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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밀품 Sep 24. 2022

부득이

22.08.31


결혼 15년 차. 이제는 두 사람이 서로 발걸음을 맞추려는 노력을 크게 하지 않는다. 요즘은 차로 이동하는 경우가 많아서인지 좀체 둘이 걸을 일이 생기지 않는다. 그래도 종종 보통은 외식을 하러 집 주위를 걸을 때면 남편은 나보다 앞서 걷는다. 남편은 발걸음이 나보다 빠르고 보폭이 넓은 편이며 앞만 보는 경향이, 나는 나이가 들수록 걸음 속도는 늦어지고 주로 주위를 두리번거리는 경향이 있다. 한 마디로 우린 서로 다르다.




결혼 후 오랫동안은 나란히 걸었는데, 아마도 서로 걸음걸이를 맞추었을 거다. 남편의 걸음이 갑자기 빨라지고 나는 난데없이 늦어지진 않았을 테니까. 나의 생각은 아마도 남편이 나의 속도에 맞추었겠지 생각한다. 왜냐면 쫓아가기보단 기다리기가 더 수월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나는 그렇게 생각했다. 그래서 이제서는 앞서 걷는 남편의 뒷모습이 섭섭했다. 나는 뛰어야 하고 남편은 조금만 느긋해지면 되는 거라고. 나는 부득이하고 남편은 당연하다고. 부부가 서로 발걸음을 맞추어야 정상이라면 나에겐 이렇게 면죄부를 스스로 주었다.




그러다 어느 날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발걸음 맞추지 못하는 건 남편만이 아니라 우리 둘다라는 걸. 나도 남편의 발걸음에 맞추지 못했다. 이유야 어찌 되었건 이게 사실이었다. 사실은 뒷전이고 나의 입장만 편들고 있으니 남편만 잘 못한 사람이 되었다. 앞서 걸으면 종종 멈춰 뒤를 돌아보면 빨리오라고 손짓하던 남편에게 기다리는 게 더 어려울 수 있다. 누가 쉽데, 기다리는 게.




사실을 직시하고 나니 누가 억울할 일이 아니다. 나에게만 부득이라는 펜스를 쳐줄 일이 아니었다. 내가 부득이하다면 남편에게도 그렇다. 그리고는 누가 부부는 나란히 걸어야 한다는 정답을 심어주었을까 하는데 닿았다. 나란히 걷지 않아도 문제가 없다. 서로 다른 취향과 성향을 살면 살수록 더 확연히 알게 되는 부부는 서로에게 맞추기도 하지만 존중의 마음과 자세가 선행되어야 함을 시간을 더해 살아갈수록 배운다. 그래야 다른 두 사람이 오래 함께 할 수 있음을 알게 된 건, 그렇다, 살아왔기 때문이다.




결혼은 맞추기를 요구하고 같이하기를 당연해하기보다 우리가 서로 다름이 아무 문제가 없다는 데 그 마침표를 찍을 수 있다는 걸 알았다. 남편이 앞서 걸어도 괜찮다. 그 뒷모습이 섭섭하지 않아 졌다. 그리고 내가 할 수 있으면 가끔은 뛰기도 한다. 그게 나의 인생과 우리 부부의 삶에 훨씬 이로우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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