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도 사람은 착해
연출: 로완 앳킨슨, 윌리엄 데이비스
각본: 로완 앳킨슨, 윌리엄 데이비스
공개: 2025.12.11
장르: 코미디
등급: 전체관람가
국가: 영국
회차: 4부작
크리스마스를 앞둔 시기, 런던의 고급 펜트하우스 관리 일을 맡은 실수 연발 허당 아빠. 그런데 이번엔 뜻밖의 일거리가 하나 더 늘었다. 바로 부모가 놓고 간 아기 돌보기!
크리스마스 분위기가 물씬 나는 드라마 <인간 vs 아기>. '어디서 들어본 제목인데'라고 느끼는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인간 vs 벌>의 후속작이기 때문이다. 이번에도 미스터빈으로 잘 알려진 배우 로완 앳킨슨이 주인공을 맡았다. 4부작임에도 총 2시간 정도의 길이로 부담 없이 시청할 수 있는 코미디 작품이다. 사실 가벼운 마음으로 보는 게 좋다. 마음을 내려놓고 본다면 웃음을 얻고, 진지하게 과몰입해서 본다면 웃음을 잃을 수 있다. <인간 vs 벌>을 봤다면 짐작했겠지만, 주인공의 답답한 일처리 과정에서 비롯된 웃음이 대부분이다 보니 그렇다. 일잘러들의 입장에서는 고구마를 왕창 먹은 듯한 느낌이 들지도 모르겠다. 이번 작품에서 아기가 등장하는 장면은 몇몇 부분을 제외하고는 CG와 AI를 활용하여 제작한 것이라고 하니 걱정은 잠시 접어두고 재밌게 즐겨보는 건 어떨까. 보다 보면 티가 나기도 한다.
주인공 트레버 빙리는 이혼 후 아내, 딸과 떨어져 홀로 생활한다. 학교 관리인인 그는 학생들의 크리스마스 연극 준비를 돕는다. 사실 오늘이 마지막 출근날이었는데 연극 진행 중 뜻밖의 전화를 받게 된다. 이전 직장이었던 하우스시터 디럭스의 새로운 모회사로부터 크리스마스 기간 동안 런던의 펜트하우스를 관리해 달라는 연락을 받은 것. 트레버는 높은 급여에 런던행을 결심하고 학교 문을 닫으려는데 연극에서 아기 예수 역할을 맡은 아기가 방치된 것을 발견한다. 아기의 부모가 누구인지 알 수 없는 상황에서 그는 학교 교장, 경찰서, 사회복지국 등에 연락을 취한다. 하지만 시간 내에 해결하지 못한 채 아기와 함께 런던으로 이동하게 된다. 대환장의 시작이었다. 크리스마스 연휴를 앞둔 시기라서 그런지 사람들은 너무나도 무심하고 사무적이었다. 세상은 트레버를 도와주지 않았고, 트레버는 일머리가 없었다. 아기를 데려가기 위해 사회복지국 직원이 왔는데 하필 그때 아기가 사라지거나 휴대폰 배터리가 없거나 통신이 잘 안 되는 등 총제적 난국이었다.
어찌어찌 배낭에 아기를 숨겨 펜트하우스 입성에 성공한 트레버. 곧이어 사회복지국과도 연락이 닿는다. 그는 아기를 데리고 갈 직원이 올 때까지 아기를 돌보게 되는데 그 과정도 정말 볼 만하다. 기저귀가 없어서 펜트하우스에 있던 고급 실크 스카프를 무단으로 사용하는 것은 물론 아기가 울자 샴페인 코르크 마개를 물리기도 한다. 심지어는 펜트하우스로 가는 데 필요한 전자키를 챙기지 않은 채 밖을 나와서 곤욕을 치르기까지 한다. 이야기가 진행됨에 따라 어떤 요소가 하나씩 등장할수록, 트레버가 처리해야 할 일이 늘어날수록 불안한 마음이 피어올랐다. '또 사고 치겠네'라는 생각에 불길한 느낌이 들었다가도 골 때리는 트레버의 모습을 보면 웃음이 터져 나오곤 했다. 이번에는 어떤 기발한 임기응변을 보여줄지 기대가 되기도 했다. '걱정 - 기대 - 답답함 - 코믹함'의 무한 굴레였다.
그렇게 펜트하우스에서 지내던 트레버는 한 부부를 알게 되는데 그들이 일을 보는 동안 아기를 잠시 맡아주겠다고 한다. 동시에 아기 2명을 돌보던 도중 그는 사회복지국 직원의 연락을 받는다. 아기를 데리러 왔다는 것. 드디어 아기에게서 해방된다는 기쁨에 트레버는 헐레벌떡 아기를 데리고 나간다. 그런데 너무 급했던 나머지 보내야 할 아기가 아닌 다른 부부의 아기를 보내버리고 만다. 다행히 이를 알아차리고 수습하는 데 성공하지만, 곧바로 또 다른 위기가 찾아온다. 펜트하우스 주인 가족이 계획을 바꿔 런던 집에서 크리스마스를 보내기로 했다는 것이다. 교대해야 하는 가정부가 멀리 있는 탓에 그녀가 도착하기 전까지 장을 보고 초대형 트리를 꾸미는 등 여러 일을 대신 처리하게 된다. 스펙터클한 일이 끊이지 않았다. 우당탕탕하면서도 해야 할 일은 어떻게든 해 내는 트레버가 신기하기도 했다. 물론 어설프게 끝낸 경우가 훨씬 많았지만, 마지막 요리 같은 경우는 퀄리티가 상당했다.
비록 일은 잘 못하나, 사람은 착한 트레버다. 무언가 하나에 꽂히면 그걸 신경 쓰느라 앞뒤가 없어질 뿐 사람 자체에 악의가 있어서 그러는 건 아니다. 아빠로서 딸을 사랑하는 마음도 굉장히 크다. 휴대폰 배경화면도 딸 사진이고, 딸의 사진을 액자에 넣어 항상 가지고 다닌다. 가족과 함께 보낼 크리스마스를 기대했지만, 그렇지 못하게 되자 누구보다 실망하기도 한다. 또 주머니 사정이 넉넉하지 못해 펜트하우스에 먹을 것을 훔치러 온 한 가족에게도 모질게 대하지 못한다. 오히려 음식을 더 챙겨준다. 사회복지국에 아기를 보내는 과정에서 이 아이의 앞날에 대한 걱정을 표현하기도 한다. 누군가의 입장에서는 답답하기 그지없는 사람일 수도 있지만, 좋게 보면 인간적이고 정 많은 사람이다.
작품의 마지막에는 아기를 중심으로 관련된 사람들이 함께 모여 따뜻한 시간을 보내게 된다. 트레버와 그의 가족, 경찰, 사회복지국 직원, 주민들 말이다. 이들이 한 자리에 모이게 된 것이 코믹하면서도 훈훈했다. 그만큼 크리스마스에 어울리는 드라마이지 않나 싶었다. 트레버가 고군분투하는 과정 곳곳에 가족의 이야기, 빈부격차, 외로움, 온정 등의 연말과 어울리는 소재들이 담겨 있다. 참고로 반전도 있다. <인간 vs 벌>을 괜찮게 봤다면 볼 만한 작품이 되지 않을까 싶다. 가족들과 영화 한 편 보듯이 즐기기에도 좋은 드라마이다. 이 맘 때가 되면 생각이 많아지곤 하는데 가벼운 마음으로 <인간 vs 아기>를 정주행해 보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 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