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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밀품 Dec 09. 2022

품 안의 고양이 놓치지 않기

22.12.09


나는 이제 막 박웅현 작가의 <문장과 순간>을 펼쳤고 첫 번째 글을 읽는 중이다. 올여름 읽기를 시도했지만 결국 완독을 하지는 못했지만 놀라운 경험을 안겨준 카뮈가 등장을 했고, 카뮈와 비슷한 시기에 알게 되어 독서목록에서나 종종 존재를 알아채고만 있는 김화영 작가의 <행복의 충격>도 잠시 등장한다. 첫 번째 글의 마지막 한 페이지 남기고 노트북을 열어 글을 쓰는 이유는 내가 항불안우울제를 먹고 있기 때문이다. 




나는 오늘 아침에도 어제의 무탈함에 감사기도를 하고 더 이상 바랄 게 없음을 스스로에게 처방하고 욕심 많은 스스로를 인정하며 오늘 지금 이 순간에 깨어 살겠다는 오늘의 다짐을 하였건만, 정작 그렇지 못했기에 약을 먹고 있음을 알고 있다. 즉 9년간의 자가치료가 효과가 좋았음과 동시에 고집과 욕심이 켜켜이 쌓인 9년보다 더 긴 시간의 퇴적층은 쉽게 부서지지 않음을 증명한 것이다. 




정신의학과를 찾은 것은 더 이상 나의 불면증이 내가 어찌할 수 없는 상태이구나를 인지했기 때문이었다.  한두 달의 일도 아니고 어림잡아 4,5년은 서서히 불면증을 쌓아 온 것 같다. 처음엔 불면증은 아니었을 텐데, 그냥 잠이 안 들어 아주 늦게 잠들 뿐이었을 것인데 어느새 나는 그걸 불면증이라고 부르고 있었다. 일을 할 때 불면증 다음날의 여파가 제일 싫었다. 사실 하루를 잘 못 자면 2,3일은 영향을 받으니 잠자리에 들 때 오늘 밤은 무사할지 느낌적인 느낌에 나날이 민감해졌다. 여하튼 이번에 정신의학과에서 자율신경계 검사며 스트레스 피로도 검사며 한 시간가량의 선택지 검사를 하고 보니 불안이 있었다. 경도의 우울도. 일단 수면을 정상화시키는걸 우선으로 선생님은 처방을 해주셨고 일주일마다 부작용을 감안하여 약을 조정해갔다. 그리고 4주차에 접어든 이번 주에는 안정기에 들었간듯하다. 입맛이라는 게 그야말로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떨어져 버린 것과 변비가 생긴 것 말고는 부작용들이 없어졌다. 목표에 두었던 수면도 긍정적인 효과를 보는 중이다. 무력감을 동반한 경도의 우울도 좋아질 거라 선생님은 웃으며 말씀하셨다. 




병원을 다니기 시작하면서 나는 사실 편안해졌다. 무자비하게 들고일어나는 생각들이 아픈 거라는 걸 알았고 약의 도움으로 무자비한 그것들이 사그라든다는 걸 알았다. 신기했다. 긴장과 함께 한 몸같이 지내온 신체적 허약도 어쩌면 실마리가 풀리지 모르겠다 기대도 된다. 여하튼 나는 요즘 항불안우울제를 먹고 있다. 늘 지금 서있는 여기의 것 말고 이미 지나간 과거와 오지도 않은 미래를 매개로 불안하고 걱정하고 욕심내고 불만족했다. 나의 기저에 그런 것이 끈적끈적하게 뽀글거리며 끓고 흐르며 차고 있었던 거다. 오래전에 그걸 알았고 약의 도움 없이 수행이라는 걸 통해 나의 기저는 많이도 맑아졌고 끈적이는 것의 수위도 낮아졌지만, 그랬다. 갈 길은 남았고 나는 약간의 약의 도움이 필요한 무언가가 남아있었던 거다. 나는 이걸 알아서 편안하고 다행이라고 진심으로 생각한다. 




<이방인>의 문장들은 서로 의지하지 않는다.

삶이 순간들의 총합이라는 것을 입증하듯 각 문장은 분리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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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것은 곧 '도스토예프스키보다 품 안의 고양이가 더 중요하다"라고 했던 장 그르니에를 떠올리게 하며,

"중요한 것은 오늘 이 순간에 일어나는 일"이라고 했던 카잔차키스의 '조르바'를 기억하게 한다.

                                                                                                      박웅현 <문장과 순간> 中




내가 가진 내일의 불안과 오늘의 불만족을 인정한다. 동시에 지금 이 글을 쓰고 있는 시간은 행복이고 소중하다는 것을 만끽하고 있다. 무슨 의미가 있냐고 묻지 않는다. 그냥 쓰고 싶은 걸 쓰고 있는 이 시간이면 되었다. 지금만큼은 이게 이 책을 읽는 것보다 중요한 품 안의 고양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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