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원에서의 단상 2

-남편을 기다리며-

by 가시나물

남편의 나이를 실감한다 집에 있을 땐 모르겠더니 누런 환자복을 입혀 놓고 보니 정말 만 쉰이다. 우리 인생에 쉰은 없을 것 같더니, 나이 쉰이라면 할아버지, 할머니라고 여겼는데 지금 내가 실감하는 쉰은 아직도 철없고 세상 물정 모르는 천방지축이다. 헐레벌떡 수업을 마치고 병원에서 기다릴 남편을 떠올리며 차를 몰았다. 어젯밤부터 수면 내시경을 해야 하는 부담으로 잘 웃지도 않고 긴장하는 듯했는데 병원으로 가는 순간은 나도 덩달아 떨리는 마음을 감출 길이 없었다. 오후 검사라 어제저녁부터 아무것도 먹지 못했으니 배도 많이 고플 터였고 혼자 검사를 받고 있으려니 심심하기도 했을 거다. 병원에 들어선 순간 휴대폰 삼매경인 남편을 발견했다. 왜 환자복이 저리도 칙칙한지. 좀 산뜻하고 깔끔한 색이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며 남편 옆에 앉았다. 다른 검사들이 생각보다 빨리 끝나서 대기 중이라는 남편의 브리핑을 받는데 왠지 남편의 얼굴이 쓸쓸해 보인다.


잠시 후 간호사가 남편 이름을 불렀다. 무미건조한 목소리로 이것저것 설명하며 보호자 사인을 하라는 거다. 나 역시 생전 처음 사인을 하는 거라 혹시나 내가 설명을 제대로 안 듣고 뭔가 잘못 사인한 거면 어쩌지? 혹시 큰 병인데 내가 아무 고민 없이 덜컥 사인해 버린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또 기다리기를 이십 여 분. 보호자 분도 함께 따라오라는 간호사의 아내를 받고 줄줄 쫒아가다 보니 아무런 준비도 하지 못한 채, 걱정하지 말라고, 잘하고 오라는 말 한마디 못하고 자동문은 우리를 갈라놓았다. 많이 떨릴 텐데. 은근히 겁이 많은데. 등 한 번 쓸어주지 못한 게 후회가 됐다. 갑작스러운 이별에 가슴이 덜컥하고 눈물이 핑 돌았다. 그동안 내가 무심했던 것만 떠오르고 제대로 한 끼 못 먹인 것 같아 미안하고, 따뜻한 말 한마디 없이 보내버린 내가 잠깐 원망스러웠다. 반찬 투정 한번 하지 않고 '안 돼'라는 소리 한번 없이 이십여 년 한 이불 덮고 살았는데 예전에 폐렴 증세로 이틀 입원한 이후로 함께 병원엘 온 건 이번이 두 번째다. 문 안에서 간호사의 목소리가 들렸다. 부드럽고 친절한 목소리여서 불편하지는 않겠다 조금 마음이 놓였다. 별일 없이 다른 이상 증세 없이 무사히 잘 마쳤으면 좋겠다는 생각 외엔 머릿속은 텅 비어버렸다. 평소 한 번 불러보지 않던 부처님도 찾게 되고 하나님도 찾게 된다. 자동문이 열릴 때마다 간호사들의 목소리가 조금만 커도 사막의 미어캣처럼 고개가 돌려진다. 마스크까지 해서 가슴은 더 두근두근 거리고 안절부절이다. 아이가 없는 나도 남편 건강 검진을 보내는 마음이 이런데 자식 때문에 병원을 찾는 이들의 마음은 어떨까? 옆에선 젊은 여자분이 통화를 하고 있다. 들을려고 하지 않았지만 자꾸만 귀가 쫑끗거린다. 안 해도 되는 검사 같은데 어머니가 신청을 하셔서 따라왔다고 누군가에게 전화한다. 그 목소리에 조금의 원망과 약간의 짜증이 섞인 듯하다. 딸일까? 며느리일까?

병원 안은 혼자 떠드는 뉴스와 바삐 움직이는 발소리와 누군가 들어올 때마다 '찡'하며 열리는 문 소리와 청소하는 아주머니의 마포 걸레질 소리로 가득 차있다. 모두가 바쁘고 모두가 심각하고 모두가 나름의 방법으로 기다림을 견뎌내고 있었다. 제자리에서 움직이지 않는 시간 때문에 나도 책 한 권을 집었는데도 작가의 말 세 줄 이후로 진도가 나가지 않는다. 남편의 몸속을 휘젓고 다니는 카메라는 지금 어디쯤 돌아다니고 있을까? 돌아다니다가 나쁜 것을 발견한다면 아프지 않게 없애주고, 아무것도 없고 건강하다면 단 몇 초도 그 안에 있지 말고 빨리 나와주면 정말 고마울 것 같다.

지난번 엄마 검사 결과는 췌장의 혹이 조금 컸다고 또 육 개월 이후를 보자고 했다고 한다. 암은 아니지만 크기가 커졌다는 진단은 기대했던 성적이 아니라 실망한 학생 심정이었다. 그래도 엄마와 함께 했던 병원에서의 그 시간이 이렇게 떨리거나 긴장하진 않았었는데 남편은 오십이면 으레 거쳐가야 하는 건강 검진을 하는데도 혹시나 하는 마음에 더 가슴 졸이게 된다. 갑자기 '풋'하고 웃음도 난다. 이 상황에 엄마와 남편의 비교라니. 엄마는 예상했던 상황이어서 그렇고 남편은 지금 아무것도 예측 못하는 백지상태여서 그런가? 엄마는 안 사랑하고 남편은 너무 사랑해서 그런가? 엄마에겐 아빠도 있고, 아들도 있고 딸인 내가 있으니 책임감이 삼분의 일로 줄어들고, 남편은 나만 있으니 온전히 내 책임이어서 그런가? 또 아니면 엄마와 함께 할 시간보다 남편과 함께 할 시간이 더 많아서인가? 엄마는 어른 같은데 남편은 아이 같아서 그런가? 속절없는 마음과 알 수 없는 혼란스런 마음이 그렇게 천천히 흘러가고 있었다.


병원에서의 대화는 너무 낯설다.내 마음이 너무 조급한 탓인지 카운터 간호사의 전화 소리가 너무 거슬렸다. 누군가 갑상선 검사에서 이상이 발견된 모양이다. 다시 한 번 병원엘 와야 할 것 같다며 시간 약속을 하는 중이었다. 갑작스러운 전화를 받은 그 사람의 심정은 어떨까? 병원에서 보낸 서류만 봐도 머리가 하얗고 손이 떨리는데 자기 휴대폰에 병원이 뜬다면. 정말 상상조차 하기 싫은 순간이다.

간호사는 "지난번 검사에서 약간의 이상소견이 발견되어서요. 빠른 시일 내에 병원을 오셔야 할 것 같아요"하며 자세한 설명을 한다. 약간의 이상 소견? 그 약간이 어느 정도의 약간일까? 약으로 치료할 수 있을 정도? 아니면 시술할 정도? 아니면 수술만 하면 완치할 정도? 간호사는 계속해서 친절한 목소리로 대장에 혹은 위에 혹은 갑상선에 생긴 약간의 이상 소견 때문에 똑같은 내용을 두 번 세 번 반복하고 있다. 환자를 안심시키려고 노력하는 간호사는 아무 잘못도 없는데 듣고 있던 나는 아무 이유 없이 부아가 치밀고 미간이 찡그려진다. 그리고 자꾸만 내 맘 속에서 입 밖으로 나오지 못하는 시비를 건다. 약간의 이상 소견이 뭔데? 정말 약간이야? 그 약간이 설마 항암치료 받아야 하고 입원해야 한다는 건 아니지? 병원에서 말하는 그 '약간'이 얼마나 많은 환자들의 가족을 슬프게 하고 있는지 알고는 있지?

한참 동안이나 계속된 이 싸움의 결론은 내가 이상한 사람이라는 거였다. 소식 없는 남편을 기다리며 애꿎은 간호사와 혼자 싸우고 혼자 달래고 혼자 체념하는. 그 순간의 나는 염치도 없고 양심도 없는 불량 보호자 그 뿐이었다.

이렇게 병원은 멀쩡한 사람을 조급하게 만든다. 기다릴 수 없었던 내가 틈만 나면 해대는 질문에도 간호사들은 당황하지 않고 나의 예상 행동을 알고 있듯이 건조하고 담담하게 그 상황을 설명한다. 그리고 잠시 기다리다가 환자와 함께 설명을 들으라고 한다. 이분들이 더 바쁠 텐데. 내 생각만 했던 순간이 무안하고 미안했다. 하지만 그래도, 내가 아무리 몰상식한 사람이라 해도 진짜 아무 일도 없다고 얘기해 주면 좋겠다. 환자가 아팠을 때 나타날 수 있는 최악의 순간까지 모두 말하지 말고 대개는 괜찮으니까 걱정 말라고 해 줬으면 좋겠다. 당장이라도 큰일이 날 것처럼 그렇게 겁을 주지 말았으면 좋겠다. 물론 병원의 입장을 모르는 것은 아니다.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나타날 수 있는 모든 부작용을 고지할 의무가 있으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난 병원이 확신 없는 10%에 대해 불안에 떨게 하지 말고 확신하는 90%에 기대서 안심하라고 얘기해 줬으면 정말 좋겠다.


마취에서 깨지 못하는 남편 옆에 앉았다. 곤히 자고 있는 모습이 안쓰럽다. 지금쯤 남편은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 혈압은 정상인지 그래프는 예쁘게 잘 그려지고 있는지 맥박이 너무 빨리 뛰지는 않는지 호스가 빠져 있는 것은 아닌지 살펴보게 된다. 그리고 검사만 잘 끝내면 무엇이든지 다 해 줄 생각으로 남편의 얼굴을 들여다본다.

결국 남편은 장에서 용종 두 개를 떼어냈다. 얼마나 다행인지 안도의 한숨과 함께 저절로 웃음이 났다. 아까까지 못마땅했던 간호사의 목소리도 사심 없는 친절로만 들리고 남편도 오늘 보니까 이렇게 잘 생겼을 수가 없다. 옷을 갈아입고 진료비를 내고 내가 운전하는 차에 남편이 올라탔다. 그리고

"배고파~~ 빨리 죽 먹자" 라며 인상을 찌푸린다. 내가 오후까지 수업을 해서 지금까지 아무것도 먹지 못했다고 투덜대는 목소리다. 식당만 보이면 아무 데나 들어가 아무 거나 막 먹을 기세다. 용종을 떼냈으니까 집에 가서 흰 죽 끓여서 먹어야 된다고 말하는데 '욱' 하고 내 가슴 밑에서 뭔가가 치밀어 올랐다.


병원은 들어갈 때와 나올 때가 너무도 다른 이상한 나라다. 건강 검진받아야 하는 남편은 사랑하는 내 반쪽이자 눈에 넣어도 안 아픈 신랑이지만 검사를 끝내고 나온 내 남편은 평생을 토닥거리며 싸워야 할 웬수 중에 웬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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