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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가시나물 Dec 13. 2020

어느 날 '쉰' 너를 만나

-2020년 나의 '쉰'을 마무리하며-

그렇게 대단한 운명까진/바란 적 없다 생각했는데/그대 하나 떠나간 내 하룬 이제

운명이 아님 채울 수 없소/별처럼 수많은 사람들/그중에 그대를 만나/꿈을 꾸듯 서롤 알아보고/
주는 것 만으로 벅찼던/또 사랑을 받고/그 모든 건 기적이었음을

                                                             -이선희 '그중에 그대를 만나' 중에서-


싸한 초겨울 아침, 이선희의 '그중에 그대를 만나'가 방 안을 흐른다. 잔잔하다가 폭풍처럼 휘몰아치는 선율과 애잔하게 흐르는 그녀의 목소리가 잠시 잠깐 시간을 멈추게 한다. 창문을 열었다. 코끝에 시원타 느껴지는 공기의 차가움이 청아하고 맑은 그녀의 음색과 많이 닮아있다. 그 많은 사람들 중에 그대를 알아보고 사랑하고, 그 사랑이 기적이었다, 나의 운명이었다 노래하는 그녀에게 2020년은 어떤 한 해였을까?


 2020년. 나는 '쉰'이 되었다. '마흔'이 될 때는 중년이라는 반갑지 않은 타이틀을 애써 무마해 보려고 '나를 위한 선물이야', '예쁜 마흔이 되고 싶어'라며 요란법석 하게 새해를 맞이했었다. 이래저래 나 '마흔'이라고 대놓고 얘기하는 것이 마치 그 나이가 나한텐 아무 영향이 없다는 듯이, '나는 좀 쿨해요'라고 말하고 싶어서 그랬는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속은 그렇지 않았다. 아쉽고, 겁이 나고, 젊음을 잃어버리는 것 같아 속상했었다. 그런데 '쉰'은 '마흔'에 비해 조금은 담담하고 조금은 여유롭게 맞이할 수 있었다. 어쩌면 피할 수 없음을 받아들인 것도 같고, 마음의 크기가 조금 넓혀진 건지 그건 잘 모르겠지만 '쉰', 그는 어느 날 그렇게 불현듯 나를 찾아왔다.

마치 이리저리 방황하며 여행을 떠났다가 편안한 내 집으로 찾아오듯이, 내가 마지막 머물 곳은 바로 여기라는 듯이 그렇게 조용하지만 자연스럽게 말이다. 그리고 그는 아등바등 시간에 쫓기던 나에게 조금은 관대해지고, 양손 가득 움켜쥐고 있던 욕심을 한 수 푼 덜어내도 행복할 수 있다는 것을 가르쳐 주고 나만이 아닌 내 주변을 돌아볼 수 있는 마음과 여유를 선물했다. 한 걸음 뒤로 물러섰을 때 너무 가까워서 볼 수 없었던 작고 보잘것없는 것에 대한 소중함을 일깨워주고 천천히 삶을 음미하며 살아가는 법을 알려주려 했다. 그래서 가까운 것이 안 보이는 노안을 슬퍼하지 말고 멀리 하늘을 보라 했고, 갱년기가 끝이 아니라 새로운 자유를 누릴 수 있는 기회라 설득했고, 흰머리와 주름살이 그동안 잘 살아왔다는 징표라 나만의 아름다움이라 여기도록 말해주려 했다.   


그/러/나!

나의 '쉰'은 그가 바랐던 여유보단 몇십 년을 한꺼번에 건너뛴 변화와 안타까움과 기쁨이 절묘하게 어우러진, 끝을 알 수 없는 드라마처럼 그렇게 흘러갔다. 이 책 '어느 날 '쉰' 너를 만나'는 이런 나의 복잡했던 한 해를 차분하게 정리해 보고픈 마음이 담겨 기획되었다.

'그중에 그대를 만나'의 노래 가사처럼 그동안 흘려보냈던 많은 시간 중에 '쉰'이라는 시간을 만난 것이 운명이라 생각하고 보듬어 안다 보니, 그 안엔 '쉰'이어서 나를 돌아볼 수 있었던 생각과 이야기들이 있었고, 어른이 되었다고 자신했지만 부모님 앞에서는 여전히 아이일 수밖에 없고, 그 부모님의 노년을 함께 건너가야 하는 아슬아슬한 외줄 타기가 들어 있고, 모든 게 기적이라고밖에 할 수 없는 '쉰'에 시작한 '글과 책'이야기, 그리고 아무도 예측 못했던 '코로나' 불청객의 방문으로 갑자기 바뀌었던 삶이 차곡차곡 쌓여 있었다.

 직업인인 강사로서 아내로서 자식으로서 지난 시간을 돌아보며 고민했던 '나', '쉰'을 대하는 쓸쓸하지만 담담한 마음, 뇌출혈로 입원하신 엄마와 심장이 안 좋아져서 시술을 받은 아빠, 그리고 부모님을 바라보는 아들과 딸의 이야기, '코로나' 때문에, '코로나' 덕분에 겪었던 좌충우돌 일상, 그리고 가장 기적 같았던 '글쓰기'의 입문으로 많은 이들과 소통하며 공감했던 일들을 스케치하고 지우고 색칠하고 덧칠하고 고치며 행복해했던 이야기, 그러나 다시 돌아올 수 없는, '쉰'이어서 가능했던 나만의 이야기가 바로 '어느 날, '쉰' 너를 만나'이다.  

나의 '쉰'은 어디로 가고 있을까?

 누구에게나 '쉰'은 온다. 하지만 '쉰'이라는 시간이 주는 판타지를 가지고 있는 사람은 드물다. 하지만 난 '쉰'이어서 일어났던 모든 순간순간과 질문들이 꿈이었고 그리움이었다. 내가 발 디뎠던 한 곳 한 곳이 추억이고 새로운 시작이었다. 12월의 끝자락. 이제 그를 놔줘야 하고 보내줘야 하는데 잡았던 손을 선뜻 놓기가 싫다. 한 번 더 안아주고 토닥거려준 후에 웃으면서 정말 고마웠노라 말하며 그를 보내고 싶다. 그리고 돌아서는 그의 뒷모습이 쓸쓸하지 않게 이제 남은 보름. 마지막 입 안에 남은 아이스크림의 잔향을 느끼듯 그렇게 그를 천천히 기억하며 음미하고 싶다. 그리고 그가 떠난 후 '쉰 하나'로 남을 내 모습을 마주했을 때 '쉰' 그가 주고 간 기억을 되새기며 행복했노라, 풍요로웠노라 말하고 싶다.


그렇게 어른이 되었다고/자신한 내가 어제 같은데/그대라는 인연을 놓지 못하는/내 모습 어린아이가 됐소

별처럼 수많은 사람들/그중에 그대를 만나/꿈을 꾸듯 서롤 알아보고/주는 것 만으로 벅찼던/내가 또 사랑을 받고/그 모든 건 기적이었음을


                                                                      -'쉰'과 이별을 준비하는 초겨울 아침나절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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