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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밀품 Jul 29. 2022

도토리 낙과

22.07.29


오늘 집 앞 산에 올라가는 길에 여물지 않은 도토리가 떨어져 있었습니다. 등산길 초입에 볼 때는 아까운 마음에 왜 떨어졌을까 안타까웠습니다.

'익으면 다람쥐 밥인데...'




그렇게 산을 오르는데 떨어진 도토리가 수두룩합니다. 산정상가는 길 내내 보았으니 볼수록 아까운 마음과 찌뿌둥한 마음이 들었습니다. 아까운 마음은 떨어진 도토리가 너무나 이쁘게 생겨서 그대로 나무에서 익으면 좋겠다는 마음에서였습니다. 그리고 찌뿌둥한 마음은 떨어진 도토리가 어쩐지 사람에 의해서인 것 같아서입니다. 마뜩한 증거는 없지만 등산로를 따라 내 눈에 보이는 곳에 줄줄이 떨어져 있으니 그리 짐작이 되었던 겁니다.

'누가 이런 짓을 했을까, 아님 새가 그런 건가'




그렇게 산정산을 찍고 내려오는데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도토리가 알아서 떨어질 있지!'

부모님의 포도농장에는 봄에 포도알솎기를 합니다. 사람 손으로 일일이 쌀알만 한 포도알들을 적당히 간격을 두고 솎아주어야 클자리를 확보하게 됩니다. 그렇지 않으면 포도알들이 각자의 부피를 늘리다가 모두 터져버리고 말 테니까요. 열린 모든 과실이 똑같이 잘 자랄 수 없습니다. 영양을 충분히 나눠 섭취하고 자라기 위해 과실수를 조절하는 것입니다. 사람의 필요로 길러지는 과수들은 그렇게 사람 손에 의해 과실수를 적정한 수준에서 관리되는데 도토리나무는 다를까 싶은 생각이 들었던 겁니다. 다만 야생의 도토리나무는 사람 손을 빌리지 않고 어떤 방법으로든 알아서 도토리 개체수를 관리하는 게 아닐까.




이 숲의 영양상태에서 모든 도토리가 가을까지 살아남을 수 없음을 도토리나무들은 알고 있을 것 같습니다. 이 숲에 사는 동안 나무들이 수집한 나름의 빅데이터를 가지고 최대한 많은 도토리를 가을까지 남기기 위해 나는 알길 없는 도토리나무들의 셀프 열매솎기가 감행된 것이라고 이해했습니다. 도토리나무가 생존하는 수인 것입니다. 그렇지 않고서야 이렇게 많은 도토리가 떨어질 수 있을까. 뭐 떨어진 도토리의 진실은 확인할 수 없지만 자연의 섭리가 이 산의 도토리나무라고 예외일까. 나는 그렇게 믿기로 했습니다.




그렇게 하산길에 다시 마주친 도토리열매들은 산을 오르며 마주 칠 때와는 달랐습니다. 안타까울 것도 찌뿌둥할 것도 없었습니다. 당연한 거니까. 다만 산을 오를 땐 떨어진 도토리만 쳐다봤는데 내려올 땐 도토리나무도 한 번씩 올려다보게 되었습니다.

'대단하구나, 혼자 힘으로'   

당연한 걸 모르고는 짐작해서 괜한 마음의 불편을 짊어질 때가 많습니다. 나만의 생각인데 말입니다. 최소한 내가 아는 게 전부가 아닐지 모른다는 여지의 문을 느슨하게 열어둬야겠습니다. 그리고 덜 여문 도토리는 진짜 말이지 줍고 싶도록 예쁘다는 걸 오늘 덤으로 알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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