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가시나물 Nov 15. 2020

‘다라야’가 전하는 책의 울림

-다라야의 비밀도서관을 읽고-


 2003년 이라크 전쟁 당시 3만 권의 책을 구한 바스라 중앙도서관 관장이었던 ‘알리아’가 생각나는 이야기였다. 아무도 준비하지 않았던 책들의 피신을 알리아는 전쟁의 약탈과 방화 속에서 책을 구해내어 이라크의 역사와 문화와 정신을 지켜냈다. ‘다라야의 지하 비밀 도서관’ 이야기 속엔 이렇게 ‘도서관을 구한 사서’ 알리아가 함께 있었다.

 인간의 역사에서 무자비한 정권이 권력을 잡고 국민을 억압할 때 종종 일어나는 정신 말살은 이렇게 ‘분서갱유’나 ‘문화 대혁명’처럼 책을 첫 번째 희생타로 꼽는다. 왜 책일까? 그리고 왜 도서관일까?  

 프랑스 출신 여성 저널리스트였던 델핀 미누이에 의해 쓰인 이 책에서 그 해답을 조금 찾은 듯하다. 2015년 우연히 접한 사진 한 장으로 시리아의 ‘다라야’를 주목하게 된 델핀 미누이. 책이 빼곡하게 둘러싸인 벽 앞에 선 두 남자의 모습이 찍힌 사진. 작가가 끊임없는 기다림을 견디며 상상하며 인터넷과 휴대폰을 통해 시리아의 젊은 혁명가인 아흐마드와 샤디아, 후삼을 만나 어떻게 정권이 국민의 삶을 파괴해 나가는지 그리고 시리아의 그들은 어떻게 위기를 극복해 나가는지를 미사여구 없이 신문기사를 쓰듯 그렇게 써나간 책이 바로 ‘다라야의 지하 비밀 도서관’이다. 

  2011년 3월 ‘아랍의 봄’에 일어난 비폭력 시위의 최전방에 섰던 다라야는 정권의 폭정과 독재에 맞섰다는 이유로 시리아의 대통령 ‘바샤르 알 아사드’에 의해 무참히 진압되고 무차별 학살을 당한다. 포탄이 떨어지고 건물이 무너지고 총소리가 들리는 극심한 공포의 현실에 ‘다라야’ 주민들이 저항의 상징으로 선택했던 건 바로 도서관이었다. 그들은 독재자에 대한 항거의 의미로 그들만의 요새이자 아지트로 ‘다라야’의 지하 비밀 도서관을 만들어 결코 군사독재에 굽히지 않는 의지를 보여주었고 삶에 대한 희망의 끈을 놓지 않았다. 매일매일이 전쟁터요, 하루하루가 죽음의 고비를 넘겨야 하는 그 상황에서도 ‘다라야’의 주민들은 책 속에서 위안을 받고 책에서 웃음을 찾았다. 아사드 정권이 아무리 ‘다라야’에 괄호를 쳐 없애버리려 하고 꺾쇠괄호에 넣어 감금하고자 했지만 작가는 따옴표를 달아 ‘다라야’에서 지금 이 순간 벌어지고 있는 처참하지만 작은 희망을 읽으려는 그들의 생생한 현실을 전 세계에 알리고 싶었다고 고백한다. 아마 그들의 고통에 대한 책임은 시리아의 폭정군인 ‘아사드’에게만 있는 것이 아니라 눈 감고 귀 닫은 우리에게도 책임이 있다 말하고 싶은 것인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작가는 몇 번이고 꺾이고 좌절해야 했던 그들이 도서관을 다시 재건하고 지켜내면서 얻어낸 삶의 지혜와 목소리들을 모두에게 전해주고 싶었는지도 모르겠다.  

 그들에게 도서관과 책은 무엇이었을까? 그들에게 도서관은 저항의 의지요, 상징이었다. 그래서 암담한 현실 속에서도 무너지면 다시 책의 먼지를 닦아내고 종이가 부족하면 한 장에 네 페이지를 복사해 눈 찡그리며 읽어가면서도 그들의 미래가 되어주고 희망이 되어줄 길잡이로 책과 도서관을 선택했던 것이다. 그리고 잃어버린 시간을 되찾는 수단이자 무지를 몰아내는 수단으로 은폐된 과거를 되짚어 볼 수 있는 역사의 거울로 시간과 굴복과 무지에 대항하는 퇴적물로 절망만이 가득한 순간을 치유하는 존재로 책을 말한다. 

 그랬기에 책은 자신의 신념이 길을 잃지 않도록 도와주었고 영혼의 상처를 싸매는 붕대이자 움직이지 않고도 자유로의 탈출을 감행할 수 있도록 해주는 신비의 연금술이었다. 그들은 이미 알고 있었던 듯하다. 책을 읽었기 때문에 독재의 현실에 눈을 뜨게 되었고, 책을 만났기 때문에 진정한 자유가 무엇인지 평등과 박애가 어떻게 이루어졌는지 알게 됐고, 인권이 무엇인지 올바른 가치가 어떤 힘을 갖게 되는지 깨닫게 했을 것이며 미래를 그려보는 데 무엇보다 책이 큰 힘이 될 수 있음을 말이다.   

 누군가에게는 테러리스트의 소굴이자 소탕해야 하는 곳이었지만 누군가에겐 자유와 혁명의 상징이 된 ‘다라야’.

그래서 작가는 ‘다라야’의 부고란이 있다면 ‘권력욕으로 고통을 받은 도시, 탐욕스러운 야망에 깨진 꿈. 시리아 지도에서 지워진 희망의 작은 점. 마다야, 홈스, 알레포 동부 등 봉쇄되었던 도시 목록에 추가된 또 다른 희생자’로 쓰일 것이라 예견한다. 그리고 그 예견은 사실이 되어 기울어진 사다리 위에 있었던 ‘다라야’는 결국 진실을 외면한 세계에 의해 매장되었고 고립되었고 피로와 고통으로 절망스러워하며 죽어갔다. 그리고 그들이 4년 동안 정부와 싸우며 지켜냈던 그 문화의 상징인 책들은 헐값에 팔려 동전 몇 푼으로 바뀌고 말았다. 소설이 아니니 결말이 항상 해피엔딩은 될 수 없었던 모양이다. 

 이렇게 철저하게 유린되고 사라진 ‘다라야’. 그리고 그 속에서 혁명의 꽃을 피웠던 시리아의 젊은이들. 지금 ‘다라야’는 폐허가 되고 말았지만 침몰하지 않기 위해, 살아남기 위해, 인간성을 지키기 위해, 진실된 삶을 다시 살아가기 위해 도서관을, 책을 지켰던 그래서 한층 더 성숙해진 그때의 혁명 전사들은 지금도 자신의 ‘시리아’에 대한 신념을 잊지 않고 나아가고 있다.

 소설이나 수필처럼 문학적인 깊이와 문장의 맛을 느낄 수는 없었지만 소설보다 더한 ‘다라야’의 젊은 저항자들이 전해준 감동은 나에게 진한 여운을 남겼다.  

 이라크의 ‘알리아’가 그랬듯 시리아의 그들이 목숨 걸고 지켜낸 도서관. 과연 지금의 우리에게도 도서관이 그런 곳이 될 수 있을까? 도서관을 가는 길이 기쁘고 설렌다면 아마 색깔과 깊이는 달라도 그들과 다르지 않다 생각한다. 이런 사람들은 도서관을 사랑하는 사람들이므로. 세상을 알고 소통하고 희망을 꿈꾸게 한 존재가 그들에게 책이었던 것처럼 넘쳐나는 책 홍수 속에 살고 있는 우리들에게도 책은 과연 그런 존재일까? 책꽂이에 꽂아두고 장식용으로 쓴다면, 읽기만 하고 실천할 수 없다면 책 속의 무궁무진한 진실과 지혜를 두고 편협한 생각만을 한다면 그건 책을 모욕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책을 읽는다는 건 올바른 가치관을 가지게 한다는 것이며, 진정한 삶을 쌓아가는 것이며 인간을 사랑하는 방법을 많은 이들과 소통하며 질문하며 배워가는 과정이기 때문이다. 

 시리아의 그들은 목숨을 걸고 책의 가치를 배웠고 직접 책에서 얻은 지혜를 실천했다. 만약 그들이 책을 읽기만 하는 쉼터쯤으로만 여겼다면 도서관을 폭력의 피난처로만 생각했다면 ‘다라야’의 도서관이 이렇게 빛나지는 않았을 것이다. 

도서관은 항상 문이 열려있어야 하며 책은 항상 우리 곁에 있어야 한다. 바이러스 때문에 직접 도서관엘 갈 순 없지만 그래도 도서관은 계속 끊임없이 뭔가를 기획하고 있으며 발 빠른 준비를 해나가고 있다. 우리 역시 책과 함께 하는 삶을 놓아서는 안 된다. 책은 과거와 미래를 연결해줄 징검다리이며 사람과 사람을 이어 줄, 세대와 세대가 소통할 수 있는 파랑새가 되어주기 때문이다. 

‘다라야의 지하 비밀 도서관’을 읽으면서 또 하나 놓칠 수 없었던 건 격동의 우리 현대사였다. 5.18과 4.3. 일제강점기. 시리아의 그들처럼 우리도 강압과 폭정에 항거하던 많은 시인들과 혁명가들이 있었다. 결코 굽히지 않았고 신념을 꺾지 않았으며 우리의 정신과 우리의 역사를 지키기 위해 책을 읽고 책을 만들고, 역사를 공부하며 처절한 시간을 견뎌야 했다. 그래서 그들의 모습이 우리들의 모습과 오버랩되어 더 안타까웠는지도 모르겠다. 

 가을이다. 단풍이 물든 나무가 있는 커피 향이 그윽한 곳에서 그들이 그토록 사랑했던 그들이 그렇게 지키고자 했던 책 한 권 마음껏 여유롭게 읽고 싶다.     

매거진의 이전글 정상과 비정상의 차이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