭐랄까. 왜 웃어지는지 그건 중요하지 않습니다. 그냥 웃는 사람의 마음이 통으로 가슴팍에 안기는 것 같습니다. 산을 내려오는 내내 회색 표정의 아빠 얼굴에 꽃이 만발하고  아이들을 향한 사랑의 향기가 풀풀 천리만리 진동하고 있었습니다. 아빠 얼굴을 보는 순간 나는 고스란히 꽃밭을 보고 향기를 맡는 기분이었습니다. 그러면서 나도 활짝 웃고 있다는 걸 부자를 지나치고서야 알았습니다. 단지 얼굴 근육이 들썩인 게 아니었습니다. 마음이 팔랑팔랑 펄럭였습니다. 이런 전염이라면 두 팔 벌려 대환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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