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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가시나물 Mar 25. 2022

반쪽 독립 만세!!

-결혼 생활의 첫 시작-

‘나 혼자 산다’는 은밀한 독신들의 사생활을 합법적으로 들여다볼 수 있게 해 준 프로그램이다. 다른 사람들은 어떻게 살고 있을까? 항상 궁금했다. 연예인이고 유명인이다 보니 나와는 딴 세상을 딛고 선 사람들이라 생각했는데 그렇지도 않은가 보다. 그네들의 엉뚱함과 허당기가 별반 다르지 않고 사람 사는 게 다 그렇지 뭐 하다가도 묘한 이질감으로 허탈해지는 것은 나만일까? 


 그래서 독립을 꿈꿨는지도 모르겠다. 부모님의 품을 떠나서 내 취향껏 간섭 없이 마음대로 살아보리라 했지만 결국 나의 독립이라는 것은 결혼을 해서야 이룰 수 있는 전당포에 맡겨진 시계 같은 것이었다. 언제고 마음만 먹으면 돌려받을 수 있고, 내가 아닌 다른 사람 때문에 끝날 수도 있는 엄밀히 말하면 반쪽 독립이었고, 보호자만 바뀐 것 같은 뭔가 찜찜한 독립, 나의 어정쩡한 홀로서기는 그렇게 시작되었다.      

 엘리베이터 없는 5층이어도 좋았다. 겨울에도 반바지 반팔 티를 입는 드라마 속 아파트가 아니어도 괜찮았다. 비좁디 비좁은 복도 같은 부엌에 2인 탁자를 놓았지만 구중궁궐이 부럽지 않았고, 베란다 바닥이 물컹물컹 낡은 장판지에 울렁거려도, 문틈으로 싸한 기운이 들어와도 내가 한 독립엔 전혀 방해가 되지 않았다. 내가 고른 살림살이들이 차곡차곡 정리되고, 좋아하는 것으로만 식단을 꾸미고 밤이 늦어도 새벽이 돼도 시간에 제한을 받지 않은 것들이 너무도 좋았다. 208동 504호. 그곳은 그렇게 나만의 아지트가 되어 갔다. 가끔은 비가 오는 베란다에 상을 펴고 지나가는 사람들을 멍하니 쳐다보기만 해도 빗소리를 배경으로 마시는 맥주의 맛은 정말 시원했다. 뜨거운 월드컵의 여름엔 따로 또 같이 “골인”을 외쳐대며 온 아파트가 승리의 기쁨에 들썩이는 것을 보며 탈 부모님의 세상을 꿈꿨던 내가 이게 독립이지, 이게 나의 삶이야 하며 건배를 나누던 그 시간. 


 하지만 독립이 내게 던져준 서슬 퍼런 책임을 못 본 척한 대가는 컸다. 제지하는 사람이 없다 보니 점점 배달 음식과 외식이 식단을 차지했고, 내 맘대로의 세계가 점점 무질서로 변해가기 시작했다. 어느새 가계부에도 술술 구멍이 뚫리기 시작했으며 하루 이틀 미루던 일들은 결국 한꺼번에 터져서 수습하기에 너무 늦어버린 일도 생기기 시작했다. ‘결혼’이라는 행복감 뒤의 책임감을, ‘독립’이라는 뒤의 ‘어른으로서의 의무감’을 못 본 척한 대가는 컸다. 남편 돈도 내 돈, 내 돈도 내 돈이다 보니 ‘콩 농사’에 투자라는 명목으로 돈을 줬다가 손실을 입기도 하고, 더덕 농사를 하던 선배에게 돈을 빌려주고 못 받는 일도 생기기 시작했다. 부모님들은 둘 다 벌면서 아이도 없는 우리가 빚이 있단 사실을 이해하지 못했고, 우리 역시 왜 여태껏 돈이 모아지지 않는지 이상했다. 이제부터 아껴보자, 이제부터 다시 시작해보자 했지만 커질 대로 커진 씀씀이를 줄이는 것 역시 쉽지 않은 일이었다. 그리고 그런 나의 아니, 우리의 철없는 독립생활은 이십 년이 지난 지금도 현재 진행 중이다.     


 그렇게 나의 달콤 쌉싸름한 첫 독립은 모양도 바뀌고 조금씩 옅어지고 바래지고 있지만 ‘빛 좋은 개살구’로 계속 명맥을 이어가고 있다. 별 탈 없이 문제가 생기면 수습하고, 문제가 없으면 세월아 네월아 하며 그렇게 말이다. 특별히 문제가 없는 것으로 치자면 빛 좋은 개살구겠지만 실속 없고, 해 놓은 것이 없는 건 맛없는 개살구일 것이다. 뭐, 그래도 독립 전으로 돌아가고픈 생각은 전혀 없다. 속이 텅 비든 꽉 차 있든 내 시간과 나의 삶을 최대한 자유롭고 가능한 마음대로 살아가고 싶기 때문이다. 그러기엔 아직도 넘어야 할 장애물이 많고, 다가올 문제들도 있지만 나 스스로 조율할 수 있는 시간이 있다는 건 세상이 나를 휘두르는 것이 아니라 내가 세상을 조련하고 방향키를 쥐고 있다는 독립에 대한 나의 아집 때문이리라.      

 반쪽짜리 독립이긴 하지만 전당포에서 시계를 되찾아올 일은 없을 듯하다. 그곳 어딘가에서 부지런히 자신의 초침과 분침의 속도로 멈추지 않고 째깍거리고 있을 것이기에. 


 반쪽 독립 만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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