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수원을 쳐다보며 혼잣말을 읉조리는 엄마를 쳐다보니 엄마는 뭐 별 일 아니라는 듯 눈을 떼신다. 줄곧 과수원을 봤으면서. 주말만 되면 엄마의 전화 소리로 잠을 깬다. 일주일 내내 수업하는 것도 아니면서 주말은 그 이름대로 늦게까지 잠을 자줘야 주말 아니던가. 그래서 알람처럼 비슷한 시간에 울리는 전화 소리는 내 이름을 부르는 '엄마'의 목소리 그대로였다. 전화를 확인하면서 짜증이 나기도 했다. 내용은 별거 없다. 뭐 하고 있냐고, 과수원 와서 저 단감 좀 나눠주라고. 때로는 나를 달래는 목소리로 가끔은 화난 목소리로 엄마는 나를 조련한다. 또 단감 타령이냐고 툴툴거리며 집을 나선 지 몇 주 되는 거 같다.
단감 농사를 짓는 것도 아닌데. 과수원 구석 대여섯 그루가 있는 단감나무에선 가지가 휠 정도로 많은 감이 열렸다. 엄마 말로는 크기가 잘아서 더 많이 열렸다는 거다. 많이 열려서 작은 건가? 그래서 그런지 몇 날 며칠 따도 따도 나무엔 감이 그대로니. 감은 익어가면서 나무는 붉어지는데 엄마 속은 까많게 타 들어가는 모양이다. 빨리 따서 저 붉은 것들이 없어야 할 텐데. 아들도 바쁘고 딸도 바쁘고. 두 내외가 부지런히 아침이면 과수원으로 출근해서 감 따기 작전을 펼친 모양이었다. 나무가 노인네 키보다 훨씬 크니 위에 있는 것은 딸 수가 없어 가지째 잘라서 밑에서 따고, 많이 나를 수 없으니 하루에 몇 바구니 채울 수 없어 안달이 났다.
"엄마 좀 천천히 따도 돼. 누가 잡아가는 것도 아닌데 왜 그래?"
내 말이 끝나기도 전에 엄마는
"야이, 무슨 말이고? 놈들이 다 우슨다이" (무슨 말이냐? 남들이 다 웃는다)하며 화를 내신다.
아니, 남들이 보든지 말든지 우리 집 과수원 일인데 왜 남 눈치를 봐야 하냐고 토를 달며 애꿎은 입술만 삐죽삐죽 대는데, 엄만 내 말엔 아랑곳하지 않고 단감나무로 바구니를 들고 진격하셨다. 그리고 매번 내 차 트렁크에 한 포대씩 넣어서 나눠 먹으라 주셨다. 주말 중 하루는 '효도 데이'라고 나름 정해놓고 친정 부모님을 찾고 있는데 요즘 과수원에서의 일정엔 꼭 단감 따기가 들어 있다.
그 단감으로 인심도 많이 썼다. 주변 선생님들부터 후배, 아는 지인들까지 작지만 주황빛을 곱게 내는 단감이 전해졌는데 다들 너무 맛있게 잘 먹었다며 고마움을 전해 왔다. 우리 부모님께 드리라며 누룽지 과자를 보낸 친구도 있었고, 고맙다고 차를 사거나, 밥을 사고, 갓김치를 보내온 지인도 있었다. 결국 엄마 과수원에서 가져온 단감 때문에 내가 더 선물을 받았으니 사실은 내가 덕을 본 게 더 많다. 엄마는 단감을 나눠주는 것도 좋았지만 나무에 붉은 것이 없어져서 시원하다고 하셨다. 목욕탕 뜨거운 물속에 들어가야 시원하고, 아프게 마사지를 받아야 시원한 것처럼 우리 엄마는 과수원 단감이 감귤이 없어져야 시원한 모양이다. 그 시원함 속엔 농부의 게으름을 남에게 알리고 싶지 않은 마음이 들어있을 것이고, 할 일을 다했다는 뿌듯함이 있었을 것이고 무엇보다 나무의 괴로움을 한방에 날려버린 홈런 같은 것이었을지 모르겠다. 농부여서 나무의 몸과 마음을 이해하고 농부여서 철 따라 해야 할 숙제를 모두 끝냈다는 것에 속이 후련한지도 모르겠다.
단감나무 중 단 하나에서 감의 크기가 남달랐다. 그래서 엄마가 붙여준 별명이 '넓적 감'이다. 그 감은 딸내미 먹으라고 따로 포장하셔서 손에 쥐어 주셨다. 이건 다른 사람 주지 말고 너희들만 먹으라고 말이다. 그런 엄마를 보니 동생이 '우리 엄마 참 귀엽지 않아?' 했었는데. 자식을 향한 이기심(?)이 참 귀엽고 웃음이 났다. 나 혼자만 먹겠다고 꼭꼭 약속하고 감을 실었다.
감 하나에 참 많은 생각이 든다. 과수원 자식들은 농부 엄마가 하라는 대로 농부 엄마가 가라는 대로 가고 있는데 정작 사람 자식인 나는 그러고 있을까?
귤을 따기 시작하니 과수원이 점점 초록색이 되어 간다. 초록색 사이사이 주황빛 귤과 단감이 보색처럼 유난히 눈에 뜨였는데, 이젠 주황빛을 찾기가 힘들다. 조금 있으면 저 초록 잎 위에 하얀 눈이 소복이 쌓일 것이다. 그땐 엄마와 벽난로에서 뜨끈하게 군고구마 구우면서 옛날이야기나 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