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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가시나물 Oct 08. 2020

인트로만 중요한 시대?!

'시작'에 대한 단상(斷想)

 지금은 인트로만 중요한 시대인가?  '놀면 뭐하니'를 보다가 든 생각이다. 우리들의 스타였던 '이효리'와 가수 '비' 그리고 '유재석'이 뭉친 그룹 '싹쓸이'가 블라인드로 곡을 선정하는 과정에서 나온 말이었다. '인트로'가 중요하다. '인트로'가 강해야, '인트로'가 좋아야 '인트로'가 궁금해야 짧은 시간의 인상이 곡 후반부까지 이어져 간다는 말이다. 맞는 말이다. 글을 쓰던 연극을 하던 대중들 앞에서 말을 하든 시작은 사람들의 눈과 귀와 마음을 한순간 짧은 시간에 휘어잡고 열어야 한다. 얼마나 '인트로'에서 은 이의 공감을 받느냐가 공연의 성패를 좌우할 것이므로. 그리고 그것이 더더욱 대중들과 소통하고 공감하는 작업일수록 '인트로'에 대한 고민이 깊어질 것이다.

 광고만 보더라도 짧은 시간이지만 강렬한 첫인상을 주기 위해 정말 많은 방법을 도입하고 실험을 하지 않던가.

그래서 글을 쓰는 연습을 하거나 글쓰기 수업을 할 때도 '시작을 어떻게 할 것인가'애 대해 공부하는 부분이 나온다. 시간으로 시작할지, 의성어 의태어로 시작할지, 대화로 시작할지, 격언이나 속담으로 시작할지 등 각각의 방법을 자신의 개성과 함께 주제와 어울리게 선택을 하면 된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렇게 매번 아이들과 이 '시작'에 대해서 끊임없이 설명하고 예를 들어주어도 이상하게 아이들은 선뜻 그 '시작'이란 걸 못하고 머뭇거린다.  마치 일기를 쓰기 시작할 때 '나는'이 주는 묘한 안정감에 '나는'을 써야만 글이 시작되는 것처럼 아이들에게는 의지할 뭔가가 더 필요해 보인다. 아무리 쉽게 생각해라, 어떤 것이든 괜찮다고 다독거려도 아이들은 글의 시작을 쉽게 하려 하지 않는다. 아마도 텅 빈 백지는 글의 방향성을 못 잡게 하는 두려움이거나 쓸 마음이 없는 이들에겐 빨리 해치워버리고픈 골칫덩이일지도 모르겠다. 그런 아이들에게 약간의 조탁을 넣어 한 단어만 툭 던져놔도 아이들은 "아"하며 연필을 든다. 무엇이 이들을 이렇게 어렵게 만드는 걸까? 무엇 때문에 공책 앞에서 주저거리는 것일까?


 가끔 TV에 나오는 경연 프로그램을 보다 보면 가수인 심사위원들이 첫 소절을 듣거나 한 구절을 듣고 당락을 결정할 때가 있다. 첫 소절이 인상 깊어야 계속 듣고 싶은 마음이 나고 다른 이들과 차별화된 뭔가가 있어야 가수로서의 혹은 배우로서의 매력이 있다고 하는데 나는 암만 봐도 모두가 실력자인 것처럼만 보인다. 하지만 처음이 약하고 뒷심이 강한 이들은 이럴 때 어떻게 해야 할까? 자신의 매력을 보여줄 수 있는 부분이 뒤에 있다면 그들은 정말 억울하지 않을까? 제 실력은 클라이맥스에서 터지는 고음에서 보여줄 수 있을 텐데 첫 소절만 듣고 외면을 당한다면 그들의 꿈은, 그들의 미래는 어떻게 돼야 하는 것일까?

 그래서 책을 만들 때 인상 깊은 표지와 구절을 넣고, '맛보기'로 보여주는 홍보 영상에 사활을 걸고 제작하기도 하는 모양이다.


'인트로'. 그 시작이 중요하고 바쁘고 빠른 세상에 끝까지 들어줄 시간이 없고, 너무나도 많은 선택지 중에 하나를 골라야 해서 첫 장과 앞부분을 보고 골라야 함을 모르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목표를 위해 끝까지 달리기 위해선 '인트로'에서 힘을 조금 덜어내야 할 때도 있다. 그리고 마지막까지 힘의 균등한 분배를 통해 골고루 어느 하나 뒤처짐이 없이 함께 어울릴 수 있도록 해야 할 것이다.

 그래서 사람을 볼 때 '첫인상'만으로 결정하지 말고, 책을 만날 때 '제목'에만 혈안이 되지 말 것이며, 영화를 볼 때 어느 영화배우의 출연인지만을 고르지 말고, 첫 발걸음에 너무 많은 의미를 두지 않았으면 좋겠다. 첫걸음을 내딛는 것도 의미가 있지만 두 걸음 세 걸음 앞으로 갈 수 있는 열정이 더 중요할 때도 있으므로. 첫인상에서 몰랐던 진국의 풍미를 여러 번 만나면서 알 수도 있음으로. 그리고 첫 음성에서 몰랐던 반전 매력의 목소리를 뒤에 가서 들을 수도 있으므로. 나 역시 첫인상보다는 진득하니 만나야 나를 더 잘 보여줄 수 있으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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