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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가시나물 Mar 13. 2021

어린날의 '소나기'

-황순원의 '소나기'와 나의 '소나기'-

 초등학교 3학년쯤이었던 거 같다. 아침에 학교에 등교해 보니 교실 안이 작은 설렘으로 웅성거리고 있었다. 선생님의 소개로 서울서 전학 왔다는 한 여자 아이가 눈에 띄었다. 숱이 많진 않았지만 길고 가느다란 머리를 반쯤 묶은 소녀. 큰 눈과 뽀얀 피부, 오똑한 콧날의 그 아이의 유난히 가늘고 연약한 손가락이 지금도 눈에 선하다. 강한 햇볕과 바람에 노출된 선머슴아 같은 우리와는 결이 다른 어딘가 신비스럽기까지 한 그 여자 아이에게로 자꾸만 눈이 갔다. 거기다 조그맣고 예쁜 목소리로 "그랬어? 그랬어." 하는 서울말까지 쓰고 있으니 우리 반 아이들의 눈은 어느 때건, 어떤 곳이건 그 아이에게 머물렀다. 체육 시간에 넘어지기라도 하면, 앞에 나와서 발표를 하기라도 하면 선생님이 그 아이를 칭찬하기라도 하면 우리들은 모두 부러움 반 질투 반으로 그 아이를 바라봤었다. 정말 그 아이는 우리와는 동떨어진 세계에 사는 사람처럼 느껴졌다. 궁금한 점도 많았다. 어떤 집에 살고 있을까? 아빠 회사 때문에 전학을 왔다는데 어떤 직업이면 제주도까지 전학을 왔을까?

 그렇게 시간이 조금 흐르자 우리 반에 묘한 기류가 흐르기 시작했다. **가 어쩌고 저쩌고 하는 말들이 들리기 시작하고, 얼마 후에는 교실 뒤에서 훌쩍이는 그 아이를 보기도 했고, 또 얼마가 지나니 책상 위에 얼굴을 묻고 흐느끼는 그 아이를 보기도 했다. 왠지 안쓰러웠다. 흘낏대며 못 본 척하는 우리 반 아이들이 얄궂게 느껴졌다. 그런데 내가 왜 그 아이와 친해졌는지 모르겠다. 그 사이에 무슨 일이 있었는진 알 수가 없지만 나와 그 아이는 어느 틈에 재잘재잘 수다를 떨며 골목길을 같이 다녔고, 또 어느 사이에는 그 아이의 이층 집에 놀러도 갔던 거 같다. 투박한 사투리를 쓰는 나를 신기하고 재밌다며 그 아이보다 더 세련되고 예쁜 아줌마가 "우리 **와 잘 지내줘서 고마워"라는 말도 들었던 것 같다. 학교에서 공부를 마치고 집에 갔을 때 엄마가 나를 반기던 적이 몇 번이나 있었을까? 하지만 그 아이의 엄마는 항상 집에서 딸을 기다렸다가 함께 간 나까지 기쁘게 하는 환한 미소로 우리를 맞이했다. 그리고 그 집에선 매일 맛있는 간식이 우리를 기다렸다. 그렇게 그 아이와 나는 반 아이들이 어떻게 우리를 대하든 상관없이 둘만 그렇게 재미있게 보냈던 거 같다.


 그즈음 지역 방송사에서 노래자랑을 많이 했었다. 이번 주는 어느 학교의 어떤 아이가 노래자랑에 나왔을까가 월요일의 화젯거리였다. 좁은 지역이라 방송에 나오기만 해도 이미 스타였고, 모두가 부러워하는 위치가 될 수 있었다. 그런데 그 노래자랑에 내 친구 **이 나가게 된 거였다. 담임 선생님의 추천으로 친구들 앞에서 몇 번 연습을 한 그 아이는 예쁜 레이스가 있는 원피스를 입고, 빨간 끈 매는 구두를 신고 유난히 하얀 스타킹에 노란 리본을 한 채 방송국으로 향했다. 잘하라는 응원을 보내며 우리들은 집에서 그 방송을 보기로 했다. 토요일 오후 몇 시였던 거 같다. 시간이 가까워 올수록, 방송이 시작되고 내 자랑스러운 친구의 차례가 다가올수록 내 마음이 더 쿵쾅쿵쾅 요동치기 시작했고 입술이 바짝바짝 마르기 시작했다. 앞서 부른 아이보다 내 친구가 훨씬 더 예쁘고 노래를 잘한다고 큰소리로 말하고 싶었다.누군가 옆에서 떠들기라도 하면 매서운 눈빛을 쏘아주기도 했다.

드디어, 드디어 내 친구 차례가 되었다. 무대 가운데로 나온 내 친구의 모습은 정말 하늘에서 내려온 천사보다 더 예뻤다. 아나운서는 내 친구에게 어느 학교 몇 학년이냐고 물었고, 제주에는 어떻게 오게 됐는지 질문했다. 떨지도 않고 그렇게 침착하게 또박또박 얘기하는 내 친구가 너무도 자랑스러웠다. 그리고 다음 순간, "제주에 와서 제일 친한 친구가 누구예요?"라는 아나운서의 질문에 나는 눈을 동그랗게 떴다. 아까보다 더 가슴이 두근거렸다. 화면 속 친구의 입술이 크게 보이기 시작했고 내 입꼬리가 올라갔다. 내 이름이 방송을 타기 몇 초 전, 나는 한껏 부푼 마음을 감추느라 속이 탈 지경이었다. 내 친구는 조금 뜸을 들이는 듯했다. 드디어 그 애의 입술이 움찔한 순간 난 뭐라 말할 수 없는 기쁨으로 얼굴이 터질 것만 같았다. 텔레비전에 나오는 저 아이의 제일 친한 친구가 나예요. 큰소리로 자랑하고 싶었다. 그 아이가 뭐라 입을 벌렸는데 "제가 제일 친한 친구는 ys에요"라는 목소리로 주위가 깜깜해졌다.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왼쪽 귀에서 오른쪽 귀로 모기 소리 같은 작은 소리 줄기가 뚫고 지나갔다. 그 친구와 어떻게 친해지게 됐느냐, 어떻게 도와주었느냐 하는 질문은 귀에 들어오지도 않았다. 그 아이가 말한 친구는 내가 아니라 우리 반 반장이었다. 우리 반 반장과 내 이름은 영어 이니셜은 같지만 받침이 하나 차이가 난다. 그래서 선생님들도 가끔 헷갈린다면 웃곤 했는데 그 아이가 말한 아이는 분명 내가 아니었다. '쿵'하고 가슴속에 떨어지는 돌덩이를 그대로 받았다. 웃음기가 없어지고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그 아이가 어떻게 노래를 불렀고, 어떻게 방송이 끝난지도 모르겠다.

 월요일, 장려상을 손에 쥔 그 아이가 학교엘 왔고, 그 아이 주위엔 반장이 있었다. 나와 그 아이는 말을 섞지 않았고, 눈도 마주치지 않았으며 그러고 나서 얼마 뒤 그 아이는 다시 서울로 돌아갔다.


 나의 어린 시절 '소나기'는 그렇게 끝을 맺었다. 황순원 '소나기'의 소년과 소녀처럼 슬프지만 아름다운 추억으로 남은 '소나기'는 아니었지만 사십 년이 훌쩍 넘은 지금도 아련한 씁쓸함으로 남아있었던 기억이었다. 너무 오래된 기억이라 당연히 잊힌 줄 알았는데 아니, 한동안 잊고 살았는데 불현듯 그 추억이 소환되어 마음을 저릿저릿하게 하는 건 왜일까? 그때 그 아이와 나는 너무 어렸고 세상 물정 모르는 철부지였다. 그 아이에게 본능적으로 더 강한 사람을 내세우고 싶었던 마음이 있었을 수도 있고, 방송 대본을 익히며 미리 정해진 답을 얘기했는지도 모르겠다. 아니, 내가 기억하는 것처럼 그 아이와 내가 그렇게 친한 단짝이 아니었을지도 모른다. 기억은 왜곡되고 편집되며 어느 순간을 지워버릴 수도 있으니까. 하지만 그 방송 이후로 내가 그 아이에게 입을 닫았던 것만은 틀림없는 거 같다. 그 아이는 상을 받고 아이들에게 둘러싸여 있었고, 나는 애써 그 장면을 보지 않았던 거 같다. 그리고 그 시간이 길지는 않았다. 그 아이는 다시 자신의 세상으로 돌아갔으니까.


 요즘 사람과 사람의 관계를 생각한다. 완벽한 사람이 없으니 서로가 서로를 의지하며 부족한 점은 조금 봐주고 넘치는 것은 나눠주며 잘못한 것은 모른 척하기도 한다. 어떤 이는 너무 갑자기 '훅' 다가서는 사람들은 부담스럽다며 뒤로 물러나기도 한다는데 나는 그런 것에 별로 신경 쓰지 않았다. 자연스레 친해지면 친해지는 대로, 내 사람이 되었다 싶으면 다른 사람의 이야기엔 때론 귀도 막고, 때론 입술에 자물쇠도 채우면서 좋은 게 좋은 거다라며 나름 그렇게 무난하게 관계 형성을 하는 사람이라 생각했었다. 근데 그게 아니었던 모양이다. 문제가 생겼을 때 냉정하게 생각하고 이성적으로 판단한다고 말했던 나 자신이 이렇게 감정적이고 자기중심이었는지 몰랐다. 겉으로는 냉정히 현실을 따져보고 그 사람이 잘못을 하지 않았다 생각하면서도 속에서 치밀어 오르는 감정들을 다스리기가 힘들었다. 나 자신을 다시 한번 검토해 볼 필요가 있음을 느낀다. 직장에서 만난 사람과는 절대 친구가 될 수 없다고 하더니. 같은 업종에서 특히 우리와 같은 강사들은 '경쟁'이라는 것을 빼놓고 순수하게 마음 편히 지낼 수는 없는 것이었나 보다. 이제 이만큼 나이도 먹었으니 한순간의 실수는 넘어갈 수도 있지 않을까 몇 번이고 자문을 해봐도 아직은 그릇이 안되는지 쉬이 마음을 내려놓질 못하겠다. 그 사람에 대한 기억의 퍼즐을 나쁘게만 꿰맞추고, 그 사람의 말을 왜곡되게 해석하고, 보지도 않은 그 사람의 행동을 상상해가며 혼자 화냈다가 혼자 아파했다가 혼자 덧없다 한숨 쉬었다가 하고 있다.


 초등학교 시절, 그 아이에게도 사정이라는 것이 있었을 테고, 그 아이의 생각이라는 것이 있었을 것이다. 혼자 확대 해석해서 혼자 슬퍼하고 떠나보냈던 것은 기억의 공소시효가 짧았던 것임에 틀림없다. 그때 나는 계속 자라고 있었고, 여기저기 뛰어다니고 있었고, 생각을 저장하는 그릇이 작아 아픈 것은, 기억하고 싶지 않은 것은 쉽게 내쳤던 모양이다. 하지만 지금은 성장도 멈췄고, 생각 그릇이 고약해서 잘 잊히지 않고 자꾸만 곱씹게 되고, 계속해서 도돌이를 찍고 있다. 이렇게 해 봐도 결과는 뒤바뀔 수 없고, 어긋난 관계를 다시 잇지도 못할 것이며 더 이상의 만남도 없을 것 같은데 어느 정도 잊었다 생각한 순간 이렇게 불현듯 옛 기억을 동반하고 나타나는 지금의 이 시간은 정말 몹쓸 경험이다.

 여러 사람의 위로를 받았다. 하지만 한 번 데이고 보니 그 위로라는 것도 의심하게 된다. 좋은 일이 있을 거라는 격려를 받았다. 하지만 그 격려 속에 나를 불쌍하게 보는 것은 아닌가 하는 열등감이 생긴다. 어차피 너의 몫이 아니었으니 깨끗하게 잊어버리라는 말을 듣는다. 다른 기회가 꼭 올 거니 조금만 기다리라는 전화를 받는다. 하지만 지나버린 시간을 되돌릴 수 없듯 그동안 함께 했던 것들이 와르르 무너지고 폐허가 되어 잔재만 할 일 없이 남아있는 기분이다. 그리고 어느샌간 서서히 이별을 준비하는 나를 만난다. 내가 쌓은 방어벽 안으로 몇 사람이 남고 몇몇이 내쳐질지 모르겠지만 견고히 쌓아가는 성 안에서 혼자의 아집으로만 성을 지키는 그런 나를 만나지 않기를, 문 하나 만들지 않고 탈출할 수도 들어올 수도 없는 요새를 만들지 않길, 더 삭막해지고 더 독해지려 또 다른 무기를 준비하는 내가 되지않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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