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측근 열전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가시나물 Aug 26. 2020

[친구]사인사색 남편 사용 후기

-남편과 이십 년 넘게 살아보니~~-

친구들과 펜션을 찾았다. 코로나로 맘 편히 커피 한 잔 못 마신 지 삼 개월이 넘다 보니 몸도 근질근질 입도 심심한 터에 동창 네 명이 모이기로 의기투합을 한 것이다. 아무도 찾지 않는 펜션에 쳐 박혀서 밤새 실컷 수다나 떨고 오자. 일사처리로 진행된 네 여자의 집콕 탈출은 그렇게 날짜를 정하고 보니 초등학교 첫 소풍인 양 설레기도 하고, 들뜨기도 하고 뭘 해 먹을까가 제일 큰 화젯거리가 되면서 하루 종일 카톡에 불이 났다.


우리가 다니던 중학교는 신설 학교라서 첫 입학생이 1학년 180명이 전부였다. 남학생 반 2개, 여학생 반 1개. 그래서 1학년이 끝나면 학교는 1학년 2학년이 있었고, 2학년이 끝나야 1,2,3 학년을 갖춘 학교가 되었다. 그런데 우리 다음 회부터는 여학생 남학생 반을 각각 2개씩 만들어서 우리 1회 여학생 반은 그야말로 외동딸(?) 고명딸(?) 같은 신세였고, 후배들에겐 무서운 시누이쯤(?) 뭐 그런 자리였다. 그 덕분에 우리 3반은 60명이 3년 내내 같은 반을 해야 했는데 그게 그리 수월 치는 않았다. 지금이야 웃고 떠들지만 그때는 한 번 토라지면 3년을 계속 가는 거고, 끼리끼리 뭉치면 웬만하면 부서지지 않았고 한 번 일등은 거의 삼 년을 일등이어서 반 등수도 거의 변동이 없었던 듯싶다. 특히 그때는 키 작은 앞자리 , 키 큰 뒷자리 파가 있었는데 나는 키 작은 앞자리였다. 앞자리  아이들은 키는 작았지만 의외로 공부 잘하는 녀석들이 많이 포진해 있었고(그렇다고 내가 공부를 잘했다는 것은 결코 아니다), 뒷자리는 키도 큰 데다 언니 같은 포스에 체육부장 같은 한 성깔 하는 녀석들이 있었으니 감히 말 건네기도 어려웠던 기억이 있다. 그런 우리들이었는데 나이 마흔이 넘어 동창회에서 만난 친구들을 보는 순간 잠이 확 깨는 기분이었다. 그렇게 커 보였던 친구들이 세월이 흘러서 그런지 키도 다 거기서 거기고, 성격도 다들 고만고만이었다. 삼십 년 만에 만났는데도 어느새 우리들은 예전 중학교 시절로 그대로 돌아가 밤새워 돌아가는 술잔 가득 추억을 따랐다. 가끔 추억이 넘치다 보니 큰 소리도 나고, 오해를 하기도 하고, 풀리지 않았던 수수께끼도 서로 주거니 받거니 흥이 나고 즐거웠던 첫 동창회였다.


동창회를 나가면서부터 다시 친구들이 재편성되었다. 이제는 키 작은 키 큰이 아니라 만나다가 합이 맞고 성격이 맞아 가끔 얼굴을 보다 보니 뭉쳐진 게 네 명이었다. 키 작은 아이 둘, 키 큰 아이 둘. 사는 곳도 다르고, 직업도 다르고, 성격도 달라서 강사부터 면세점 팀장, 어린이집 원장, 건축사무소 사모님까지 공통점은 많지 않아 보였지만 그래도 너무 즐거웠다. 이야기를 하다 보면 집중되는 법이 없이 자기 얘기만 하고, 듣고 싶은 것만 듣고, 그러다가 다시 정리해서 되돌아오는 시간을 너무도 행복하게 보내고 있다. 나이가 들면 이렇게 되는 모양이다. 이대로만 쭉~~ 가자고 늙어서도 00야~~ 부를 수 있는 그런 사이가 되자고. 앞으로의 만남이 기대되는 이들이다.


 p는 어린이집 원장이었다. 지금은 제맘대로 어린이집 강사를 한다. 원장님일 때보다 훨씬 마음이 편하고 좋다며 어린이집을 폐원하고 조금 쉬더니 바로 취직을 했다. 그녀의 남편은 공무원이고 네 살이나 어리다. 능력자다. 내 친구는 털털하고 괄괄하고 추진력 갑이어서 다소 남성적인 반면 그의 남편은 꼼꼼하고 자상한 편이라고 한다. 그래서 아침 운동을 갔다가 트럭에서 떨어뜨린 야채를 모조리 주워다가 집에 가져오고, 사무실 앞 텃밭을 일구어 야채란 야채는 모두 심고 배낚시 갔다가 손질 다 ~~ 한 생선을 가져와서 냉장고가 작다고 불평을 한다. 남편과 둘이서 집에서 맥주를 마시다가 더 마시고 싶다고 하면 주저 없이 슈퍼엘 가서 막걸리며 맥주를 사 온단다. 그리고 그 술자리 뒤처리는 세 자녀와 남편의 몫이라고 하며 그래도 뭔가 부족하다는 뉘앙스다. 아이고~~ 복이 터졌다고 우리는 입을 모은다. P의 남편은 달콤달콤 하기가 우리가 펜션에서 먹은 새콤 달콤한 포도와 망고를 닮았다.

 S는 건설업을 하는 남편 사장을 돕는 사모님이다. 편안하고 자상하고 따뜻하지만 소주를 좋아하고(아니, 일주일에 5,6일을 마신다) 가끔 아주 가끔 고집을 부리거나 깽판을 치는 모양이다. 남편이 새 차를 사서 비닐을 떼지 않아 차를 탈 때마다 멀미를 했던 친구는 몇 번 남편에게 비닐을 떼 달라고 부탁을 했다 한다. 하지만 남편은 미동도 하지 않은 모앙이다. 화가 난 친구가 운전하는 남편 옆에서 비닐을 조금 떼 버렸더니 남편이 갑자기 차를 세우더니 차에서 내리라고 윽박질렀고 자존심 상한 S는 그 자리에서 차에서 내려버렸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날 밤 그녀의 복수가 시작되었다. S는 남편 차 문을 몰래 열고 눈에 보이는 비닐이란 비닐을 모두 다 떼어버렸다고 속이 후련했다고 고백했다. '헉'  친구가 이해도 되면서 우습기도 하면서 슬프기도 하면서 웃다가 화를 냈다가 했다. 후일담을 들어보니 며칠 후 남편 친구가 그 차를 탔다가 무슨 비닐이냐며 남은 비밀을 모두 떼 버렸다고 한다. "그 친구보고 차에서 내리라고 했냐?" 다그쳤더니 남편은 "친군데 어떻게 그러냐?" 했다며 어이없어했다. 웃어야 할지 울어야 할지 모를 일이다. 365일 중에서 360일을 술 마신다며 걱정 반 속상함 반이다. 그래도 평상시엔 착하기 그지없다고 마무리한다. 그녀의 남편은 P가 가져온 소라 꼬치 같다. 여러 맛이 함께 있어서 쫄깃쫄깃 소라와 파프리카의 상큼함이 조화를 이룬다.

H는 면세점 팀장이다. 우리 중에서 제일 예쁘고 세련됐다. 그 손을 보면 집안일 하나 해 보지 않은 듯하지만 친구는 나름 친정어머니의 구박 아닌 구박과 남편에 대한 배려로 음식이면 음식, 집안일이면 집안일을 도맡아 한다고 했다. 이렇게 맞혀주는데 뭐가 문제랴 했지만 그 남편 역시 술을 좋아하고 천상천하 유아독존인 모양이다. 자신의 취미 생활을 위해서 과수원에 집을 지을 때도 편백나무를 사다가 솜씨 좋게 꾸며놓고 일요일이면 그곳에 가는 것을 낙으로 삼지만 친구는 그곳이 싫다고 했다. 화장실이 밖에 있어 무서워 싫고 한 시간 차를 타고 가야 하는 것도 싫어서 안 가고 싶지만 따라가야 하고 챙겨야 한다는 것이다. 남편을 그렇게 만든 건 자기 탓이라며 친구는 '에휴'를 연발한다. 과수원 사진을 보던 우리들이 입을 모아 솜씨가 좋다며 우리 가구도 만들어 달라고 징징 거렸더니 '아이고 말아 말아'하며 손사래를 쳤다. 내 친구는 남편이 화를 내기 전에 자기가 먼저 굽히고 먼저 해주고 먼저 배려해서 그래도 싸우지 않고 지금이 유지가 되는 것 같다면 쓴웃음이다. 골뱅이를 곁들인 비빔 면 같다. 골뱅이가 맛있으려면 면에 간이 잘 되어 그를 뒷받침해야 한다. 어떤 맛을 강하게 하느냐에 따라 맛이 달라지듯이 H의 손길과 내조로 결정이 되는 골뱅이는 참 행복하겠다.

 마지막 J. 나다. 은행원인 내 남편은 요즘 술자리가 잦다. 손님도 접대해야 하고, 물류센터 직원도 만나야 하고, 직원들과 회식도 해야 한다. 부인 말에 ' NO'를 해 본 적 거의 없는 순둥이지만 이번에 새 차를 사는데 자기가 맘에 든 모델을 정하고 꿈쩍을 하지 않고 있다. 나는 둘 다 차가 오래됐으니 그 차 한 대 값이면 두 대를 모두 새 차로 바꿀 수 있다고 아무리 달래고 얼래도 평상시 보이지 않던 고집을 부린다. 그래, 20년을 탔으니 이번에 내가 져야지 하지만 잘 안 된다. 가끔 술을 마시면 집 문과 씨름을 한다. '삐삐 삐~~~~~~' 번호가 틀려서 몇 번을 다시 눌러야 들어온다. 몇 년 전엔 새벽 한 시에 다른 동 초인종을 눌러서 내가 창피하다고 이사 가겠다고 으름장을 논 적도 있다. 물론 가끔 술에 취해 담벼락과 씨름을 하거나 길이 갑자기 일어나서 이마와 부딪혀서 얼굴이 엉망이 된 적도 한 번 있었다. 친구들은 성격이 너와 닮고 순하니 그런 건 말도 말라 하지만 나는 '에휴'다. 우리가 아는 그 맛 '치킨'이다. 안 먹어봐도 짐작이 되고 언제나 변하지 않는 맛이다.

 이제 쉰이니 결혼한 지 20년에서 25년쯤 된 친구들이다. P는 가정적이지만 우리가 형제 중에 제일 능력이 안 된다고 하고 S는 매일 술 먹고 이상한 고집을 부리지만 성격은 좋다고, 하지 못하게 한 일은 없다고, 그래서 지금까지 산 거라고 하고 H는 독불장군이라고 인상을 쓰면서도 남편과 전화할 때는 목소리가 그렇게 애교스러울 수가 없다. 나는 술 먹기만 하면 다른 사람이지만 그래도 편하고 친구 같아서 산다고 한다.


아직까지 아무도 이혼할 생각이 없고, 시부모에게 반품할 생각도 없고 따로 살 작정도 아니다. 여자들이 보는 남편 흉은 결국 자랑이라더니 우리도 틀리지 않다. 매번 만나서 까르르 웃게 되는 이야기 속 소재는 절반이 남편이고, 화가 나서 안주거리로 삼는 것도 나머지 절반이 남편이다. 그러면서 모두들 맘 속으론 '그래도 다른 남편보단 내 남편이 최고다'라고 생각하고 있을 것이다.

매거진의 이전글 [남편]  남편은 왜 이어폰을 끼고 잠을 잘까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