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 때문에 잠을 빼앗긴 남편-
"커거걱 컥"
깜짝 놀라 잠을 깼다. 어디서 나는 소리지? 눈을 크게 뜨고 주위를 둘러보았지만 코가 막혀서 공기 들어가는 곳이 좁아져 나가야 하겠다고 아우성치는 소리의 출처는 도무지 찾을 수가 없었다. 아까 잠깐 나도 모르게 소파에 누워 얼핏 잠이 들었던 거 같긴 한데. 설마 설마 주위를 둘러보니 내 주위엔 아무도 없었다. 젠장. 내 코골이 소리다. 매일매일은 아니지만 요즘 살이 찌고 몸이 둔해져 가니 조심하라는 신호를 내 몸이 코골이로 보내는가 보다. 그렇지 않아도 옆에서 잠을 자고 있던 남편을 아침이 되어 가끔 거실 소파에서 발견할 때가 종종 있었는데. 소파 위에 이불을 돌돌 말고 자는 남편에게 텔레비전 보느라 그랬구나 하며 잔소리를 하곤 했었는데. '아뿔싸' 남편을 거실로 내몬 주범은 진짜 나의 '코골이'였던 모양이다.
"왜 여기서 자고 있어?"라고 내가 물으면
처음엔 대답을 주저하다가 그 이유를 모를 리 없다며 웃음반 핀잔 반으로 엉거주춤 몸을 일으킨다. 그리곤 피곤해 죽겠다는 듯 얼굴을 찡그리는데 괜히 나 더 미안하라고 그러는 듯해서 가끔 얄미울 때도 있다. 절대 그럴 리 없다고, 나는 얌전히 자는 편이라고. 몸질도 하지 않는 내가 코골이는 무슨 코골이냐고 항변을 했었는데 나의 판단 착오였던 모양이다.
그래서 그런지 요즘 남편은 이틀에 한 번씩 달고 단 잠을 맛있게도 잔다. 퇴근을 하고 집에 오기가 무섭게 초저녁부터 세상모르게 코까지 골며 잠에 빠지는 것이다. '포노 사피엔스 남편'인지라 평소엔 핸드폰 삼매경으로 경제, 시사, 문화, 연예 소식을 한 바퀴 다 돌고 텔레비전 뉴스에 축구 생중계까지 모두 보고서야 일과가 끝나는 거라서 늦게 잠을 자기도 하지만 그래서 피곤하다고 억울해하지는 않았는데 요즘 누구 때문에 하루 걸러 하루 푹 세상 누가 업어가도 모르게 그렇게 잠을 잔다. 입까지 크게 벌리고. 그럴 땐 '피곤했구나'하고 불도 꺼주고, 돈 벌어오느라 고생했다 생각하며 넘겼었는데. 오늘에서야 남편의 달고 단 잠을 자게 하는 실체와 맞닥뜨리게 된 것이었다. 맙!소!사!
나 때문에 거실에서 잤냐고 되묻는 나에게 남편은 어이가 없다는 듯 고개를 절레절레 흔든다. 자기가 얼굴을 이리저리 돌리는 거 모르겠냐고, 왜 그렇게 코를 고냐고. 자다가 코골이에 놀라 깨면 다시 잠을 잘 수가 없고, 계속되는 코골이에 결국 방을 나오게 된다는 볼멘소리에 미안한 마음은 숨겨두고 나는 사랑이 식었느니, 그것도 못 참느냐느니, 당신은 코 안 고냐느니 몇 배로 되받아친다. 그러면 억울하다는 듯이 꼭 한 번은 녹음해 놓겠다며 남편은 믿지 않는 나를 어이없어했는데. 매일은 아니지만 일주일에 두 번 정도는 매번 그런 것 같다.
사실 그때만 해도 나는 내 코골이가 이렇게 큰 줄 미처 몰랐다. 그냥 아~~ 코골이구나 느낄 정도라고만 애교(?)스러울 정도라고 생각했는데 나의 큰 오산이었다. 오늘 내 코골이에 내가 놀라 소스라쳐보니 아이쿠야, 남편의 괴로움을 조금은 알 것 같다. 누구는 짝의 코골이가 음악으로 들리고, 다른 사람의 코 고는 소리는 못 견디겠지만 남편 소리는 안 들린다고 하던데. 우리 부부는 둘 다 코를 골면서 둘 다 적응하지 못하는 천생연분인 모양이다.
그렇게 기분 좋게 맥주 한 두 캔 정도 한 날은 안 봐도 비디오고, 늦게 잠을 자거나 피곤했을 때도 어김없이 나의 코골이가 시작되었다. 그래서 그 날부터 남편보다 늦게 자기로 했다. 먼저 자고 있으면 내가 나중에 코를 골아도 모르겠지라는 얄팍한 계산을 했던 것인데, 늦게 자는 남편보다 더 늦게 자기란 쉽지 않은 도전이었다. 나이가 들어가니 초저녁 잠이 많아지기도 한 터였고, 수업 준비를 안 하니 침대에서 뒹굴거리는 시간이 많아져서 나도 모르게 스르륵 잠이 드는 것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남편이 갑자기 큰 발견을 했다는 듯이 웃음기 가득한 얼굴로 외쳤다.
"이어폰을 끼고 자면 되네"
"어? 왜 귀 안 좋아지게 이어폰을 끼는데?"
"어~~*** 코골이 소리가 안 들려~"
콰광~~ 충격을 받은 내 마음의 소리다. 남편 손에 들려 있는 휴대폰과 이어폰을 보면서 뭐라고 대답해야 할지 잊어버리고 그냥 둘이 마주 보고 한참을 껄껄 웃었다. 진짜 이어폰이 효과가 있기는 한 건지 의심스러웠지만 저렇게 해맑게 자신만의 방법을 찾았다 좋아하니 뭐라 할 말이 없다.
그 뒤로 남편은 가끔 이어폰을 끼고 잠을 청한다. 말리고 싶지만 아직은 별 뾰족한 수가 없다. 잠을 방해하기가 너무 미안해서 방을 따로 써 볼까 하고 마음에 없는 소리도 하지만 괜찮다고 하는 남편에 새삼 흐뭇해하며 못 이기는 척 그냥 잔다. 하지만 잠이 부족해 판다가 되어가는 남편 얼굴을 볼 때마다 안쓰럽긴 하다. '피곤해'를 달고 사는 내 남편에게 코골이 하는 아내를 둔 내 남편에게 운명이라 여기라며 심심한 위로를 보낸다.
이어폰이라는 획기적인(?) 남편의 발견에 나는 웃어야 할까 울어야 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