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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밀품 Mar 31. 2023

잘 보내는 사람

23.03.31


며칠 전에 멀리 함평으로 문상을 다녀왔다. 나와는 사이가 찐한 그녀의 아버님이 돌아가셨다. 공부가 짧으셨고 어린 시절 고생이 크셨고 그리고 평생 농부로 아버지로 사시다 홀가분하게 하늘로 날아가셨구나 하는 것은 그녀의 몇 마디에 알 수 있었다. 아버지의 고되셨을 삶이야 내가 어찌 다 알 수 있으랴. 다만 딸이자 나에겐 찐한 그녀의 성품과 슬프기는커녕 유쾌한 그녀의 말들은 아버지가 남기신 유산임이 분명했다. 아버지도 미련 없이, 자식도 후회 없이 그런 서로의 마지막을 미리 준비하고 있었음을 알았다. 




평소 이야기를 들어 또 sns로 뵌 적이 있어 본래도 그러신 줄 알았지만 작년 암수술로 깡 마를 데로 마르셨지만 딴딴하셨던 아버지는 자식들에게 주실 것들을 미리 나눠주시고, 장례비까지 따로 준비해놓으셨다 한다. 홀로 가는 마지막길을 뚜벅뚜벅 미련 없이 부끄럽지 않게 걸어가시는 아버님이 그러졌다. '잘 살고 간다' 그런 아버지가 그러졌다. 아버지는 이렇게 말씀하셨다 한다. 

"평생 남 손해 끼치지 않았어"

"그러셨어, 그런 분이셨어"

딸의 입을 통해 나는 딸이 아버지에 대한 단단한 자긍을 느꼈다. 그래서 저리도 유쾌할 수 있구나. 잘 보내는 사람이구나. 




문상중에 나도 알고 있는 지인들이 속속 도착하면서 문상객끼리도 인사가 이어졌고, 그녀는 이 테이블 저 테이블을 종횡무진하며 손님들을 살뜰히 챙겼다. 평소의 긍정과 호탕함 그대로 손님들을 편안하게 해주고 있었다. 본인을 이런 시골에서 자란 시골촌년이라고 말하는 그녀는 부끄러워하는 말이 아니다. 수년 전 자기 인생을 기꺼이 짊어지고 앞에서 끌어당겨 사는 참으로 적극적인 태도가 나에겐 큰 귀감이 되는 사람이다. 누구 탓을 하지 않았다. 후천적인 그녀만의 성품도 그녀의 것이겠지만 아버지, 어머니의 유산도 분명할 것이다. 잘 보내는 사람, 장례를 치르는 며칠 사이 되는 건 아닐 테다. 그녀는 그렇게 나에게 또 잘 보내는 사람이 되려면 어떻게 살아야 하나, 나를 보는 거울이 되어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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