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 초보 인형극 작가의 아슬아슬 도전기!-
그녀와의 만남은 시장님과의 토론 자리였다. 도서관에서 마련한 행사였는데 마침 제주도가 쓰레기와의 전쟁으로 한참 열을 올리고 있을 때였다. 모두 토머스 프리드먼의 '코드 그린'을 읽고 각 도서관 독서회 대표들과 시장님이 토론을 빙자한 이야기 자리였다. 내가 속한 우당도서관이 주최 측인 관계로 내가 토론회 사회를 보고, 각 도서관 회장들이 패널이 되어서 쓰레기에 대한 의견을 내놓는 시간이었다. 좁은 곳에서 우리끼리 하던 독서토론을 대강당에서 배심원 같은 청중들을 모셔놓고, 그것도 시장님과의 만남이라니. 긴장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렇게 그 토론장에서 그녀를 만났다. 화려해 보이고 당당했던 포스에 눌리고, 서슴지 않고 자신의 의견을 밝히는 그녀를 보면서 나와는 결이 다르구나 생각했던 게 첫인상이었다. 그렇게 시작된 인연이 책 축제를 같이 기획하면서 점점 뜻이 맞아 친구처럼 지내고 있었던 어느 날, "자기, 해녀에 관한 인형극 극본 써볼래?"라는 뜬금없는 제안에 극본? 극본이라면 기성 작가들이 쓰는 건데 한 번도 극본을 써본 적 없고, 등 떠밀려 끌려나가는 타입이라 마땅히 거절해야 했지만 그때는 무슨 배짱이었는지 뜻밖에도 내 입에서 "재밌겠는데. 해볼게"라는 말이 튀어 나왔다. 이런? 뒷일을 어떻게 수습하려고. 하지만 이미 엎질러진 물이었다. 뭔가 목적이 있지 않으면 엉덩이만 뒤로 뺀 채 좀처럼 나서질 않는데 이번엔 내가 하겠다 선언했으니 죽이 되든 밥이 되든 덤벼볼 작정이었다.
그렇게 나의 첫 극본 작업은 닻을 올렸다. 해녀에 대한 조사가 필요했다. 해녀들의 인생을 담은 기록부터 다큐멘터리, 영화 등을 보며 나름의 스토리 라인을 잡았다. 제주 사람으로 살면서도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된 해녀에 대해 큰 관심을 갖진 않았었던 나를 탓하며 그녀들의 삶을 접해 나갔다. 바다에서 목숨을 잃을 뻔한 이야기, 상군 해녀로서 하군 해녀로서의 마음 가짐과 역할, 제주 뿐만 아니라 해외까지 나갔던 그 설운 시간들, 딸로서 엄마로서 해녀로서 겪어야 했던 세월들. 추운 바다만큼이나 서럽고 힘든 이야기가 가득했다. 자칫 한눈 팔았다간 어찌 될지 모르는 삶이어서 그랬던가. 그녀들은 자기네만의 엄격한 위계질서와 함께 하는 공동체 문화로 서로의 결속력을 다졌으며 바다를 경외하며 목숨을 담보로 한 억척스러운 삶을 살아오고 있었다. 잠수병에 걸렸으면서도 약으로 지탱하며 바다로 향하고, 땅 위에선 꼬부랑 허리에 한 걸음 떼기가 힘들지만 바다에선 자유롭다고 바다에 가야 아픈 것도 낫는다 말하는 늙은 해녀들. 해녀들은 그래서 바다도 할머니들을 위한 할망 바당, 어린 아이들을 위한 애기 바당을 따로 두어 소외되지 않고 자신의 능력 만큼 바다를 만나고 바다를 일터로 삶을 영위할 수 있는 기회를 주고 있었다. 그래서 대부분 해녀들은 힘들고 고된 물질이지만 자신의 일에 자긍심을 갖고 죽는 날까지 바다에서 물질을 하며 살아가고 싶다는 꿈을 전해 주었다. 바다라는 것이 한치 앞도 알 수 없으니 영등신과 용왕님에 의지하며 정성스레 제를 지내고 바다에서 만나는 용왕딸(거북이), 용왕나무(산호) 하나도 함부로 하지 않았다. 그리고 하군 해녀가 상군 해녀의 바다를 넘보는 일도 없었다. 물 속에서의 숨 길이는 하늘이 정해진 운명이라 믿는 탓이다. 이런 제주 해녀의 삶을 쫓으면 쫓을수록 탄식과 안타까움과 자긍심이 일었다. 그래서 집안을 일구며 바당(바다)을 개척하며 살아가는 그런 해녀들의 삶을 아이들이 이해하기 쉽게 재미와 감동을 주는 극본을 쓰고 싶었다. 나의 상상력과 창의력이 단숨에 그녀들의 삶을 다 표현하진 못하겠지만 내가 느낀 그 만큼이라고 올곧게 전해 주고 싶었다. 그래서 상군 해녀였던 엄마를 잃은 어린 소녀 해순이를 등장시켰고, 손녀까지 잃을 수 없다며 물질을 시키지 않겠다는 자상하지만 고집스러운 할머니를 그려내고, 해녀의 공동체 삶을 이야기해줄 불턱 해녀 3인방을 포진시켰다. 그리고 해녀들이 용왕 딸이라고 하는 거북이와, 섬뜩하게 엮인 은빛 물뱀과 신비스러운 용궁을 더해 해순이의 해녀로서의 성장 과정을 그리고 싶었다.
첫 번째 극본을 가지고 가서 극단 단원들과 만났을 때 그들이 원하는 해녀 이야기와 내가 그리는 해녀가 조금 다른 방향이었음을 알게 되었다. 그녀들은 악당이 나오는 재미적 요소보다는 해녀들의 고유한 문화와 전통을 극에 올리고 싶어했다. 서로가 그리는 극의 색감을 맞춰서 두 번째 극본 수정이 있었다. 아쉽지만 은빛 물뱀과 작별을 고했고, 해순이의 아버지 이야기도 잘려나갔다. 나는 그런 작업들이 너무 재밌고 소중했다. 좀더 치열하게 극에 대해 토론하는 시간이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스토리를 엮어 나가는 것이 흥미진진했다. 그리고 1차 작업이 끝나 나까지 참여해서 직접 리딩을 해 보는 시간을 가졌다. 나도 역할 하나를 맡아 리딩을 했는데 읽으면 읽을수록 왜 그리 다듬어지지 않은 대사가 눈에 거슬리는지, 왜 그렇게 호흡이 긴 대사는 많은지 난감했다. 쩔쩔매는 나를 보며 단원들은 앞으로는 작가님들과 꼭 같이 리딩을 해야겠다며 배우들의 어려운 점을 이렇게 경험해야 그에 맞는 대사를 만들 수 있을 거라며 웃었다. 그렇게 단원들이 작가도 챙겨야 하고 가르쳐야 하는 웃지못할 상황도 벌어졌다. 그랬다. 배우들의 목소리와 톤을 상상하며 머릿속에서 혼자 노트북과 싸우며 읊조리는 것과 직접 소리 내어 극을 해보는 데는 엄청난 차이가 있었다. 거기다 인형극 초보인 나는 배우들의 동선과 장면 구성을 전혀 모른 채 나의 상상 속에서만 바당을 가고, 불턱을 만나고 친구들과 뛰어놀고 했으니 이래저래 고민들만 잔뜩 안겨 주었는지도 모르겠다. 극을 만들기 위해선 출연 배우의 수부터 음향, 배경음악, 조명까지 고려해야 할 점들이 너무도 많았다는 것을 나중에야 알게 되었다.
대본을 넘기고, 단원들의 역할에 맞게 대사가 수정되었고, 감초 역할을 할 강아지도 첨가되었고, 주인공의 이름도 극의 제목도 바뀌었다. 주인공의 이름은 바꾸지 않았으면 했지만 단원들의 의견을 받아들였다. 생 초보 작가의 자존심을 생각할 때가 아니라 극이 먼저였고, 무대가 더 멋져야 한다고 판단했고 경험이 많은 단원들을 믿었고, 완성의 힘을 기억하려고 했다.
지난 일요일, 따뜻한 봄 햇살에 멀리 한라산까지 선명하게 보였던 그날 바람은 유난히도 쌀쌀했다. 그리고 드디어 극단 '그녀들의 AM' 창작 공연인 '바다가 활짝 피었습니다'의 첫 공연의 막이 올랐다. 코로나로 빛을 보지 못할 뻔도 했고 제작이 어려워서 완성하지 못할 뻔도 했지만 끝까지 완주해 준 단원들이 너무 고마웠다. 소박하지만 작은 소극장에서 관계자만을 초대해서 열린 작은 공연이었지만 묘한 긴장감 속에 극이 시작되었다. 무대가 시작되기 전 숨죽인듯 고요한 그 적막감은 설렘과 기대감의 전쟁터였다. 차라리 빨리 시작되어 버려야 한 숨 크게 내려놓고 편안히 볼 수 있을 것만 같았다. 그렇게 내 손을 떠난 글이 또 다른 생명체가 되어 성큼성큼 나를 만나러 오고 있었다.
인형극이 펼쳐지는 동안 한 장면 한 장면이 너무 소중했다. 내 상상으로만 만났던 꼬마 해녀와 친구들, 할머니, 동네 해녀들, 바닷속 세상과 용궁 수문장을 눈 앞에서 볼 수 있고, 만질 수 있고 들을 수 있는 인형이 되어 나타났고, 배우들이 함께 하고 있음을 알고 있는데도 인형들이 클로즈업 됐다. 장면이 바뀔 때마다 큰 박스가 바다가 되기도 하고 용궁이 그림으로 나타났다가 사라지며 나의 해녀 이야기가 시간과 함께 흘러가고 있었다. 자식만 하나 덩그러니 만들어 놓고 나갔다 돌아와 보니 어느새 훌쩍 어른이 되어버린 자식을 엄마인 내가 못 알아볼 지경이었지만 잘 자라준 자식이 너무 대견했다. 어느 장면에선 '풋'하고 웃음이 나왔다가 어느 장면에선 코끝이 찡해짐을 느끼며 극이 끝나는 내내 마음을 졸였다. 하나하나 손바느질해가며 인형을 만들었을 단원들의 수고로움과 열정에 한 번 놀라고, 내가 쓴 대사가 귀로 들릴 때 희열이 느껴지고, 새로 추가된 장면을 보며 놀라웠다가 아쉬웠다가 온갖 감정들이 춤을 추기 시작했다. 하지만 무엇보다 그 날 그 시간은 내게 감동 그 자체였다.
불턱에서 만난 해녀 삼인방
'바다가 활짝 피었습니다'는 아직도 갈 길이 멀다. 수정해야 할 부분도 있고 부족했던 부분은 보완하고 공연이 잡히게 홍보도 해야 하고, 코로나로 움츠린 무대들도 열려야 한다.
나의 글쓰기는 아직 싹을 틔우기에도 모자라고 힘이 부치지만 이미 자식 하나를 세상에 내놓고 보니 후폭풍에 괜히 긴장되고 무섭다. 공연 포스터에 적혀 있는 이름을 사알짝 가리고 싶은 마음 굴뚝 같지만 이것도 이 인형극을 함께 하는 나의 몫이라 여기고 쫄(?)지 말고 많은 이들의 시간과 노력으로 완성된 이 인형극만큼은 코로나를 뚫고 소박하지만 화려하고 작지만 큰 울림으로 화알짝 피어줬으면 좋겠다는 것이 나의 바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