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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가시나물 Oct 07. 2021

물건은 물건을 낳고

-자꾸만 많아지고 쌓이고-

휴대폰을 바꿨다. 전에 썼던 것이 사 년이 넘어 툭하면 배터리가 없어지고 전화가 끊기니  급한 일이 있을 때마다 마음을 졸여야 해서 이번에 큰맘 먹고 대리점을 찾은 것이다. 수많은 모델 중에 그래도 요즘 한창 유행인 접는 폰에 눈이 갔다. 그 예전 사장님의 포스를 풍기며 '나 좀 봐라' 그 큰 휴대폰에서 앙증맞게 주머니에 쏙 들어가니 이 얼마나 새로운 혁명인가. 그래서 별 고민 없이 보라색이 은은한, 방수 기능에 이것저것 붙는 해택을 겸비한 특별히 나무랄 것이 없다는 이유로 난 덜컥 하니 최신형 기계 하나를 새 식구로 주저 없이 맞이했다.  


식구를 맞이한다는 건 아무래도 쉽게 결정할 일은 아니었나 보다.  아무 생각 없이 폰을 내 손에 쥔 순간, 얼마 전 인터넷으로 부른 작은 가방 하나가 떠올랐다. 외출할 때 큰 가방이 거추장스럽다고 휴대폰 하나에 카드만 넣을 수 있는, 어깨에 두르고 나가면 새삼 편할 것 같아 구입했던 것인데. 아풀싸, 내가 휴대폰을 바꾸고 나니 이젠 그 가방이 별 쓸모가 없는 무용지물이 되고 말았다. 폰을 접어야 하고 두께가 있으니 가방에 넣을 수가 없고, 길게 펴고 넣자니 계속 휴대폰을 켜고 있어야 하는 불편함이 속을 쓰리게 한다. 접을 수 있어 주머니에 넣기 편해서 최신 유행이라서 골랐던 것인데 내가 가지고 있던 다른 물건 들과의 조합은 미처 생각지 못했던 나의 불찰이었다. 더구나 새로운 이 식구는 외출할 때는 간편해서 좋지만 카드를 넣고 다닐 수가 없는 상황이라 얇은 카드 지갑을 하나 마련해서 또 따로 갖고 다녀야 하는 일이 생겼다. 내 이름으로 된 카드는 등록해서 쓸 수 있지만 생활비를 쓰는 카드는 남편 이름이어서 휴대폰에 등록이 안 되는 문제가 생긴 것이었다. 내가 개인적으로 쓰는 거야 앱을 통해 결재하면 그만이지만 마트를 가거나 생활비로 써야 할 땐 휴대폰만 가지고 가던 습관이 너무 오래돼서 새 카드 지갑을 자꾸만 챙기지 않으니 대략 난감한 상황이 계속 발생하는 거다. 이래 저래 물건을 하나 바꾸니 새로 생긴 물건의 디자인이나 쓰임새에 따라 또 필요한 것들이 생기고 부족한 점을 메꾸려니 추가로 따라오는 부속 물건 들을 또 구입하는 경우가 있으니 머리 모양을 바꾸면 그에 따라 어울리는 옷과 구두를 바꿔야 하고 화장법도 달라지고 옷에 따라 행동거지가 달라지는 것 같은 모양새다.  


 캡슐 커피 기계를 선물 받았다가 매번 캡슐을 사야 하고 캡슐을 보관하는 함도 필요했고, 다양한 맛의 커피들을 맛보고 싶어 주문하는 것이 늘다가, 커피 메이커로 바꾸었더니 종이 필터가 필요하고 커피 가루를 사야 했다.  손으로 설거지할 땐 수세미와 세제만 있으면 쓱싹이었는데 식기 세척기를 샀더니 그에 따른 전용 세제가 따로 있고, 세척기를 청소하는 세제가 또 따로 있었다. 당연한 것일 수도 있지만 물건이 바뀔 때마다 새로운 물건을 들여야 하고 다 쓰지 못한 물건들을 정리해야 하니 물건 틈바구니 속에서 끝까지 쓰거나 제대로 쓰지 못하는 경우가 허다한 것 같다. 

 물건을 사는 기준도 많이 달라진 것 같다. 예전에 필요해 의해서 물건을 사는 것이 주였다면 지금은 그 전 디자인의 차별성에 더 큰 의미를 두고, 기능을 세분화해서 집 안으로 물건을 들이고 있으니 쌓이는 건 물건이요, 버려지는 것도 또 물건이다.  

물건이 물건을 낳는 세상, 물건이 다른 물건을 또 생산하게 부추기는 세상, 계속 물건을 진화하게 하는 세상, 지금 내가 살고 있는 세상의 모습이다. 처음부터 줄 없는 청소기가 나오면 될 텐데, 줄이 짧았다가 점점 길어지다가 결국엔 없어지고, 먼지 봉투였다가 플라스틱 통이었다가 물로 씻어낼 수 있는 것으로 바뀌고.

그 진화가 새로우면서도 편리하면서도 너무도 잦은 모델 교체와 빠른 발전이 크게 반갑지만은 않은 것은 나 혼자 뿐일까?



요즘 내가 꽂힌 콘텐츠의 대부분은 예쁘게 살림하는 방법들이 나오는 동영상이다. 햇살 가득한 오전 청소를 하고 싱크대 안을 쏙쏙 정리하고 채워놓고, 양념통에서 부터 냉장고 안 수납 도구 들까지. 주부의 손이 거치기만 하면 일열 종대로 횡대로 제자리를 착착 찾아가는 살림 솜씨에 넋이 나가 계속 휴대폰만 들여다보고 있어도 시간 가는 줄 모르겠다. 그리고 결국 내가 하는 생각은 나도 저런 양념통이 필요하구나. 요런 것들이 있으면 너무도 좋겠는걸? 저 사람과 똑같이 해 봐야지 하는 생각에 저절로 손가락은 물건 검색으로 향해 있기 일수다. 거기다 공동구매라는 형식으로 다른 사람들보다 싼 값에 살 수 있다고 하니 이런 좋은 세상이 어디 있는가. 한참 검색을 하다 보니 내 장바구니 안에 어느새 또 새로운 살림살이들이 그득 했다. 그 순간, 뭔가 뒤통수를 맞은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누군가의 조종에 의해 나도 모르게 소비를 하고 또 쌓아 놓고 그리고도 또 고르는 행동을 반복하고 있는 나 자신을 발견한 탓이었다. 요령을 배우면 되지 그들과 똑같이 했다고 내 살림이 확 바뀌는 것은 아닌데 왜 이렇게 남 따라 하는 것에 앞만 보고 달리는 경주마 같이 무작정일까? 동영상이 말해주듯 같은 종류의 용기를 사용하고 다른 것들과의 부딪힘 없이 제자리를 잘 만들어주면 된다는 생활의 팁을 얻으면 되는 것이지 내가 지금 뭐 하는 거지?라는 생각이 들자 내 얼굴에 찬물을 확 끼얹은 것 같은 느낌이었다. 그래서 그 후부터 내가 가지고 있던 살림살이 중에 같은 그릇끼리 같은 통끼리 헤쳐 모여를 하고 냉장고 자리를 다시 잡아 보았다. 뭐 그렇게 썩 잘 된 정리는 아니지만 그래도 예전보단 낫다는 생각이 든다. 그리고 조금씩 내 나름의 방식으로 접근하는 것이 더 재미도 있다.  


 온통 세상이 '사세요 사세요'다. 그리고 모든 사람들이 '사고 싶어, 사고 싶어'다. 아니면 '바꾸고 싶어, 바꾸고 싶어'던가. 특히 나는 한 번 꽂히면 성격이 급해서 빨리 어떻게든 해결해 버리고 싶어 한다. 그래서 얼마 전에 돌풍을 일으킨 차를 사고 싶다고 선언했다가 가족들의 만류와 조금 더 기다려 보고 탄 사람들의 실질적인 후기도 들어보고 사자는 결론으로 번쩍 들었던 손을 내렸다. 물건에 치이며 물건을 덜 들이자 해놓곤 또 바로 새로운 물건에 혹 해서 눈독을 들이는 것이다. 아직도 갈 길이 멀다. 


물건이 물건을 낳은 세상에서 살아남는 법은 나 자신만의 기준이 있어야 한다. 얼마나 필요한지 대체 물건은 없는지, 필요 보단 유행에 매몰된 것은 아닌지 꼼꼼히 따져 봐야 한다. 내가 사려는 물건이 혹 집안 어느 구석에서 내 손길을 기다리고 있는지도 잘 살필 일이다. 계절이 바뀔 때 무작정 옷을 사기보단 작년 입었던 옷들을 꺼내 정리하고 나서 필요한 옷을 구입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 될 듯싶다. 그리고 무엇보다 물건보단 마음을 더 충족시킬 그런 것들에 관심을 기울여햐 하지 않을까? 허한 마음속에 충만으로 가득 찰 무언가를 말이다. 

내 주변 물건을 돌아본다. 욕심 한가득이다. 냉정하게 잘 따져서 이젠 물건 정리 좀 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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