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가시나물 Dec 06. 2022

대학나무에서 애물단지로

-제주는 지금 귤과의 전쟁 중~~~-

 우리 어머님 기억 속의 귤은 시어머니에 대한 서운함이었다. 시댁 동네에서 처음으로 귤농사를 짓던 해, 시할아버지께서 손주 세 명을 과수원으로 데려가 엄포를 놓셨단다. 절대 귤을 따 먹으면 안 된다고. 너무도 비싸고 귀한 과일이었기에. 그것을 보는 시어머니는 시할아버지에 대한 서운함으로 맏이였던 우리 신랑을 과수원으로 데려가 하나만 따먹어버리라고 재촉하셨단다. 하지만 지금이나 그때나 고지식하긴. 머리를 절레절레 흔드는 아들을 보자니 더 부아가 치밀었다며 웃으며 말씀하시곤 했다. 아무리 귤이 중해도 손지(손자)한테 귤 하나 못 따게 했다며. 끝이 사라져버리는 어머님의 말엔 그간의 섭섭함이 담겨 있었다.  


 이렇게 제주에서 귤은 자식들 대학까지 보낼 수 있었던 귀한 과일이었다. 늦가을이 되기 시작하면 섬 전체가 노랗게 노랗게 물들어가며 과수원엔 귤 따는 아주머니들의 수다과 콘테나를 나르는 일손으로 떠들썩하고, 그렇게 딴 귤은 아이들의 배를 터지게 할 정도로 먹을 수 있었으니 가끔 친구들의 손바닥은 노랗게 물들어 있기 일쑤였다. 학교에서도 집에서도 겨울은 언제나 귤로 풍년이어서 다른 과일이 부럽지도 않았던 것 같다. 그렇게 푸대채 담겨 있던 귤을 먹고 먹고 또 먹어도 남은 귤로는 귤잼을 만들었다. 탱글탱글한 귤 속살이 설탕과 만나 만들어 내는 색깔은 곱기도 하고, 단맛 안에 느껴지는 쌉싸름한 맛에 하얀 식빵이 남아날 때가 없었다. 물론 그것도 겨울이 모두 지나 한가해져서야 맛볼 수 있는 최고의 간식이었다. 칼이 없어도 되고, 포크가 없어도 되니 먹는 것도 그렇게 쉬울 수가 없었다. 귤 밑을 손가락으로 반을 갈라 껍질을 4등분 해서 몇 개씩 한꺼번에 먹었다. 우리가 어렸을 적엔 귤을 씻는다는 것도 이상한 일이었다. 시간이 흐르고 농약에 대한 두려움이 생기기 시작하자 언제부턴가 갑자기 귤을 씻어서 물기를 빼고 바구니에 넣어두어야 될 것 같은 과일이 되었지만 지금도 나에게 귤은 서민적인, 아주 편한 과일 중의 하나다.


그런데 올해는 얘기가 다르다. 그동안 귀하게 여겨졌던 귤이 올해는 귤값도 폭락했고, 귤을 먹는 사람도 많이 줄어서 사려는 중간 상인들이 없다고 아우성이다. 시댁이나 친정이나 모두 과수원을 하는데 친정은 수확할 양이 적어 오히려 다행이라는 분위기고, 시댁은 거래하던 사람과 잘 얘기가 되지 않아 몇 날 며칠 애를 태웠다. 친정은 동생이 택배 작업을 해서 비료 값 정도는 건진 것 같은데, 시댁은 해결이 되지 않아서 며칠을 고민했다. 형제 모두 직장을 다니고 있고, 나 역시 주말에 더 바쁘니 서로 시간이 맞지 않아 누가 과수원에 가서 따야 하는지 의논하는 것도 일이었다. 설상가상 어머님이 사고가 나서 차가 폐차가 돼버려서 기동력이 없으니 더 난감했다. 남편은 이제 연세도 있고 하니 차는 절대 안 된다고 못을 박았고, 귤은 형제들이 알아서 따겠다고 선전포고를 했다. 그리고 얼마 뒤부터 난 시어머니와 남편 사이의 전령이 돼서 묘한 감정싸움에 휩싸이게 됐다. 귤 농사를 잘 모르니 누구 말이 맞는지 도통 알 수가 없었다. 어머니는 눈이 내리기 전 11월 중순부터 따야 되니 빨리 인부를 빌려야 한다고 하고, 남편은 당도가 더 있으려면 12월에 따야 하고 인부를 빌면 인건비도 나오지 않는데 말도 안 된다고 맞섰다. 11월 말에 주말 수업이 끝나기 시작하니 나도 이젠 주말에 과수원으로 출근해야 하겠구나 하며 우울해할 때 마지막 주 금요일 드디어 귤을 팔았다는 소식을 전해 들었다. 비료 값도 나오지 않는 값에 그냥 팔아버렸다고. 어머니의 목소리에 힘이 없었다. 밭떼기로 팔면 상인이 와서 모두 따고 가져가니 우리들이 할 일이 없다. 어머니께선 너희 부부 싸움할 것도 걱정이 되고, 주말에 쉬는 자식들 과수원으로 모두 출근시키는 것도 힘든 일이라며 결단을 내려 버린 것이다. 포르투갈을 이긴 우리 축구 대표팀이 극적으로 16강에 오른 것처럼 나도 극적으로 나의 주말을 지켜낸 셈이다. 하지만 기쁘진 않았다. 일 년 내내 농약 치고, 정전하며 과수원을 돌본 보람이 없다고 생각하니 씁쓸했다. 어쩌다 귤이 이런 신세가 되어 버렸을까.

"누나, 이젠 귤이 애물단지가 돼버렸어"

라고 말하는 동생의 말이 맞는 거 같다. 올해는 특히 단감이 너무 많이 열리고 사람들이 단감을 많이 먹어서 귤이 팔리지 않는다고 하던데, 이제는 천혜향, 황금향 등 귤 품종도 다양하고 열대 과일에  비닐하우스 딸기가 수확될 거라니 귤이 이래저래 자리를 차지할 곳이 없는 모양이다. 갑자기 우리 집 식탁이 눈에 들어왔다.  귤 한 바구니, 단감 한 바구니, 밤까지 자리를 차지하고 앉아 있는 것이 괜히 얄밉다.  


저 귤 하나에 일 년 수확을 기대했을 부모님들의 마음이 열려있고, 귤 수확이 끝나면 코트 하나 얻어 입었던 어릴 적 기억이 달려 있다. 주렁주렁 매달려 빨리 따 주기만을 바라는 감귤도 기꺼이 당신네들에게 몸을 던질 준비가 되어 있다고 하는데, 언제까지 제주에서 귤이 희망으로, 풍요로움으로 여겨질지 잘 모르겠다. 대학나무에서 애물단지로 너무 급락해버린 감귤장이 너무 아쉬운 밤이다. 귤 값이 반등해서 제주의 귤 따는 가위 소리에 신명이 담긴다면 얼마나 좋을까?

매거진의 이전글 까마귀 식게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