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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밀품 Aug 18. 2022

바질을 받아들이는 법

22.08.19


몇 주 전 동생네와 시골 부모님 집에서 모였을 때다. 동생네는 열 살 남매 쌍둥이가 있다. 한창 시골 밭에는 토마토며 여름 채소들이 먹기 바쁘게 달리는 시기였고 왕성한 식욕에 어른만큼 먹고 크는 조카들에게 갓 수확한 토마토로 파스타를 해주고 싶었다. 그래서 전날 파스타, 텃밭 바질과 타임, 치즈, 올리브 오일, 후추를 챙겨두었다.




올케에 따르면 남매 중에 여자아이는 자기 방이 주방 옆이라 행복하다고 했단다. 맛있는 냄새를 맡을 수 있기 때문이라는데. 이 얼마나 아이답게 사랑스운 자기표현인가. 다른 여러 것에도 흥미를 느끼는 것 같지만 이 표현만큼은 음식에 애정이 많은 아이인 게 분명했다. 분명 토마토파스타도 마음에 들어 할 것 같아 나는 설레었다.  그렇게 아이는 토마토 밭에도, 주방에도 졸레졸레 따라붙으며 호기심 짙은 눈빛을 내보였다. 주방이 신나는 나는 아이가 그 흥을 공감하는 것이 즐거웠다. 칼과 불이 아직은 위험하여 같이 할 수 있는 것이 별로 없었지만 그것들이 안전해지는 언젠가가 되면 그때도 너에게 주방이 흥미로울까? 그랬으면 좋겠다.




밭에서 갓 딴 토마토를 숭덩숭덩 썰어 올리브 오일을 듬뿍 부어 볶았다. 평소보다 양도 많으니 손길은 더욱 터프해지고 과감해지고 이미 냄새도 여느 때보다 진했다. 이어 허브들이 투입되고 소금과 간장으로 간을 더하고 뭉근한 시간이 합세하여 신선하게 입체감을 업은 토마토소스가 완성되었다.




아이에게 작은 스푼에 덜어 맛을 보게 했다.

'어때?'

'뜨거운데 맛있어요!'

절로 흐뭇, 후후후.




챙겨간 생바질을 넣어볼까 할 때다. 혹시 아이에게 향이 강할지 몰라 향을 맡아보라며 먹을 수 있을지를 물었다. 고개를 갸우뚱한다. 그러자 올케가 나섰다.

' 그거 예전에 화분에서 키웠던 바질이야 '

' 네? 그거라고요? 그럼 먹을 수 있어요 '

그리고는 썰어둔 생바질을 가져다 먹기까지 한다.




아이가 바질을 받아들이는 방법은 꽤나 인상적이었다. 아니, 방법보다도 받아들이는 시간이 더 그랬는지 모르겠다. 안 되는 것이 되고, 어려운 것이 쉬운 게 되는 데는 좋은 기억을 떠올리는데 필요한 에너지와 시간만 있으면 되었다. 맛이 있고 없음이 기억으로 뒤집힐 수 있었다. 아이의 말랑한 수용력은 어느 면에서는 어른보다 허들이 낮았고 어렵지 않았다. 어떤 영역이라고 구체적이긴 어렵지만 내가 안 되는 영역임에는 틀림없었다.

 



되건 안되건 그렇게 시작하여 쭈욱 성질과 성향으로 자리 잡은 나는 어른이 되었다. 바꾸려면 성찰하고 애쓰는 시간이 필요한 어른이 되었다. 나에겐 그렇게 아이보다 오랜 시간이 쌓였다. 아이에게도 지금 쌓이고 있는 시간을 나는 흐뭇하게 응원한다. 다만 바질을 받아들이 듯 어려울 때 더듬어보면 받아들이기 쉬워지는 그런 기억들로 채워지길 욕심같지만 바래본다. 이날은 아이와 종알거리는 시간의 즐거움도, 맛을 공유하는 설렘도, 아이에 대한 번뜩이는 발견도, 내가 어른이라는 확인도 모두 기억하고 싶은 나의 한 때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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