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원에서의 단상

-엄마와의 병원 데이트-

by 가시나물

병원에서 제일 부러운 사람은 환하게 웃으며 병원문을 나서는 사람이다. 검사 결과가 좋았는지 아님 병이 모두 다 나았는지 모르겠지만 가족들 얼굴이 승자의 얼굴이라면 더더욱 그렇다. 그 다음으로 병 때문에 온 것이 아니라 건강 검사를 받으러 온 것 같은 사람들이다. 대개는 걸음도 힘차고 병원을 누비는데 거칠 것이 없다. 별 증상이 없겠지만 혹시~~ 설마~~는 드문드문 그들의 얼굴에 두려움과 초조함을 살짝 스치게 만든다. 이도 저도 아닌 순위지만 그래도 조금 나은 측에 드는 사람은 병세를 알고 그간의 경과를 보기 위해 병윈을 찾은 사람들이다. 이미 병세는 각오를 했던 것이고 전보다 좋아졌는지 더 나빠졌는지에 따라 표정이 다르다. 마지막으로 정말 안타까운 사람은 처음 진료를 보러 와서 어떤 병명인지를 선고받고 진찰실에서 소리죽여 울며 나오는 자녀들과 그 부모님이다. 가족끼리 서로 괜찮다고 격려는 하지만 눈이 빨갛게 부어 있고 말도 하지 않은 채 서로의 눈길을 피하며 병원을 나선다. 병원에서 승자냐 패자냐 나누는 것도 이상하지만 진료를 기다리며 지나가는 사람들의 여러 모습들을 관찰하다 보니 이렇게 저렇게 생긴 버릇이다.

5_jdhUd018svc1ocsvmr7nsy7f_sd9t9g.jpg 문만 쳐다본다. 간호사들이 나올 때마다 혹시 엄마가 보이나 두리번 거리게 된다. 검사실은 무섭다

한참을 멍하니 사람들을 쳐다보다가 오늘 내가 병원을 찾은 이유에 퍼뜩 놀라게 된다. 엄마의 이름이 불리고 분홍색 환자복을 입은 엄마가 자기공명영상촬영실로 빨려들어간다. 허둥거리는 뒷모습에서 엄마의 불안함이 느껴진다. 저 안에서 엄마는 과연 무슨 생각을 할까? 엄마의 입버릇처럼 '이제 죽어도 여한이 없다', '하늘이 부르면 가면 된다'를 말씀하시지만 누구도 함께 할 수 없는 저 큰 원통 안에서 엄만 무슨 상상을 하고 계실까? 기다림의 시간이 한 시간 남짓~ 검사 시간은 또 얼마나 걸리려나~ 췌장에 혹이 발견됐다는 선고를 육개월 전에 받았고 오늘은 그 혹의 크기를 보기 위해 병원을 찾았으니 나는 병원 안 레이스에서 몇 위쯤일까라는 어이없는 상상을 한다. 바쁘다를 입에 달고 사는 딸이 병원에 데려다주고 그냥 가버렸을까 걱정된 아빠는 검사 받는 곳은 1층이라고 잘 찾아가라 전화를 하셨다. 자기를 못 믿느냐며 투덜대셨지만 내심 남편의 전화는 힘이 되어 주었을 것이다. 더구나 오늘은 딸이 처음부터 끝까지 함께 하고 있지 않은가. 엄마의 얼굴에 안도의 표정이 스친다. 역시 병원은 딸과 함께 와야 하는 모양이다. 내 옆에 딸 둘의 부축을 받으며 등장한 어느 아버지의 얼굴엔 조금의 긴장감도 없다. 딸 하나는 지팡이를 쥐고, 딸 하나는 유난히 하얀 피부의 아빠 머리를 쓰다듬으며 병원에서의 일정을 설명하고 등을 쓰다듬는다. 말은 하지 않지만 여기 저기서 부러움의 눈길이 쏟아진다.

병원엔 유독 노인들이 많다. 노인들도 많지만 노인들이 의사 앞에 가기까지 거쳐야 할 관문도 많다. 번호 대기표를 뽑아 줄을 서야 하고, 순서대로 채혈을 하고 검사실을 거치고 진료할 과를 찾아가 접수를 하고 의사를 만난다. 접수를 할 때도 사람보다 기계들을 먼저 대해야 할 때가 있다. 수많은 화살표와 번호들이, 낯선 단어들이 노인들을 당황시킨다. 탈의실 마저 잠금 장치가 비밀번호를 설정하게 되어 있다. 예전처럼 열쇠를 돌려 잠글 수 있으면 좋으려만 그동안 엄마는 잠그는 방법을 몰라 가방을 가지고 다녔다고 하니 기가 막힐 노릇이다. 그래서 처방전을 뽑고 예약지를 뽑는 기계 앞에서 씨름을 하는 노인들이 남 같지 않다.

검사실로 들어가는 사람들의 모습을 본다. 입원실에서 내려온 꽃이 달리 비니를 쓰고 온 중년의 아줌마는 든든한 남편이 휠체어를 밀어 작별을 고했고, 까만 단발머리 소녀도 누구의 도움 없이 검사실로 불려 들어갔다. 그리고 그 검사실은 숨참기가 잘 안 돼서 고생을 했다는 엄마를 토해냈다. 긴 레이스를 무사히 마친 엄마가 아무 문제 없이 나와줘서 너무 감사했다. 그래서 그런지 엄마의 목소리에 힘이 들어가고 목소리가 높아졌다. 아이가 주사만 봐도 기겁을 하고 뱀을 본 아까씨가 질색팔색을 하듯 엄마도 검사실과 병원이 어지간히 지긋지긋한 모양이다.

병원에서의 몇 시간은 이렇게 많은 생각을 하게 했다. 병원에서의 승자는 재벌도 국회의원도 대통령도 아니다. 병을 이긴 사람, 그 보다는 아무 이상이 없는 사람, 또 그 보다는 지금 병원에 없는 사람, 그보다 더더더는 병원에 올 필요가 없는 사람들이다.

병원엔 '슬기로운 의사 생활' 속 현명한 의사들이 있다. 그리고 그들과 함께 하는 수많은 간호사와 직원들이 함께 한다. 각각의 사연들을 가지고 때론 남편과 때론 아들과 때론 딸과 떄론 혼자서.......... 병원을 찾는 안타까운 환자들이 많다. 그리고 그곳엔 점점 거인국의 걸리버가 되어가는 우리들의 어머니와 아버지가 계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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