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도, 딸도 처음이라서
연출: 이민우
각본: 민선애
공개: 2023.07.17
장르: 가족, 코미디, 드라마, 스릴러
등급: 15세 이상 관람가
국가: 한국
회차: 12부작
철부지 엄마와 쿨한 딸의 ‘남남’ 같은 대환장 한 집 살이와 그녀들의 썸과 사랑을 그린 드라마
동명의 웹툰이 원작인 드라마 <남남>. 방영될 때 재미있다고 입소문을 탔던 작품으로 기억한다. 그래서 나중에 몰아봐야지 하며 미뤄놨었는데 최근에 넷플릭스를 둘러보다 발견하고 시청하게 되었다. 솔직히 초반부는 코드가 안 맞는 부분이 있어서 끝까지 볼 수 있을까 싶었다. 그런데 계속 보다 보니 엄마와 딸의 이야기에 빠져들게 되었다. 결코 평범하지만은 않은 엄마와 딸의 관계성을 코믹하게 그려낸 드라마였다. 유쾌함 속에 감동도 담겨 있었다. 누군가의 딸, 누군가의 엄마라면 더 이입해서 볼 수 있는 작품이라 생각한다. 나 역시 <남남>을 보는 동안 딸의 입장에서 우리 엄마와의 관계를 떠올려 보게 되었다.
은미는 고등학생 때 진희를 낳았다. 은미가 임신했을 때 진희의 아빠이자 은미의 첫사랑 진홍은 부모님에 의해 이사를 가게 되었고, 그렇게 은미는 혼자 진희를 낳아 길렀다. 친구 미정과 미정의 엄마로부터 도움을 받아 어렵게 진희를 키워낸 것이다. 그 덕분에 진희는 번듯한 경찰이 되었다. 그리고 불의를 보면 가만히 있지 못하는 은미의 성격을 그대로 물려받았다. 차이점이 있다면 은미에게는 여전히 철부지 같은 면이 남아있다는 거다. 이렇게 닮은 듯 다른 두 사람이다 보니 티격태격할 때가 많은데 자세히 들여다보면 서로 얼마나 의지하고 살아왔을지 싶다. 은미의 경우 고된 현실에 맞서기 위해 오히려 철없는 모습을 유지하게 된 걸지도 모르겠다. 진희 역시 같은 이유에서 빨리 철들 수밖에 없었던 거겠지. 겉으로는 투닥거려도 누구보다 서로를 위하는 은미와 진희이다.
진희는 불 같은 성격 때문에 상사로부터 매번 주의를 듣기도, 여러 고충을 엮기도 한다. 마찬가지로 은미도 불의를 참지 못해 범죄자로부터 한 여성을 구해주기까지 한다. 그런데 그 일이 더 큰 문제를 불러일으킨다. 결국 여성을 살해하는 데 성공한 범죄자가 은미에게 복수하기 위해 그녀를 다음 타깃으로 노리게 된 것이다. 이에 따라 마침 관할 지역으로 좌천된 진희가 은미를 보호하려 고군분투한다. 가족이 살인자에게 위협받는 상황에서 진희는 어떤 마음이었을까. 진희에게 은미는 하나뿐인 가족이었기 때문에 그 심정을 짐작조차 하기 어려웠다. 경찰이다 보니 다른 사람들보다는 사건에 대한 이해도가 높아 다행이라고 생각하면서도 한편으로는 더 불안했을 것 같다. 범인을 검거하기 위해 직접적으로 할 수 있는 일이 많은 건 맞지만, 은미가 얼마나 위험한 상황에 놓였는지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을 테니까 말이다.
범죄자에게 휘말린 것만으로도 충분히 머리가 아픈데 세상은 모녀를 가만 두질 않는다. 진희는 억울하게 좌천되고, 좌천된 곳에서 팀원들과 마찰을 겪는다. 또 자신의 친부와 그 집안 식구들까지 대면하게 된다. 은미 입장에서는 자신의 첫사랑을 다시 마주하게 된 것이다. 심지어는 은미가 친엄마처럼 믿고 따랐던, 진희가 할머니처럼 믿고 따랐던 미정의 엄마가 돌아가시는 일까지 겪게 된다. 드라마는 이러한 에피소드들을 재치 있게, 담담하게 풀어내었다. 그래서 별 거 아닌 일처럼 여겨지기도 했으나, 이 모든 일들이 현실이라고 생각하면 정신이 아득해질 것만 같았다. 내가 저 상황에 놓였다면 어디까지 버텨낼 수 있었을까. 이런 면에서 은미와 진희 모두 내면이 단단한 캐릭터 같다고 느꼈다.
이 와중에 모녀간의 소통도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을 때가 많다. 옆에 누가 있어도, 화해하러 간 여행에서도 끊임없이 다툰다. 서로를 사랑하는데 표현하는 방법을 잘 몰라서 자꾸만 부딪히는 둘이다. 은미는 철부지 같아도 속으로는 누구보다 진희를 먼저 챙긴다. 진희의 친부가 나타났을 때도 '네 딸 아니고 내 딸'이라며 선을 긋는다. 진희 역시 다른 것보다 엄마와 자신이 우선이라 여긴다. 누군가의 엄마가 된 것도, 누군가의 딸이 된 것도 처음이라 서툴러서 그러는 거겠지. 은미는 워낙 갑작스럽게 엄마가 되기도 했고, 둘을 둘러싼 외부 환경들도 그리 안정적이진 않았을 테니 모든 게 어려웠을 것이다. 각자가 가진 상처가 있음에도 서로를 배려해 속마음을 잘 털어놓지 않는다. 그런 둘의 모습이 답답할 때도 있었지만, 한편으로는 이해가 되었다. 또 나는 지금 부모님과 어떻게 지내고 있는지 생각해 보는 계기가 되기도 했다.
이와 관련해 드라마 속에서 인상 깊었던 부분이 있었다. 진희가 어렸을 때 은미는 비 오는 날 딸을 데리러 간 적이 한 번도 없다. 대신 일을 하던 중 잠깐 집에 들러 욕조에 따뜻한 물을 받아 놓는다. 비 맞고 온 딸이 몸을 녹일 수 있게 말이다. 사실 은미는 비 오는 날 우산이 없는 딸을 데리러 가야 한다는 걸 잘 몰랐던 것이다. 부모로서 서툴렀다는 점 때문일 수도 있고, 아버지에게 사랑 대신 학대를 받으며 자랐다는 점 때문일 수도 있다. 부모의 사랑을 충분히 받지 못했다 보니 딸에게 사랑을 줄 방법도 스스로 찾아가야 하지 않았을까. 이제는 반대로 비를 맞고 온 은미를 위해 욕조에 따뜻한 물을 받아 놓은 진희를 볼 수 있었는데 이 장면이 참 뭉클했다. 두 사람만의 방식으로 서로의 마음을 알아주고 위로해 주는 듯했다.
결과적으로 은미를 위협했던 살인자를 검거하는 데도 성공하지만, 그 과정에서 은미가 칼에 찔려 수술까지 하고 만다. 이러한 위기를 겪으며 은미와 진희는 전보다 성장하게 된다. 그러면서 생전 떨어져 본 적 없는 두 사람이 독립이라는 것에 대해 생각하는 시간을 갖는다. 진희는 홀로 해외에 나가 배낭여행을 하며 힐링을 해 보기로 결심하고, 은미도 자신이 먼저 진희를 놔줄 필요가 있겠다고 느낀다. 그렇게 진희는 배낭여행을 떠나고, 은미는 산티아고 순례길로 떠나며 드라마는 막을 내린다. 두 사람의 앞날이 기대되는 결말이었다. 내년에 시즌2가 나온다는 소식이 있던데 어떤 이야기가 펼쳐질지 궁금해지기도 했다. 살인 사건이 등장하다 보니 스릴러적인 요소도 포함되어 있지만, 엄마와 딸의 이야기에 초점이 맞춰져 일상물의 색채가 더 강하게 느껴진 작품이었다. 엄마와 딸의 관계뿐만 아니라 가족의 의미를 되새겨 볼 수 있다는 측면에서 한 번쯤 보기 좋은 드라마 <남남>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