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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밀품 Feb 27. 2023

엄마이야기

23.02.27



내가 유년이던 시절, 금전적으로는 전적으로 부모님에게 의지해야만 하던 시절, 그래서 가정경제가 곧 나의 주머니경제 수준이 되던 시절, 그렇게 '돈'이라는 존재가 나에게 나스럽게 각인되던 시절. 90년대 그 시절에 우리네 아빠들은 많이들 한 번쯤 사업에 망했고 집이 경매에 넘어가 봤고 사기를 당했고 재기를 시도했으나 일어나지 못했고 그래서 돌아보면 괜히 (나는) 눈물 머금는 시절을 보냈다. 나이를 먹으니 종종 떠오르는 건 그 시절의 엄마다. 그리고 지극히 '나에게' 다행이라고 여겨지는 건 그렇게 떠오른 엄마는 웃고 있다는 것이다. 




엄마는 한 동안 아니 꽤 오랫동안 양말을 떼어다가 파셨다. 집과 내가 다니던 고등학교 가는 길 중간에 큰 재래시장이 있었는데 그 한 구석에서 팔기도 하셨고, 버스정류장 앞에서 팔기도 하셨다. 엄마가 이 일만 하셨던 건 아니지만 돈을 벌어오는 엄마의 이야기를 조금은 상세히 알고 있고, 엄마의 표정까지 기억하는 때가 이 때다. 양말가공공장을 운영하던 내내 아빠와 엄마는 함께 오래 일을 했던 터라 엄마에게 양말은 친숙하고 돈을 벌기 위해 무엇을 시도해 볼 만한 그런 것이었다. 그렇게 엄마는 양말을 떼와 작은 자리를 하나 깔고 가지런히 양말을 정돈해 두고 팔았다. 기억은 흐릿하지만 대부분은 하루종일 몇만 원을 팔았고 십만 원쯤 매상을 올린 날도 있었던 것 같다. 




지금은 어려운 시절 돈을 벌기 위한 엄마 나름의 최선(이렇게밖에 표현할 수 없는 한계를 이 순간 나의 엄마라서 감사하다는 이 마음으로 대신한다.)으로 기억한다. 아련하고 가슴 지릿한 기억이 아니라 지금의 내가 되는 토양이자 자랑이자 감사의 심벌이다. 가슴아린 기억일 때도 있었다. 그런데 나이를 보태갈수록 이시절의 엄마는 양말을 팔고 들어오며 웃었던 표정으로 기억된다. 얼마 팔지 못한 날도 아쉬운 말과 함께 웃었고, 평소보다 더 판 날도 신나는 말과 함께 웃었다. 




엄마는 나에게 삶을 주셨고 웃는 얼굴의 엄마를 남겨주었다. 물론 엄마를 포함한 가족이라는 이름으로 웃을 수 없는 기억들도 차고 넘치지만 모두 지금은 어쩔 도리가 없는 기억이다. 그리고 기분이고 느낌이다. 하지만 상황은 나에게서 세월과 함께 새롭게 해석되고 변한다. 나도 나이를 먹으니까 말이다. 나에게 엄마는 표현하자면 아직 할 말이 차고 넘치지만 아주 조금은 이렇게 단순해져 가는 것이 좋다. 그저 감사라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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