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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가시나물 Jun 01. 2020

제주어와 나

-'제주어 마음 사전'을 읽고-

 다른 지역보다 주체적이고 독립적인 성향이 강해서였을까? 제주도는 '제주 방언', '제주 사투리' 보다는 '제주어'를 선택했다. 간혹 '한국어', '프랑스어', '중국어' 하는데 왜 제주만 '제주어'냐고 질문하는 이도 있었는데 그런 질책(?) 속에서도 끝까지 '제주어'를 고집한 것은 '제주어'의 독특함과 억센 생존력이 묘하게 섬을 닮았다.

망망대해 외로운 섬, 어디든 갈 수 있지만 또 어디든 마음대로 나갈 수 없는 섬. 거친 바람도 운명으로 여기고 척박한 땅이라도 감사하며 살아가야 하는 섬. '제주어' 도 그 섬의 운명을 받아들였는지 꺼질듯 꺼질듯 하면서도 숨을 죽이지 않고 없어질듯 없어질듯 하면서도 누군가에 의해 되살아나고 다시 타오른다.

 현택훈 시인의 '제주어 마음 사전' 역시 '제주어'의 새로운 불씨가 되어주기에 부족함이 없다. 시인에게 선택된 '제주어'엔 시인 자신의 경험과 생각과 그가 사랑했던 제주가 담겨 있다. 그리고 시인의 '제주어'를 바라보는 따듯한 시선이 녹아 있다.

 해가 져서 깜깜해져도 집에  갈 생각도 하지 않은 채 친구들과 시커멓게 될 때까지 놀았다는 추억이 담긴 '가매기(까마귀)', 도서관에만 가면 '간세둥이(게으름뱅이)'가 된다며 이젠 조금 오몽하겠다(부지런하겠다)는 결심도, 제삿날에야 얻어 먹을 수 있었던 '곤밥(쌀밥)', '돌킹이(부채게)','곰세기(돌고래)','버렝이(벌레)' 등의 정겹고 재미있는 제주어가 가득하다. 또, 4.3 당시 잃어버린 마을의 이름들을 '곱을락(숨바꼭질)'이 끝나도 찾지 못한 아이들 같다는 시인의 생각은 아직도 진행중인 아픔에 대한 고백같은 거라 여겨진다.     


 요즘 주위에서 '제주어'에 대한 의무감을 갖고 있는 사람들을 많이 만나게 된다. 학술적으로도 그렇고 문학적으로도 그렇고 '제주어'로 이루어진 연극도 그렇고 다양하고 풍성하게 '제주어'가 살아나고 있다. 정말 바람직한 현실이다. 하지만 그 의무감 이전에 '제주어'를 아끼고 사랑하는 마음이 먼저다. 사랑하는 마음이 있어야 자주 만나게 되고 사랑하는 마음이 있어야 잊혀지지 않는 것처럼 '제주어'를 대하는 데도 그런 마음이 필요할 것이다. 그래서 더더욱 이 책이 눈에 띄었다.  물론 사전 형식이어서 깊이 있는 문학성을 운운하거나 작가의 여운 남는 경험들을 진하게 들을 수는 없지만 같은 시대에 같은 고향을 둔 나로서는 한 장 한 장 넘길 때마다 웃음이 터져나왔고, 한숨도 쉬고, 손사래도 쳤다. 거기다  책장 곳곳에서 긴 시를 읽는 것 같은 표현들도 무척 반가웠다.

 '마을 전체가 양푼 속에 들어가는 것과 같다' 거나 '나는 가끔 배고픈 것과 어머니가 그리운 것을 혼동한다'거나 '그리움은 아시아시날에 옹송그리고 있다' 같은 담백하지만 진솔한 자기만의 문장들을 찾는 재미도 더해질 것이다.  

 책 속의 그때 우리들은 왜 그렇게도 배고팠을까? 그곳에서 우리들은 컴퓨터 한 대 없이도 어쩜 그리 잘 뛰어놀 수 있었을까? 그 때 우리들은 어쩜 그리 순수했을까? 

 이 책의 매력은 이렇게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40여 년 전 추억의 그곳으로 달려가게 하는 마법이 있다. 그 풋풋함이 그립거나 그때의 아쉬움을 달래고 싶다면 꼭 한 번 읽어봄직한 책이다. 마치 우리들이 '응답하라~~'시리즈에 열광하고 '복고'가 트랜드가 되어 그 때를 추억하는 것처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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