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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가시나물 Dec 05. 2020

[예능 소도리]마음 배송 의뢰서

-'놀면 뭐하니?'를 보고-

'의뢰인의 마음을 배달해 드리겠습니다'

마음을 배달한다는 신박한 생각이 그 어느 때보다 진실성 있게 다가오는 순간이었다.

퇴직을 앞둔 37년 수학 선생님의 퇴근길을 같이 걸으며, 오래된 여인의 프러포즈를 기대하며, 13년 전 풋풋한 첫사랑의 만남을 주선하며, 방송인 전현무 아나운서 팬의 고마운 마음을 전하며 그리고 실직을 한 가장의 무거운 어깨를 보듬어 안는 의뢰인들의 모습과 눈물과 감동으로 배달을 받는 주인공들의 모습이 저물어가는 2020년 세밑을 가슴 따뜻하게 이별할 수 있도록 만들어 주는 것 같았다.

 한 가족의 부모로 교사로 남편으로 살아왔던 아빠에게 이젠 당신의 삶을 시작하라는 둘째 딸의 마음은 가슴 뭉클한 감동을 선사했고, 중학생 시절 추억을 따라 선배를 찾았던 청춘들의 만남은 보는 이들까지 설렘을 폭발시켰다. 그렇게 사랑하는 농구 코트에서 떠나야 했던 가장에게 전하는 현실 부인의 유머러스한 편지는 눈물 반, 웃음 반을 선사하며 프로그램을 보는 이들까지 덩덜아 기쁘고 덩달아 짠하고 덩달아 감동이었던 순간이었다.   


대한민국의 강점 배달 서비스는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24시간 배달 서비스가 끊이지 않고, 음식에서 화장품에서 식물까지 어떤 품목이건, 어떤 상황이든 가리지 않는다. 뜨거운 해수욕장에서 치킨을 배달받고 수많은 파라솔에서 정확히 물건이 배달되는 것을 보면 대단하다 못해 신기할 따름이다. 그 배달 시장에 이젠 '마음'까지 추가가 되었으니 프로그램이긴 하지만 이 배달 서비스가 잘 시행된다면 많은 사람들의 환영을 받을 수도 있을 것 같은 생각이다.  

 


 배달 서비스를 시행하겠습니다. 의뢰인의 마음이 접수됐습니다. '띵동'

 "엄마가 입원한 사이 혼자 과수원에 있는 것이 이상타 했다는 우리 아버지께, 엄마 곁을 든든히 지켜주셔서 감사합니다. 하지만 혼자 컴퓨터 게임만 하지 마시고 엄마랑 도란도란 얘기도 하고, 산책도 같이 가시고, 좀 같이 놀아주세요. 아빠의 행복 속에 엄마도 들어갈 수 있게, 함께 하는 시간을 많이 만들어 주세요. 그리고 엄마, 뇌출혈이었지만 건강하게 회복하고 계셔서 너무 감사해요. 하지만 의욕이 점점 없어져서 아무것도 하기 싫타하지 마시고 소소한 행복을 찾아 즐겁게 하루를 보냈으면 좋겠어요. 딸이 24시간 옆에 있을 수 없으니, 재미있게 노는 법을 찾아주시고 계속 건강만 해 주세요. 다른 동네 할머니들 말 듣고 불쑥불쑥 화내지 마시고 아들 딸 무심하다 속상해하지 마시고. 언제나 우리 곁에 있어 주세요. "

 배달 서비스를 시행하겠습니다. 의뢰인의 마음을 배달해 드리겠습니다. '띵동'

 "요즘 같은 시대에 강의가 취소되고, 수입이 줄어들어도 항상 든든한 백(?)이 되어 주는 울 남편, 사랑하고 고맙지만 회식만 가면 연락이 끊기는 버릇 좀 고쳐줘. 들어오겠지 하면서도 잠을 설쳐서 짜증 나 죽겠어. 계속 이러다간 연락 안 되는 휴대전화 한 번 손보겠다고 벼르고 있으니까 조심해~~~"

 배달 서비스를 시행하겠습니다. 의뢰인의 마음을 전해드리겠습니다, '띵동'

"고3 우리 조카, 공부로 대학을 가는 것도 아닌데 왜 휴학을 안 하니? 일 년 올라가지 말고 인생 공부한다 생각하고 아르바이트하면서 가족 곁에서 용돈도 벌고 하면 안 될까? 왜 이 코로나 시대에 굳이 서울 가서 고생을 하겠다는 건지. 고집만 피우지 말고 한 번 다시 생각해 보면 안 될까? 그 조카의 아빠인 울 동생도 항상 건강하고 바쁜 거 알지만 쉬엄쉬엄하고, 일 너무 많이 벌이지 말고"

 배달 서비스를 시행하겠습니다. 의뢰인의 마음을 전해드리겠습니다, '띵동'

 "우리 학교 선생님들, 특히 밥돌이 정훈 샘, 현정 샘, 지영 샘. 친구가 되어 줘서 고맙고 코로나 덕분에 재미있는 추억 만들어 줘서 감사해요"

 배달 서비스를 시행하겠습니다. 의뢰인의 마음을 접수해 드리겠습니다, '띵동'

 "우리 독서회 늘익는 언니, 동생들, 올 한 해는 많이 만나지 못했지만 내가 뭔가 준비만 하면 득달같은 사랑과 관심으로 적극 지지해 주는 모습. 너무 감동일 때가 많아요. 실버 독서회까지 가기로 했으니 아자 아자 파이팅!"

 "낭독회, 별종팀 만날 때마다 반갑고, 고맙고, 새로운 것들을 많이 배우 게 돼서 정말 기뻐요"

"팀을 깨버려서 너무 미안한 우리 후배들, 이 언니 밉다 하지 말고 지금까지 하던 대로 하면 되겠지. 우리의 만남은 쭉~~ 이어질 테니 이대로만 계속~~"

"일 년에 분기마다 펜션에서 남편 흉보고, 재잘재잘 수다팀, 내년 안주로는 어떤 얘기가 오갈지 궁금하고, 짜글짜글 주름진 할머니가 돼도 서로 이름 부르면서, 건강하게~ "

"사랑하는 내 친구, 매일 단골 옷가게에서 패션쇼 아닌 패션쇼 하고 나서야 밥 먹고 차 마시고. 너무 좋아, 하지만 옷값이 너무 많이 들어. 앞으론 옷가게는 좀 패스~~ 하자"

"외국에 와서 아르바이트하느라 공부하느라 힘든 우리 학생들, 요즘 시험 준비하느라 고생이 많지? 지금 이 상황이 어렵다는 거 잘 알고 있어. 하지만 한국어를 배운다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닌 것 같아. 끝까지 포기하지 말고 최선을 다해줘~~"


일 년을 되돌아보니 내 마음 배송 의뢰서엔 이밖에도 너무도 많은 분들이 있다. 고마운 마음, 미안한 마음, 생각하면 할수록 설레는 마음. 어디 이뿐일까? 코로나에게도 잔소리 좀 하고 싶고, 마스크에게도 한 마디 하고 싶고.

큰 감동 없는 글인데도 항상 읽어주시는 많은 분들에게도 행복을 전하고 싶은 마음도 마음 전달 의뢰서에 적어서 많이 많이 배송하고 싶은 마음 꿀뚝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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