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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가시나물 Sep 26. 2021

주식 우울증

-주식하며 인생을 배운다?!-

전화 한 통을 받았다. '오늘 주식은 어떠니? 오르긴 올랐지만 별로지? 지난 금요일 모든 주식이 약속이나 한 듯 그래프가 밑을 향해 뻗고 있었다. 그래 어디까지 내려가나 보자~라며 숫자들과 한참 눈쌈을 했던 터라 오늘 그리 놀라울 일도 없는 수치였다. 믿었던 H마저 끝을 모르고 떨어지다 보니 숫자들 앞엔 모두가 -가 붙고 온통 파란빛 파란색 세상이었다. 그리고 총자산에서도 내가 투자한 돈이 얼마였지? 하는 이제껏 볼 수 없었던 처절한 금액을 보았다. 주식에 대한 호기심으로 뛰어든 지 두 달 남짓인 거 같은데, 이런 경우는 처음이다. 그런데 다시 생각해 보니 지금이 기회기도 했다. 가격이 떨어진 때는 추가 매수를 하는 적기였고, 평균 단가를 낮출 수 있는 호기였다. 미리 이런 경우를 대비했던 건 아니라서 통장에서 얼마를 다시 공수받아 내가 예뻐라 하는 주식을 추가 매입했다. 다음을 기약하면서. 이것이 종자가 되어서 껑충 날아오를 때 디딤돌이 되길 바라면서 말이다.

 신랑은 또 옆에서 가장 유력한 한 종목에 모두 쏟아붓지 않고 분산하는 나를 이해하지 못했고 알아서 잘 결정하라는 가시 있는(?)  뒷말만 남기고 후퇴했다. 남편의 말에 조금 흔들리긴 했지만 이미 늦었고 한 수를 놓은 이상 말을 돌릴 수도 되물을 수도 없었다. 그 수가 악재가 되지 않길 바라면서~~


 요즘도 온통 세상은 주식시장 같다. 뉴스에서도 '턱'하니 증시가 보도되고, 신문, 유튜브, SNS 등이 모두 주식이라는 끝점 한 곳만을 향해 바라보는 느낌이다. 얼마 전엔 어떤 경제 전문가가 주식하지 않고도 먹고 살 사람은 주식하지 말았으면 좋겠다는 의견을 표하기도 하고 주식을 동업자라고 생각하고 끝까지 자신의 투자를 믿어야 된다는 유명 셀럽이 하는 말도 들었다. 매일 문자에는 전화번호를 남기라는 유혹의 메시지가 전해 오기도 한다. 그 번호만 누르면 일확천금을 벌어 금방 떼부자가 될 것처럼 말이다. 손가락이 근질근질하다. 내가 이런 생각을 하고 있으면 어떻게 알았는지 친구의 전화를 받는다.

 "너 지금 손가락 근질근질하지? 기다려. 오를 거야. 금방 팔고, 금방 사지 말고. 좀."

친구의 애정 가득 잔소리는 뜨끔하게 만들다가도 피식 웃음 짓게 만든다. 성격 급한 내 마음을 어떻게 잘 아는지. 하마터면 누를 뻔했는데 뻗어가던 손이 주춤거린다. 내가 가끔 주식이 재미있다고 말하면 주식도 도박과 같은 면이 있으니 그럴 거라고 얘기한다. 난 도박과는 거리가 먼 사람이라 생각했는데 나에게도 일면 사행심이 있었나 보다. 아직도 초보의 꼬리표를 떼지 못했고 100원이라도 싸게 매입하면 좋아하고 10원이라도 비싸게 팔면 호들갑 떨며 기뻐하는 주린이어서 그런지 주식 숫자에 따라 그날의 기분이 오르락내리락한다. 주식 시장이 끝나서도 계속 인터넷이니 유튜브니 하며 내가 선택한 종목에 대한 검색으로 시간을 보낼 때가 많다. 책도 멀리하고, 글 마실도 안 하고, 수업도 뒷전으로 물리고 말이다. 줌으로 강의를 듣다가도 슬쩍 화면을 내리고 주식 시세를 확인하고, 외출을 했다가도 자주 휴대폰을 들여다보게 된다. 주식 우울증이다.

'아플사'

이래서 주식을 하지 말라고 했나 보다. 이래서 나와 주식은 어울리지 않다고 했나 보다. 처음엔 다 그랬다고 시간이 지나면 안 그렇다고 지인들이 말하던데 여전히 난 지금도 진행 중인 느낌이다.


나에겐 얄궂은 주식이지만 주식을 보다가 배우는 것도 많다. 욕심을 부려 더 올라라 올라라 하다 보면 쥐도 새도 모르게 내려와 있어 미리 팔지 않았음을 후회한다. 조금 올랐을 때 팔았다면 됐을 텐데, 시세를 볼 줄도 모르면서 욕심을 낸 나를 자책하게 된다. 그 간발의 차가, 조금만 더 했었더라면 하는 아쉬움의 그 간격이 훨씬 더 큰 공허함을 준다. 그래서 은메달리스트가 동메달리스트보다 더 불행하다고 하지 않던가.

주식엔 절대적이라는 건 없는 것 같다. 모든 이들이 이 주식만은 정확해라고 하지만 결국 그도 주식의 한 종류일 뿐이니 어느 때는 패자요, 어느 때는 승자다. 우리 역시 일이 잘 풀리는가 하면 어느 날엔 더더욱 나락으로 떨어질 때가 있다. 그래서 그렇게 승승장구하던 연예인이 하루아침에 마약으로 뉴스에 오르락거리고 구설수에 악플에 만신창이가 되어가지 않던가. 믿었던 사람에게 발등 찍히거나 생각지 않았던 사람에게 도움을 받을 때가 있는 것처럼 세상 삶에 절대적인 확신이란 없는 듯하다. 주식 중에도 예뻐라 했던 주식보다 그럴까? 했던 녀석이 더 큰일을 치르게 할 때도 있다. 그러니 주식 시장은 아무도 모르는 모양이다.

 처음엔 떨어지는 주식을 보면서 가슴 철렁하고 속상할 때가 많았는데 지금은 언젠가 오르겠지. 조금 있으면 제자리를 찾겠지 할 때가 많다. 이런 세상을 살 줄은 꿈에도 몰랐던 것처럼 언젠가 코로나가 끝나고 다시금 일상을 찾는 그날이 오길 희망하는 것처럼 주식의 내리막길은 또 다른 오르막 길을 예고하는 것이리라 나 나름대로 결론을 내린다.  


결론은 난 주식이란 녀석과 간간히 데이트만 하기로 했다. 오래된 친구처럼 잘 지내는지 안부를 전하고 시간 있을 때마다 들여다볼까 한다. 내가 해야 할 일에 재를 뿌리거나 미루게 하는 일은 없도록 주식이 내 하루의 큰 부분을 차지하지 않고 적당히 타협하면서 말이다. 만나지 않아도 잘 지내겠거니 하고 전화하지 않아도 별일 없겠거니 그러다가 만나면 어제 만난 것처럼. 주식으로 걸린 우울증은 무심함과 적당한 거리감으로 치료하고 건전한 만남으로 소소한 즐거움으로 여겨야 할 것 같다. 좋은 소식 기다리면서. 큰 욕심 내지 않으면서.   

주식, 너란 놈, 참 요상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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