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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가시나물 Feb 22. 2021

미술, 별 거 아니구나!

-'방구석 미술관 2'를 읽고-

미술, 별거 아니구나를 느끼게 해 주고 싶다는 작가의 염원은 아마도 많은 대중들이 미술이라는 장르에 대해 막연히 갖고 있던 선입견과 두려움을 조금은 부셔보겠다는데 그 의미를 둔다는 말일 것이다. 학창 시절 미술 시간에 배웠던 유명한 화가들을 입시 제도에 맞춰 작가와 경향과 그림 제목들만 외웠지 그림을 마음으로 감상하거나 그 느낌에 대한 나눔조차도 해보지 않았던 미술 초보를 그림을 보는 데 겁낼 필요가 없구나, 내 생각대로 느낌대로 이야기를 따라 가면 되겠구나,그림 속에 작가의 삶과 사랑과 고통이 담겨 있구나를 어렴풋이 느끼게 해 준 책이 '방구석 미술관 2'다.

 '코로나'시대도 아니었는데 이미 제목부터 앞서 나간 '방구석 미술관 2'. 아마 유학을 가지 않더라도 쉽게 집에서 그림을 조각을 행위 예술을 접근할 수 있다는 의미를 염두에 두었던 것일까. 물론 눈으로 직접 보고 채색과 질감과 구도를 보면 더 좋겠지만 지면으로라도 그림을 보며 작가의 해석과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그림에 대한 관심을 갖게 될 터이니 그 마음은 미술관으로 발걸음을 옮기기에 충분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한 줄 제목으로 작가의 특징을 밝히고 그의 삶과 작품과의 연계성 등을 조곤조곤 설명해 주는 작가의 표현은 마치 커피숍에 앉아 친구와 함께 그림에 대한 이야기로 시간 가는 줄 모르게 떠들어 대는 풍경과 닮아 있다. 가끔씩 유머를 섞어가며 작가 마음의 소리를 내는 부분도 재미있고, 독자가 궁금해하는 부분을 미리 질문하고 대답함으로써 누구라도 이해하기 쉽게 만든 점도 참신하다 하겠다. 하지만 작품을 소개하는 데 시시콜콜 부제를 달다 보니 진짜 제목과 조금은 헷갈리는 부분이 있었고, 그런 느낌들은 독자에게 올곧이 맡겨둬도 좋지 않을까 하는 아쉬움도 있었다.

 책에는 한국의 현대 미술가 열 명이 소개되어 있다 소를 사랑한 이중섭부터 한국 최초의 여성 서양화가였던 나혜석, 조국의 버림을 받은 이응노, 사업에 탁월한 능력을 보였지만 예술의 길을 포기할 수 없었던 유영국과 외골수의 삶을 살았던 장욱진, 한국적인 단순함을 미(美)로 승화시킨 김환기와 박수근, 아픔과 고독을 예술의 핵심으로 삼은 천경자, 행위 음악의 대가 백남준까지. 일제강점기를 지나 해방을 거쳐 한국전쟁에 이르는 시대의 멍에를 짊어지고 질곡의 시간들을 견뎌내야 했던 예술가들의 파란만장한 삶이 그리고 예술이 책을 통해 내 심장 어딘가 착륙한 느낌이다. 대부분 부유한 집에서 태어나 일본 유학을 갔다 온 금수저들이었지만 개인의 삶은 평탄하지 않았다. 가족을 그리워하며 점점 처참하게 무너지는 소였던 이중섭이나 시대의 여성상을 해체한 나혜석의 사랑과 예술의 안타까움을 전해 받을 수도 있었고 가족과 예술에 대한 고민과 아픔이 전해져 오는 이도 있었다. 파격적이고 개인의 자유가 억압되는 현실을 비판한 백남준의 녹녹하지 않았던 삶은 그 부인의 사랑과 존경으로 행복했으리라 생각해 본다.


화가가 조각가가 행위 예술가가 자신의 사고를 발전시켜 표현한다는 것, 그리고 문학가들이 글을 통해 소통하고 표현하는 것, 무용가가 몸짓과 표정으로 관객들과 호흡하는 것. 음악가가 악기와 목소리로 삶을 얘기하는 것. 이런 예술들이 교류하고 융합되고 발전되면서 나아가는 것. 그리고 그 예술가들과 호흡하며 삶의 풍요로움을 함께 하는 것. 이건 인간이 가진 특권이자 권리일 뿐만 아니라 아름다움을 느끼게 하는 본성일 것이다. 그 본성이 따르는 대로 마음이 이끄는 대로 따라가다 보면 자신만의 이야기가 새롭게 탄생될 수 있음을 알게 된다면 더 이상 미술은 닿기 힘든 미지의 세계는 아닐 것이다. 미술, 별 거 없구나 속엔 나의 두려움과 무지에 대해 용기를 갖게 하는 마법이 들어 있는 것은 아닐까.


미술관을 떠올린다. 그림 속에 작가의 아우성이 있고, 그의 눈물이 흐르고, 환희가 넘쳐흐른다. 때론 그것들이 색채로 가슴에 와 닿을 수도 있고, 투박한 질감으로 느껴질 때도 있고, 거리감이 그 마음을 대변할 때도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것을 온몸으로 흡입하는 관객들이 있을 것이다. 방구석 내 책상 위에서 만난 그림들이었지만 오롯이 그들에게 집중하며 대화할 수 있어서 많이 즐거웠다. 이제 이우환 덕에 깨진 유리 조각, 돌멩이 하나도 잘 살펴야겠다. 그러고 보니 내 주변에 스토리를 잔뜩 품은 예술품들이 넘쳐나고 있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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